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사람들... <김교감>
학교도 사람들이 사는 세상! 학교도 그 사람들의 직장! 어떤 사람들일까?
학생들은 선생님이 궁금하다.
학생들은 어떤 친구들과 같은 반이 될지도 궁금하다.
학부모님들..특히 엄마들은 담임선생님이 제일 궁금하다.
우리 아이가 어떤 친구들과 같은 반에서 지내게 될지 또 궁금하다.
2월 말이면 새 학기 반편성을 궁금해하는 전화가 종종 온다.
이런저런 사건들을 풀어놓으며 한 반이 안되게 해 주십사 요청해 오신다.
그 청을 다 수렴할 수는 없지만, 필요한 사안이 있을 수도 있어 귀 기울여 들으시는 것 같다.
학교에서 반편성을 할 때, 초등은 아이들의 성향과 학업능력을 고려하고 반장 부반장을 해보았던 이력도 살핀다. 서연이 서현이, 도윤이 도현이, 김수빈 이수빈 등등 비슷한 이름이 워낙 많다 보니 학생 명단을 살펴보며 되도록 한 반에 같은 이름이 들어가지 않도록 조정을 하기도 한다. 중등은 성향보다도 성적배치를 하게 되는데, 학교마다 방법은 다양하지만 대체로는 줄 세워 우로좌로 배치하는 전통적인 방법을 여전히 많이 사용하는 것 같다.
OO중학교 김교감님은 엘레강스한 분이다. 원피스와 스카프를 좋아하고 아침마다 곱게 눈화장을 하시고 등교맞이 인사를 건네신다. 본관 1층 체온측정 카메라 옆 자리가 김교감님의 지정석이다. 아침 7시 30분이면 출근을 완료하고, 7시 40분이면 등교하는 학생과 교직원을 위해 체온카메라 옆에 서서 아이들을 지켜보신다.
그 옆 두 교사는 억지로 서있다. 기간제교사 이쌤과 체육교사 최쌤! 최쌤은 체육건강부 부장이기도 하고, 이른 아침부터 가장 오후 시간까지 학교를 지키는 세이프티가드 역할을 하신다. 큰 키와 넓은 어깨, 빨간색 안전봉을 한 손에 쥔 채 호루라기도 휙휙 불어대며 일렬로 등교하도록 안내하신다. 학기 초 학생들에겐 정신을 더욱 단단히 붙잡게끔 하는 전통적인 체육부장이 되시겠다.
일주일 간격으로 등교 지도를 하는데, 기간제교사 이쌤은 올해 원치 않는 담임까지 맡아야 해서 얼굴이 더 쪼그라 붙어있다. 정규교사들이 누리는 휴직의 혜택을 쓸 수 없고, 일 년 업무를 잘 수행해야 내년 재계약을 할 수 있으며 다른 학교로 이동할 경우에는 이전 학교에 전화하여 어떻게 근무했냐고 체크하는 전화를 주고받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업무가 다소 과중하더라도 밀어내지 못하고 수렴하는 편이다.
김교감은 말한다. 교사 위에 학생 있고, 부장 위에 평교사 있고, 교감 위에 부장 있다! 70여 명의 교사 중 계약직 기간제 교사가 30명에 달한다. 휴직 중인 교사는 7~8명가량 되는데, 육아휴직과 병가휴직, 해외거주 등의 사연이 있다. 김교감은 학급 편성과 담임배치, 휴직자리에 올 기간제 교과과목 교사의 면접과 배정, 일 년 학교 사업 작성 등등 매우 바쁜 시기를 보냈다. 2월 3월이 흐르면서 입학 후 아이들의 적응기간과 시간표가 안정화되고, 학부모 총회가 잘 마치고 나면 그제야 잠시 숨을 고르게 될 것이다.
사립학교라 김교감은 현재 교사들 중 일부는 그녀의 20대 시절부터 일평생을 함께 동료로 지내온 상황이다. 시샘이 가득한 박 부장은 자신이 먼저 교감이 될 줄 알았지만, 최종 고비에서 낙방을 하여 지금도 교무부장을 맡고 있는데, 그 옛날 6개월 먼저 입사한 선배임을 강조하며 김교감에게 큰소리도 간혹 치는 편이다.
마음이 약하고 여성스러운 김교감은 업무 능력은 탁월하다고 정평이 나있는데, 직원 관리가 약하다는 악평을 듣기도 한다. 물론 김교감 본인도 잘 아는 사실이지만, 사람 성향이 어디 쉽게 바뀔까? 사립중학교 교감의 직함을 달고 큰소리도 칠 법 하지만, 늘 조용조용 조심조심 섬세한 김교감은 큰소리치는 박교무부장이 부담스러워 눈을 질끈 감아버릴 때도 많다.
한 예로, 중2 여학생이 급식실 대기줄에 포켓몬 인형을 든 채 나타났다. 작지 않은 파란색 인형을 끌어안고 있으니 박 부장이 소리친다. "야! 너! 그게 뭐야! 교실에 두고와!", "코로나로 뭐든 소독하고 조심조심하는데, 너 제정신이야?"라고. 김교감은 그녀의 큰 목소리에 또 눈을 질끈 감았다. 가슴이 쿵쾅쿵쾅 거릴 정도로 큰 소리를 싫어하는 김교감은 슬쩍 뒤쪽으로 걸어간다. 보건교사의 중재로 그 인형은 잠시 보건실에 맡겨두고 식후에 찾아가기로 했다.
일반 직장과는 달리 참으로 소소한 아이들의 문제들로 회의라는 것을 하고 의사소통을 위해 애를 쓴다. 작은 인형 하나부터 급식실 줄을 서는 순서와 시청각실을 어느 학급이 먼저 쓰는지, 선도부 학생이 등교 시 어느 선까지 학생지도에 참여를 해야 할까 등등, 살아가는데 큰 지장 없는 소소한 일들로 머리를 맞댄다. 보건교사인 나는 보건실에 혼자 상주하다 보니, 학생들이 다쳐서 큰 사건이 되거나 학교 폭력 사안이 있을 때만 큰 회의에 참여하여 일원이 된다.
평소에는 김교감도 파스를 가지러 들리고, 박 부장도 속청을 마시러 들리고, 방역지원 도우미님도 위생장갑을 받으러 들리는 작은 편의점 같은 곳이기도 하다. 예산으로 구입하여 교내 누구에게나 내어주기만 하면 되는 나는 늘 베푸는 느낌이 나서 마음이 넉넉해지는 곳간 같은 곳이다. 김교감은 슬쩍 와서 묻는다. 교사들이 보건실 와서 어떤 얘기를 하고 가냐며... "몸 아플 때 와서 약 좀 달라고 하시죠~ 가끔 차 한잔 달라고 하는 분도 계시긴 해요. 애들 문제나 수업 때 힘든 일 있으면 잠깐 앉아 계시다 가기도 하고요."라고 적당히 말씀드렸다.
김교감은 조금 외로운 듯도 보였다. 팀별 교육비가 책정되어 부서별로 전시회도 가고 공연도 보러 갔지만, 어느 하나 교감님도 함께 가시겠냐고 물어보지 않았다고 한다. 심지어 어느 부서 회동에 못 가는 교사가 생겨 자신이 가겠다고 하자, 다른 직원들 표정이 어두워짐을 바로 느꼈다고 하며 외롭다고 한다. 교감이 되었으니 누리기도 하고 외롭기도 한가 보다. 내 눈엔 기왕 할 거면 교감 교장이 되어 리더역할 하고 있음이 멋져 보이는데, 각자 고충이 있을 테니 그 속은 알 수 없고.
학부모님들은 교사들을 만나고 통화하는 것이 참 불편하다. 좋은 일로 통화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 조심스럽고 민망하고 불편한 관계로 연이 닿는 경우가 더 많다. 학교에는 담임이 엄마 역할을 하니 필요할 땐 담임교사를 찾는 것이 우선이 되겠지만, 그 외 문의가 있을 때는 사안에 따라 행정실, 보건실, 교무실, 방과 후교실 그리고 교감선생님을 찾아보자. 어떤 일이든 알고 싶어 하고 해결하려고 애쓰는 핵심 인사 교감! 업무량도 많고 챙길 사람도 많지만 그만한 능력이 되니 그 자리에 있다고 생각한다.
마릴린먼로 같은 하얀 원피스를 입고 교무실로 교장실로 회의실로 행정실로 오늘도 종종걸음을 걷고 계신다. 우아하고 다정하지만 카리스마 약한 김교감님의 일 년을 응원하며, 교내에서 늘 신고계시는 검은색 통굽 그 슬리퍼는 다른 걸로 바꾸시면 좋겠지만, 나는 차마 그 말을 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