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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주부가 된다 Part. 2

ep4. 절망은 NO!. 뭐라도 해야 뭐라도 된다. 정당하게 밥을 먹자.

'은퇴'라는 자발적 판단을 하기 직전의 집안 시스템은 보통의 가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흔한 맞벌이 가정, 비교적 정시에 퇴근하는 아내 

낮 시간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두 명의 아이들을 보살피고 있었다. 

역시나 유일한 문제점은 

대한민국 일을 혼자 다하는 것 같은 '나'에게 있었다. 


몇 년 전엔 사람답게 살기 위해 개선책을 마련한 적도 있었다.

업무량을 줄이고, 가족과의 시간을 늘리기 위해 퇴사 후 프리랜서로 전향한 것이었다.

원하는 일을 선택해서 할 수 있고, 시간적 제약에서 벗어나기 위한 선택이었다.

남들 다 한다는 '워라벨'의 행복을 만끽하며, 첫 달에는 주말에 가족여행도 두어 번 정도 다녀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엄청난 반전으로 다가왔다.


일한 만큼 프리하게 돈을 번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무리한 스케줄로 연결되었고

일이 없는 프리랜서는 빛 좋은 개살구와 같으니

불러주고, 찾아주는 것이 고마워서 거절을 못 하다 보면 휴일은 없었다.

원래의 의도를 벗어나게 된 것을 후회하며 지쳐 쓰러지기 직전에는 

샐러리맨 이상의 달콤한 금전적 보상이 찾아왔고, 그것은 모든 고통을 잊게 만드는 

말 그대로 강력한 진통제였다.

그러나

몸을 갈아 넣고 바꾼 알량한 명예와 재물은 

어찌 보면 너무나도 뻔한 결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혹사를 당하며 잠시 잠깐 찬란하게 빛나고

돌이킬 수 없는 부상으로 사라져간 비운의 운동선수들이 생각났다.


여러 가지 혼돈 속에 정리되지 못한 감정들이 머릿속을 휘감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더 이상 아무것도 하기 싫다'라는 것이다.

유명한 피겨 선수가 은퇴 후, 3년간 스케이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는 말이 공감되었다.

경제적 여건 역시 끼니 걱정을 하는 정도까진 아니기에 급하게 돈을 벌기 위해 무언가를 할 필요도 없었다.


은퇴 후, 실제로 며칠간은 정말 상팔자로 지낼 수 있었다.

아내가 출근할 시간에 부모님이 집에 오셔서 아이들의 아침을 챙겨주신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면 이미 아침 설거지와 기본 청소는 다 끝난 상태였고 

당연한 듯 부모님으로부터 아침 겸 점심상을 받았다.

아들딸과 잠시 놀아주긴 하지만,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슬쩍 미루면 그만이었다. 

원하는 메뉴는 한 마디만 하면 바로 식탁에 올라왔고, 아무도 나를 터치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이들이 밖으로 나가 놀거나, 방에서 개인 숙제를 하고 있으면 더할 나위 없는 평화가 찾아오곤 했다.

아내가 퇴근하고 돌아오는 저녁에도 적당히 몇 시간 있다가 잠들면 그만이었다.


이것이 바로 '무위도식'이란 것인가? 

이런 사자성어는 어딘가 모르게 어울리지 않는 것 같군. 

'유유자적'이나 '안빈낙도'라고 표현하는 것이 마음 편한 어휘 선택이겠지.


이렇게 나는 한 마디로 꿀을 빨고 있었다.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가족들에게 미안함 비스름한 감정이 차오르고 

집에서도 왠지 모르게 설자리를 잃어가는 것 같은 위기의식이 생겨났다.

이런 복잡한 마음의 근원은 무엇이란 말인가?

혹시, 묵묵히 나의 결정을 받아주고, 앞으로의 대한 질문을 일절 하지 않은 

아내의 큰 그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그 무렵

잔잔했던 마음속의 호수에 돌덩이가 날아와 큰 파문을 일으키는 사건이 생겼다.


아이들이 각자의 방에서 할 일을 하는 평화로운 오후

아버지는 2시간째 TV 앞에서 눈을 찡그리며, 시간을 죽이는 듯, 같은 뉴스를 계속 보고 계신다.

나 역시 TV가 보고 싶었지만 양보하는 마음으로 소파에 누워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어머니는 거실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줍고 계셨는데 점점 소파 쪽으로 다가오는 중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내 앞에서 한 마디를 꺼내신다.


"아들. 요 며칠 사이에 살이 좀 찐 것 같네. 건강해 보여서 좋네"


그렇게 환하게 웃으며 살이 쪘다고 하면 화가 안 날 것 같았나 보다.

냅다 벌 처럼 한 방 쏘아붙이려다가, 그래도 요즘 황제 같은 삶을 살고 있기에 

어이없는 듯 고개를 옆으로 꺾으며 썩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런데, 그 미소가 용기를 주었던 것일까? 곧바로 한 말씀을 더 하신다.


"아들. 할 말이 있어. 요즘 왜 자꾸 집에 있는 건데?"


그렇다.

이 말이 하고 싶어서 며칠간을 고민하셨을게다.

개인적인 부침만 있을 뿐, 대중적인 업적은 없었기에 은퇴 어쩌고 하는 말 자체를 하지 않았다.

그러니 휴가쯤으로 여겼던 부모님은 시간이 갈수록 벙어리 냉가슴을 앓았을 것이 뻔하다.

아들 눈치를 보다 어렵게 꺼낸 말임을 곧바로 알아차렸지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뭔가에 홀린 듯 성질을 내고 말았다.


"내가 내 집에 있는데 뭔 상관이야!!!" 


개는 무서우면 짖는다.

나 역시 뭔가 부끄러웠거나, 민망했거나, 짧은 필력으론 정확히 설명하기 힘들지만 

개같이 짖어버렸다.

어머니의 무안함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아니, 잘 쉬고 있는 아들한테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어 여편네가"

기회를 잡았다는 듯 소리를 지르며 아들 편을 들어주시는 아버지.


"내가 너한테 질문했냐? 뉴스나 쳐 봐라. 주제에 나라 걱정은..."

아들에게 당한 무안함에 핵을 장착하여 아버지에게 폭격해버리는 어머니.


그 후로 주고받은 부모의 대화들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기억하고 싶지도 않다.

사실, 저 두 분은 내가 두 살 때부터 살벌했던 사이였다.

대한민국 최고의 '위기의 부부'는 나의 부모님이었다. 

부모의 부부 싸움에 대한 에피소드 만으로 삼국지에 버금가는 장편을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오고 가는 거친 대화와는 별개로 

두 분 다 아들의 현 상황에 대한 궁금증은 컸으리라 생각했다.

자려고 누우면 걱정부터 앞섰거니 싶다.

이제 논다고. 더 이상 방송 PD가 아니라고. 하지만 걱정하시지 말라고 알리는 것이 도리였다.

진지하게 조언을 듣거나, 격려를 받아도 도움이 되면 되었지 손해 볼 것은 없었다.


그만 싸우고 내 얘길 들으라고 하려는 찰나

눈치 빠른 딸내미가 문을 슬며시 열고 분위기를 읽으려 걱정스럽게 거실을 훑어보고 있었다.


'나도 어렸을 때 저랬는데...'


오만가지 감정과 동질감이 스치며, 어린 딸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추스르는 것이 먼저였다.

어차피 노는 거 다음에 말해도 그뿐이었다. 


사실, 이런 일이 있기 전에도 아이들로부터 민원이 꾸준하게 들려왔다.

"할머니, 할아버지 중에 한 분만 오셨으면 좋겠어"

 간단히 말해서 싸워도 너무 싸운다는 것이었다. 

욕을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이들 정서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순 없었다.

그러나,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있음에도 

그저 잘 이야기해 보겠다는 형식적인 말로 답변을 대신할 뿐이었다.

그만 좀 싸우시라고 하면 일시적으로 좀 누그러졌기 때문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할아버지는 청소담당, 할머니는 요리 담당이라는 것이었다.


불과 며칠 사이에 

평생 내 편이라는 이유로 부모를 부려먹으며

하는 일이라고는 집에서 편하게 대접받으며 

이기심 가득한 나만의 왕국을 건설하고 있었다.


시끄러운 소리에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아들 녀석이 방 문을 열고 나오자 

거실에 다섯 식구가 얽혀 어수선한 분위기를 연출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인기척에 뒤를 돌아보니 아내가 문을 열고 이미 현관을 지나 거실에 발을 들여놓고 있었다.

상황 파악에 걸리는 시간은 채 1초도 되지 않았으리라.

평정심을 유지하려는 듯 말없이 딸을 안고 있는 내 앞을 지나가 안방으로 직행했다.

그러나, 다녀왔다는 형식적인 말조차 없는 것을 보아 심기가 불편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방으로 들어가는 아내의 뒷모습을 보면서, 마치 드라마 속 주인공의 회상 장면을 보듯  

자연스럽게 아내의 입장을 상상하며 '역지사지'의 세계로 빨려 들어갔다.


하루 종일 일에 치이다 집에 오면 시아버지, 시어머니, 노는 남편이 있다.

시아버지 있는 거실에서 TV를 보는 것도 

시어머니 있는 부엌에서 냉장고 문을 여는 것도 다 싫다. 

안방에서 나오기가 싫다.

내 집인데 내가 있을 곳이 없는 것 같다. 


몇 초간의 짧은 상상이었지만 마음속 깊은 울림이 느껴졌다.

나 좋다고 시작한 일, 관둔 것이 뭐 그리 잘난 일이라고

국위선양이라도 하고 온 듯 편하게 지내고 있나?

마음고생하는 아내는 생각이나 해 봤는가?


쓰레기였다. 반성하기 이전에.

나쁜 놈이다. 용서받기 이전에.


돌아보면, 그 장면이 

인생에 있어 나에게 새로운 배역이 주어지는 순간이었다.

극과 극이긴 하지만 그동안 가정에 소홀했던 것을 만회할 기회라고 생각했다.


'일에 지쳐 집에 있을 거면 집안일에 충실해 보자'

갑자기 잠자고 있던 열정과 전의가 불타오름을 느꼈다.


그 후 

부모님께는 이제부터 혼자 아이들을 돌보겠다고, 즉흥적이긴 했지만 적당히 마음 쓰시지 않게 말했다.

많은 대화는 없었지만 부모 역시 아들을 믿을 수밖에 없었을 거다.

어쨌건 잘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이 글을 쓰며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하고 싶은 말이 생각났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글로 쓰며 스스로 면죄부를 주는 나는 철이 들려면 아직 멀었다. 


아내에게도 슬쩍 당분간 집안일을 하겠다고 의지를 내보였다.

본심과 다르게 '당분간'이라는 말을 꼭 해야 할 것 같았다.

반신반의하는 눈치였지만, 폐인처럼 늘어져 있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 생각한 건지

알아서 하라는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어떻게 할 거냐 거나, 살림이 만만한 줄 아냐는 식의 매몰찬 반응이 돌아왔다면 말문이 막혔을 텐데 

정말 다행이지 싶었다. 


지금부터 할 게 많아진다. 

내일부터 주부 1일차다. 

막막해도, 하고 싶어 하는 일은 늘 즐겁다.

오랜만이었다. 뭔가가 하고 싶어지는 내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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