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의 콘텐츠 에디팅

by 이름

AI를 위한, AI에 의한, AI 콘텐츠

AI 전환의 흐름에 올라타지 못하면 언제 도태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비즈니스 전반을 뒤흔들고 있다. 산업을 막론하고 기업들은 AI를 접목해 압도적인 편리성을 제공하려 하거나, 기존의 업무 방식을 바꿔 효율성을 극대화하려고 한다. 다시 말해 경쟁력을 잃지 않기 위해선 일하는 방식이든 그 결과물이든, AI를 통한 혁신이 필수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IT 기업의 콘텐츠 에디터로 일하는 나도 최근 AI를 활용해 변화를 만들어야 했다. 회사에서는 매주 다양한 팀이 각자 진행한 AI 프로젝트를 발표하며, 그 시행착오와 인사이트를 전사적으로 공유하고 있다. 나는 그 발표 내용을 AI로 매주 빠르게 콘텐츠화하고, 외부에 시의성 있게 확산시키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됐다. 기존에는 하나의 콘텐츠를 제작하고 발행하는 데 약 2주의 시간이 소요됐는데, 새로 제작하게 될 AI 콘텐츠 시리즈는 기존 업무와 병행하면서 주 1회씩 발행해야 한다. 생산성을 두 배 이상 끌어올려야 하는 셈이다.


처음 이 제안을 받았을 때는 AI 전환에 대한 전사적 몰입을 외부에 빠르게 보여줘야 한다는 필요성에는 공감했지만, 한편으로는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그만한 퀄리티의 결과물을 매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 그간 생성형 AI를 문장을 다듬거나 흐름을 검토하는 보조적인 수단으로만 활용해 왔고, 콘텐츠 기획과 제작 전반에 적극적으로 활용해 본 경험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AI를 콘텐츠 제작 전 과정에 어떻게 녹여냈는지, 그리고 그 시행착오 과정에서 에디터로서 무엇을 고민하고, 어떤 가능성과 한계를 체감했는지를 정리해보려 한다.



AI를 도구로, 한 편의 콘텐츠를 제작하기까지

개인적으로 에디터라는 직무를 떠올리면 아날로그한 이미지가 연상된다. 예를 들면 수많은 자료와 메모를 펼쳐 두고 고심 끝에 원고를 완성해 가는 모습처럼 말이다. 그런데 나도 글을 쓸 때 하루 종일 모니터만 바라보면서, 그런 장면을 떠올리게 되는 이유는 뭘까? 어쩌면 ‘글쓰기’는 인간의 고뇌를 통해서만 완성될 수 있는, AI로는 대체될 수 없는 고고한 작업이라고 낭만화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막상 AI를 활용해 보니, AI는 콘텐츠 에디팅의 여러 단계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일반적인 콘텐츠 제작 과정에서 에디터는 아래와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물론 구체적인 업무 범위와 방식은 콘텐츠의 종류, 매체, 조직 내 협업 구조 등에 따라 다양하게 달라질 수 있다.)


리서치: 콘텐츠의 재료가 될 자료를 수집한다. 상황에 따라서는 직접 인터뷰를 진행하거나 현장을 취재한다.

큐레이션: 수집한 자료 중 기획 의도에 부합하고 독자에게 유의미한, 가치 있는 자료를 선별한다.

(협의의) 에디팅: 메시지의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큐레이션한 자료를 어떻게 배치할지 구조를 설계하고, 톤 앤 매너에 맞게 콘텐츠를 직접 작성하거나 편집한다.


이번 AI 콘텐츠 시리즈를 제작하기 위해 위에서 애기한 전 과정에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리서치: 전사 발표가 끝나면 AI가 음성 인식을 통해 내용을 텍스트로 변환해 준다. 이 텍스트를 txt 파일로 AI에게 제공한 후, AI에게 요약하도록 해 핵심 내용을 파악한다.

큐레이션: AI 콘텐츠 시리즈는 매주 다른 주제로 AI 프로젝트를 세 개씩 소개하는 형식으로 기획했다. 주차별 콘텐츠 주제와 프로젝트 후보군을 AI에게 제공한 후, 주제 적합성, 프로젝트 매력도 등의 요소를 기준으로 후보군을 평가하도록 요청한다. AI의 분석 결과를 참고하여 주제에 맞는 프로젝트를 최종 선정한다.

에디팅: 콘텐츠의 전체 구성, 각 파트의 흐름과 분량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며 초안을 작성하도록 요청한다. 완성도가 낮거나 방향성이 어긋난 부분은 수정을 요청하고, 지속적으로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 직접 수정한다.



AI, 가능성과 한계 사이에서

몇 차례 AI로 콘텐츠를 만들면서 느낀 건, AI의 성능이 기대 이상이면서 기대 이하라는 점이다. 감탄과 실망을 반복적으로 오가며, 그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체감했다.


콘텐츠 제작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논리성과 창의성의 균형이다. 논리성은 콘텐츠의 타당성과 설득력을 높이고, 창의성은 콘텐츠의 차별성과 주목도를 높인다. 이때 AI는 논리적 구조를 고민하는 데 드는 시간을 효과적으로 단축시킨다. 자료를 요약하고 평가하며 범주화하는 일부터, 이를 기반으로 구조를 제안하고 초안을 작성하는 일까지 압도적인 속도로 수행한다. 특히 이번 AI 콘텐츠 시리즈는 참신한 기획이나 구성보다는 빠른 요약과 논리적 전개가 중요했던 만큼, 그런 부분들에서 AI의 강점을 크게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아직은 AI만으로는 높은 퀄리티를 기대하기 어렵다. 처음에는 AI가 결과물을 만들어 내면 최종 단계에서만 검토하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작업 전반을 잘게 쪼개고(발표 요약, 평가, 소재 선정, 개요 구성, 초안 작성, 편집 및 퇴고), 각 단계별로 원하는 기획 방향에 맞춰 작업을 굉장히 디테일하게 요청해야 했다. 또 단순히 AI 환각 현상이 발생했는지만 검토하면 될 줄 알았는데, 매번 문단 구성, 내용 흐름, 문장 표현 등을 세세하게 다듬으며 퀄리티를 끌어올려야 했다.


처음엔 AI를 통해 작업하려 했지만, 결국엔 스스로 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 판단하게 된 단계들도 많다. 예를 들어 AI에게 프로젝트들을 일정한 기준으로 세 개씩 묶어 주차별 주제를 제안해 보도록 했지만, 너무 지엽적이거나 일반적인 공통점으로 묶어 콘텐츠 기획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차라리 AI가 제공한 프로젝트 요약 내용을 확인한 후, 직접 주제를 기획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었다.


뻔한 결론일 수도 있지만, 아직까지 AI는 ‘보조자’이기보다 ‘도구’에 가깝다. 특정한 단계의 작업 전반을 맡기기는 어렵고, 사람이 방향을 구체적으로 설정하고 디테일한 피드백을 지속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결과물의 완성도를 담보해 내면서 기존의 업무량을 효율적으로 줄이려면, 결국 사람이 계속해서 그 과정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야 한다.



미래의 글쓰기, ‘쓴다’는 감각의 변화

AI로 콘텐츠를 만들어 보니, 미래엔 글쓰기의 방식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손으로 한 자 한 자 써 내려가야 했지만, 타자기가 등장하면서 훨씬 빠르고 편리하게 글을 쓸 수 있게 된 것처럼 말이다. 펜 다음엔 타자기, 타자기 다음엔 AI인 것이다. 지금은 사람이 직접 소재를 찾고, 구성을 짜고, 문장을 작성하지만, 앞으로는 각 단계마다 AI에게 지시를 내려 글을 완성하는 방식이 보편화되지 않을까.


물론 지금도 어떤 상황에서는 타자기 대신 손글씨로 글을 쓰듯(예를 들면 일기를 쓸 때), 앞으로도 기존 방식의 글쓰기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테지만, 일반적인 글쓰기의 패러다임이 변화할 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해본다. 글’쓰기’가 아닌 글 ‘지도하기’와 같은 형태로 사람들이 글을 작성하게 되는 상상 말이다.



*커버 이미지는 OpenAI의 이미지 생성 모델인 DALL·E를 활용하여 GPT-4o에서 생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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