택시 드라이버(Taxi Driver, 1989)
역사는 반복되지 않지만 각운脚韻은 맞춘다.¹
당신이 전쟁에 관심이 없어도, 전쟁은 당신에게 관심이 있다.²
바쁜 세상 속에서 대가 없는 연대는 어려운 일이다. 결국 사람들은 길을 잃었다. 앞선 이유로 타인의 도움은 바라기 어렵다. 대안은 간단하다. 스스로 이정표를 읽고 가야 할 길을 정한 뒤, 나아가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건 이정표라는 사회적 합의가 정론으로 올바를 때나 통용된다. 전쟁 후유증과 금융 버블, 부재한 시대정신 속에서 각자의 삶에 몰입하다 보면 정론은 서서히 흐려진다. 세상은 어느새 바닥 타일 하나만큼이나 좁아졌다. 다만 무질서 속에서 각자의 삶에 몰두한다. 그건 정치인, 엘리트 관료, 유망한 기업인, 이등시민, 남녀노소를 망라하는 일이다. 택시 드라이버는 잡스러운 미디어 콘텐츠로 모습을 뒤바꾼 분노와 불안, 불투명한 자아에 몰입하는 개인의 이야기다.
세련된 씬과 배경 음악, 강렬한 연기. 그럼에도 감상이 즐겁지는 않았다. 차라리 사람이 진정 영혼 없이 살 수 있었다면 나았을까. 집단에 속함으로써 시류에 편승하고 종래는 사회 주류로 부상하고자 하는 욕구. 납작하게 표현해, 어째서 사람은 타인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는가. 망가진 세상으로 여겨 침 뱉어 욕하고 사방을 손가락질하면서도. 영혼을 그저 빈 것으로 내버려두지 못하고 어떻게든 채워 메우고자 하는 몸부림이 괴로웠다. 그들은 곧 내가 될 수 있으며, 나는 곧 그들이 될 수 있기에 더더욱.
마크 트웨인¹ 플라톤²
승부(The Match, 2025)
확신은 안 서는데 꼭 두고 싶은 한수手. 이기고 지든 두고 싶은 수는 두어지게 마련이다.
나를 영화관으로 이끈 건 하나의 대사였다. 내 취향은 트렌드와 거리가 멀다. 고루한 캐릭터와 낡은 대본, 실화 기반의 루즈한 콘텐츠도 나쁘지 않게 여긴다. 세련미 대신 영화든 소설이든 원하는 건 하나다. 속도와 방향은 모르겠고, 전반을 꿰뚫어 나가는 힘이 있었으면 좋겠다. 승부는 바둑으로 세상 사는 일을 빗대어 표현한 영화였고, 거시적인 모든 것이 그러하듯 말 없이 자주 헤맸다. 하지만 메시지는 분명했다. 묶인 매듭을 풀기 위해서는 다시 링 위로 올라서야 하는 게 사람의 숙명 아닌가. 피하지 못했고, 잊지 못했고, 버리고 살 수도 없다면 초라한 나와 마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