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같은 가을이 지나고 절기상 가을이라는 애처로운 말을 꺼내야 하는 추위가 찾아오면 나의 양력 생일이 찾아온다. 그리고 대개는 양력 생일이 지나면 곧 음력 생일이다. 둘 중 하나를 택하라면 나는 무조건 음력 생일을 택할 것이다. 어쩌면 엄마가 내 생일을 잊고 지나쳐 버릴지 모른다는 희망 때문인데, 그 희망은 내가 누군가에게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이라는 것, 그 누군가라는 대상에 엄마가 포함되어야 마땅하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아 본 적이 없다는 것에서 시작한다.
엄마가 총각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던 남편은 애가 둘 딸린 남자였다. 부인 또한 멀쩡히 살아있었으므로 그 남자는 정말 남의 편이었다. 엄마의 선택은 명확해야만 했다. 젖먹이 자식을 키우는 일. 그리고 두 아이의 엄마가 자기 아이들의 아빠를 잃어버리지 않게 하는 일. 나였다면 선택하지도 않았을, 그럴 필요도 없을 일을 엄마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항상 말했다. 내가 당신의 자랑이라고. 나는 엄마에게 어떤 세상이었을까. 세상 모든 것과 모든 사람에게 의미가 있듯, 엄마에게도 내가 꽤 중요한 의미가 된다는 사실마저 부정하는 불효까지 저지를 생각은 없다. 이미 충분히 불효를 저지르고 있으니까.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아도 내 삶은 그리 모범적이지도, 열정적이지도 않다. 그렇다고 어마어마한 명예나 부를 얻은 것도 아니다. 확실히 나는 효도하는 자식은 아니었던 거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또 있다. 엄마가 나에게 바라던 것이 거창한 것은 아니라는 거. 게다가 나조차도 나에게 거창한 것을 바란 적은 없다는 거.
거창하다는 것의 기준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다. 30년이 넘는 세월을 살며 매년 돌아오는 생일마다 떠올리고 되뇌는 비효율적인 고민을 나는 언제쯤 멈출 수 있을까. 그러나 서른이 되기 전에 아이를 낳고, 마흔이 되기 전에 홀로 집을 마련한, 155센티미터와 50킬로그램을 채 넘지 못했던 여성이 살아온 단단하고 거친 삶이 거창한 것이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다.
한 손으로는 지하철 손잡이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스마트폰을 쥔 채 의미도 끝도 없는 수많은 영상을 엄지손가락 하나로 끊임없이 밀어 올린다. 1호선으로 환승하고 두어 정거장을 가고 있노라면 언제나 엄마의 문자 메시지가 도착한다. 내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오늘도 힘내렴. 항상 사랑한다. 초등학교 교육 영상에 나올 법한 대사가 아무렇지도 않게 화면 상단에 띄워지는 동안에도 나는 온 정신을 얼굴보다도 작은 화면에 매몰시킨다. 그러나 오늘은 사뭇 달라야 한다. 어제와 같던 어제의 어제와는 다르면서도 작년의 오늘과는 같은 메시지가 올 테니까. 생일이라는 이유만으로 잔뜩 신경 쓴 대사. 태어나자마자 부여받는, 흔해 빠진 그날마다 되짚어 보는 가정의 역사.
'생일 축하한다. 우리 잘 살아남았지?'
이제는 손가락을 멈추어야만 한다. 그러고는 자식이 탄 출근길 지하철 시간까지 고려해서 메시지를 보낸 엄마를 위해, 당신의 차디찬 출근길 위에서 모든 신경을 당신의 얼굴만 한 화면에 매몰시키고 있을 엄마를 위해 손가락을 움직여야 한다.
'그러게 말이야. 고마워.'
사실은 잘 살아남은 게 아니라 엄마가 나를, 우리를 살린 거다. 엄마에게 나는 살려야 할 세상이었을 거고 그 세상을 유지하는 것은 곧 우리가 존재해야만 하는 의미였을 터였다. 이러한 사실을 종합해 보면 내가 살아야만 하는 건 분명하다. 그것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세상 쓸모없는 나를, 외할머니의 말마따나 뼈가 빠지게 고생하며 나를 키운 엄마에게 미안할 만큼 모자란 스스로가 미워서 생일을 잊고만 싶다. 그러나 고생한 엄마 생각하며 내 생일을 기억하고 살아야지. 나에게도 엄마에게도 미역국을 끓여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건네는 축하를 받아야지. 그렇게 행복하게 살아야 할 의무는 엄마가 나에게 부여한, 건강할 의무와 더불어 내가 가져야 할 의무이자 의미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