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씻지 않은 머리카락은 얼굴로 늘어뜨려진 채 눈을 죄다 가리고 있다.
언제 닦고 안 닦은 것일까 답답한 생각이 드는 안경 너머로 가느다란 눈을 뜨고 있지만,
눈동자엔 빛이 없고 아득하기만 하다.
배가 아프다는 아이를 동그란 의자에 앉히고 한걸음 다가 서니
입고 있는 체육복에선 빨래를 한지 오래된 듯한 쿰쿰한 냄새가, 감지 않은 머리냄새가 내 코를 찌른다.
비가 와서 벚꽃이 지고 얇고 싱그러운 초록잎이 나뭇가지 가득 돋아났다.
같은 학교 안에 있지만, 오랜만에 만나게 되면 어느새 한 뼘 자라나 있는 중학생 아이들
배가 아프다고 했다가, 머리가 아프다고 한다.
눈이 따갑다고 했다가, 생리통이라고 말한다.
"은서야, 배가 많이 아플 땐 걷기가 힘들 만큼 아파. 그 정도는 아닌 거지? 식사는 했니? 언제부터 아팠어? 어디가 아픈지 짚어보자. 약은 먹었었니? 스트레스가 심해도 머리랑 배가 아프기도 해. 힘든 일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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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일이 있어요. 좀 큰 일이 있어요. 잠을 못잤어요. 머리랑 배가 아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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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연 안경알 너머 작은 눈에 눈물이 맺힌다. 쿵.
비슷한 증상과 통증이 있어도 사람이 느끼고 표현하는 통증은 천차만별이다.
유난히 잘 참는 사람도 있고, 작은 통증에도 팔짝팔짝 뛰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병원에서 자주 쓰는 0~10점 사이 통증 지표 역시 그러하다.
통증이 0~10점 사이로 표현하면 몇 점 정도에 해당하실까요?
수치화된 통증에 딱 맞아떨어지는 약을 복용하고 그 통증이 사그라든다면 얼마나 좋을까?
통증에 대해 심도 있게 연구하는 의학분야가 있다. 말기 암 환자나 심각한 외상으로 인해 통증이 극심한 경우를 비롯하여 화상환자의 소독 시 통증, 대상포진의 통증, 골절의 통증, 디스크 환자의 요통, 피부의 통증 등 그 고통은 느껴보지 않고서는 헤아리기 힘들 것이다.
힘든 일을 겪고 느끼는 마음의 통증은 또 어떠하리
우울감, 상실감, 고독, 극심한 스트레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등등
아이 하나하나가 참으로 귀하다.
존귀한 아이들.
적성을 찾고 좋아하는 일에 열정을 쏟으면서 한 순간이라도 알차게 보내면 좋겠다.
쉼 없이 뒤따르면서 하는 말은 잔소리가 될 테니
툭툭 건네는 한마디 한마디가 칭찬이 되고 물꼬가 되어 한 발짝 쿵 날아오르면 좋겠다.
지금 저 쪽 테이블에 앉아있는 저 아이가 오늘 하루만 잠시 힘든 것이기를, 막연한 통증이 사라지고 집안의 어른들 일로 머리가 아프다는 것이 사그라들면 좋겠다. 극심한 고통을 약으로 다스리듯 마음의 불안과 통증이 스르륵 사라지기를 바라며... 약 먹었으니 잠시 쉬었다 가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