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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네건축가 Jul 07. 2022

자기소개서와 추천서

내 이야기를 진솔하게 혹은... 낯설게

  조카가 이번에 해외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금융기업이 제공하는 700만 원의 해외 체류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 모두들 비슷한 수준의 학생들이어서 아마 자기소개서를 잘 썼기 때문일 것이라고 한다. 그럼, 자기소개서는 어떻게 잘 쓸 수 있을까? 많은 수험생과 취준생, 또 오랜 경력직이라도 자기소개서를 잘 쓴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은 많지만 자기를 소개하는 것이 여간 낯선 일이 아니기때문일 것이다. 너무 좋게 써도 미화한 것 같고 나쁘게 쓰면 떨어질 것이고 솔직한 것도 어느 정도 해야 하나 고민이 된다. 

 

  자기소개서를 써 본 적도 제법 되고 심사나 합격을 목적으로 한 자기소개서를 많이 읽어본 입장에서 보면 몇 가지 조언을 할 수 있다. 우선, 상투적인 표현이나 추상적 단어는 지양하고, 근거없이 거창한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도 조심하는 것이 좋다. 자신의 장단점을 진솔하게 이야기하되,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서 자신의 장점이 발휘되어 일이나 문제를 해결하는 장면이 있으면 작은 것이라도 효과가 좋다. 단점은 그것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내용이 함께 이야기된다면 오히려 장점으로 보일 수 있다. 무턱대고 자신의 칭찬만 한다면 그 내용이 매력적일 수 없다. 잘 해내고 있지만,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심리 변화나 자신의 결단 등으로 그려지면 호감을 가지고 읽게 된다. 

  나의 예를 들어보면... 우선, 나는 자기소개서를 쓸 당시 직무상 리더십을 어필해야 하는데, 스스로 봐도 리더십이 있을 것으로 보이지 않아서 걱정되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작은 일이지만, 고등학교 수학여행 가서 있었던 일을 기술하였다. 한 학급이 60여 명이던 시절이어서 숙소는 큰 방 3개~4개가 배당되었고 우리 반 아이들은 밤늦도록 제일 큰 방에 모여서 각 게임(?)을 하고 놀고 있었다. 누군가 장난으로 불을 켰다 껐다를 반복하던 중에 갑자기 한 학생이 급체를 했는지 구토를 했다. 예쁜 사복을 입고 놀던 여고생들의 방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근처에는 옷을 버린 학생부터 냄새에 짜증 내며 다른 방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일이 벌어졌다. 잠시 후에 보니... 제일 까칠하게 깔끔 떨던 내가 그것을 치우고 있었다. 물론 금방 몇 친구들이 함께 했고 우리 모두는 그날 밤 행복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자기소개서의 힘이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면접관의 관심을 끄는 데는 성공했다. 질문이 많았으니까.


  학교생활하면서 스스로 내가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 학생들 추천서를 쓰는 일이었다. 

대외적으로 학생들 장학금 신청에는 추천서가 꼭 들어간다. 특히, 기업에서 운영하는 장학금은 액수도 높고 그만큼 경쟁도 치열하다. 일정 기준을 충족하는 각 학교 학생들은 추천서를 통하여 어느 정도 선별이 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았다. 추천서에는 일단 많은 내용을 담으려고 노력한다. 우선, 학생 인적사항부터 지난 상담 내용을 꼼꼼히 살펴보고 새로 면담한다. 수업시간이나 교우들과의 장면들도 떠올려보고, 학생의 미래도 그려보면서 추천서를 쓴다. 학생과의 에피소드를 생생하게 담으면서 넘치지 않는 좋은 마음으로 정성껏 추천했다. 


  졸업생은 유학을 준비하면서 오는 경우가 있었고, 경찰시험 마지막 단계에서 지도교수 추천서가 필요해서 몇 년 만에 찾아온 경우도 있었다. 건축이 잘 안 맞아서 공부를 다시 했다며 꼬박 3년을 고시원에서 고생해서 합격한 경우이고 3차 면접에서는 추천서가 중요하다고 해서 특별히 더 고민을 하며 썼던 기억도 난다. 물론 결과는 모두 좋았다. 내가 어느 정도 도움이 됐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합격을 알려오면 기뻤다. 그리고 누군가의 미래를 위해 좋은 마음으로 추천서를 쓰는 과정은 스스로를 정화시키는 카타르시스도 있었다. 


   모교에 타고나신 나무늘보 같으신 건축사 교수님이 계셨다. 교수님 걸음걸이는 늘 변함없이 느렸고, 수업시간에도 몇 말씀 안 하시고 한 시간을 다 보내시는 분이셨다. 일반적으로 강의를 해보면 침묵의 시간을 길게 가져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수 있다. 게다가 수업 진도는 애초에 별 관심이 없으시고 학생들에게 과제도 한번 내주지 않으시고 시험문제는 거의 20년째 같을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선배가 상기된 놀란 얼굴로 연구실로 들어서면서 "###교수님이 추천서를 5장이나 써주셨다.."라고 하며 A4지 몇 장을 쳐다보며 들고 있었다. 선배는 모대학교에 교수 채용을 위해 원서를 준비하고 있어서 ###교수님께 '지도교수 추천서'를 부탁드렸는데 3일째 아무 말씀이 없으셔서 애태우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교수님이... 밤을 새우면서 '추천서'를 쓰셨다고 했다. 누구나 아는... 원로교수님의 밤을 새운 5장에 걸친 지도학생의 추천서는 특별한 힘을 발휘했다. 선배는 처음 시도한 그 학교에 단번에 자리를 잡았다. 


  그렇다. 나는 그 교수님을 쪼끔 따라한 것이다. 추천서 사건 이후로 교수님을 향한 내 눈은 하트로 바뀌었다. 세상 멋진 분으로 내 마음에 새겨진 것이다. 교수님의 그동안 모든 게으름은 승화되어 도인의 해탈로 받아들여졌고 그 수업까지 열심히 들었다. 

  그래도, 나는 A4 5장까지는 추천서를 써 본 적이 없다. 아니,... 안된다. 무슨 내용을 그렇게 쓸 수 있었을지... 새삼 더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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