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항
어항 청소부는 굉장히 앳되어 보였다. 그녀가 첫 번째 어항 세척을 마치자마자 편수 냄비에 담겨있던 애드를 곧장 어항으로 옮겼다. 희연은 어항을 볼 때마다 한숨이 나왔다. 동생과 마지막으로 통화하던 그때 차라리 다시 가져가 달라고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이거 맞아? 왜 이렇게 커?”
“아무렴 내가 일부러 더 큰 걸로 갖다 줬을까?”
“나 혼자는 청소도 못 하겠는데?”
“언니도 참. 내가 말했잖아. 엄청 크다니까? 또 딴생각하느라 잘못 알아들었구나?”
“......”
수화기 사이에서 잠시 정적이 흘렀다.
“언니?”
“그러네. 메모해 놓은 거 보니까 맞아. 내가 착각했어.”
“다시 가져갈까? 부담스러우면 다시 물러도 돼. 달라는 사람 많아.”
어항을 달라는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키즈카페를 처분하면서 남은 골칫거리에 대해 제부를 통해 이미 들었던 바였으니까. 게다가 이미 계획했던 자리에 어항이 놓였기 때문에 동생에게 다시 어항을 가져가라고 하는 일은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커다란 어항에 물을 채우는 일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어항 청소였다. 누군가 집에 발을 들이는 일이 질색인 그녀로서는 언제까지고 사람을 불러 청소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허리를 숙여 애드를 보던 희연은 천천히 일어나 곧장 부엌을 지나 다용도실에 있는 분리수거 상자 앞에서 손에 든 편수 냄비를 들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이내 싱크대로 가 편수 냄비를 닦기 시작했다. 몇 번이고 냄비를 닦고 말리고 코끝을 갖다 대 냄새를 맡아보았다.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을 때까지, 그런 느낌조차 들지 않을 때까지 냄비를 닦아댔다. 그러고는 냉장고로 향했다. 주말 내내 찾던 꽈리고추가 냉장고 맨 아래 칸 오른편 구석에서 발견되었을 때는 이미 늦어있었다. 비쩍 말라 고꾸라진 꽈리고추를 식탁으로 치워놓고 남편이 가져온 상추를 채소 칸에 그득 채워낸 다음, 식탁 위에 올려둔 꽈리고추를 물에 담가보았다.
열한 시의 햇살은 너무도 강렬해서 그녀의 회색 원피스가 흰색으로 보일 정도였다. 희연은 그런 햇살이 너무 좋았는데, 그건 정적 때문이기도 했으나 정적 때문만은 아니었다.
햇살을 받으며 두 번째 어항을 집어든 준비하는 청소부를 두고 방으로 들어갔다. 고요함을 뚫고 시작되는 소리는 서랍을 여는 소리였다. 설렘이기는 했으나 역시 설렘만은 아니었다. 왼쪽으로 열리는 안방 문 정면 끝의 오른편 구석에 자리 잡은 빛바랜 남색 서랍장 왼쪽 꼭대기에 구급상자가 있었다. 덩그러니 놓인 구급상자를 꺼내 잠금장치를 풀어 뚜껑을 열고 상자 안의 작은 선반 위에 있는 붕대를 꺼내 오른손에 쥔 채로 뒷걸음질 쳐 침대에 누웠다.
온몸에 힘을 빼버린 탓에 자연스레 고개가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방문이 닫혀있는 것을 보고도 그녀는 아무런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지 못했다.
일 년 전이었다.
“방문 닫는 대신,”
문밖에서 방문을 닫던 그녀의 손이 아주 작은 틈을 남기고 나서야 멈춰 섰다.
“이 정도만,”
한 뼘. 이윽고 그녀가 사 온 스토퍼가 한 뼘보다 더 가까워지려는 모든 방문을 막아서기 시작했다. 이러한 이유로 집안의 방문은 닫혀있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그녀의 시신경으로부터 발화한 전기신호가 뇌로 도달한 순간이 한참이 지나서도 문이 닫혀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할 수 없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문 반대편으로, 정확히는 반대편에서 조금 더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나서야 베란다로 이어진 통유리 문이 방 밖으로 나가는 길을 내주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열리고 닫힌 문의 관계를 전혀 이상하게 생각할 수 없었다.
희연은 문득 고개를 돌려 머리맡에 떨어져 있을 붕대를 찾기 시작했다. 불과 하루 전 새롭게 바꾼 짙은 회색 침대보는 어느덧 흰색으로 바뀌어있었고, 그 안에 숨어 버린 붕대를 찾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으므로, 희연은 조금 멀리서 보기 위해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세우려 했다. 그러나 묵직하고도 거칠게 찍어 누르는 힘에 느닷없이 눌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 침대와 정면으로 마주한 거울은 상대를 비춰주기에는 다소 높이 달려있어서 누가 자신을 누르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여전히 그녀는 닫히고 열린 문의 상관관계를 이해할 생각이 없어 보였지만, 자신이 찾던 붕대를 실은 누가 가져갔다는 사실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가까스로, 상대가 붕대를 어떻게 사용할 것이라는 상상은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떠올린 순간 붕대는 그녀의 목을 휘감았다. 촉감만으로 느낄 수는 없었지만, 왼쪽으로 그리고 오른쪽으로, 똑같은 횟수로 감겼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윽고 희연은 상대가 붕대의 양 끝을 잡아당겼을 때 각각의 길이가 정확히 같아지기를, 그녀의 목으로부터 상대의 손까지 이어지는 붕대의 길이 그리고 각도가 완전한 대칭이기를 바랐다. 방의 넓이, 정확히는 자신의 시선과 거울의 거리를 생각해 볼 때, 붕대의 양쪽 끝은 절대 거울을 통해 볼 수 없을 길이였고, 또 어떤 수를 쓰든 간에 양쪽으로 쭉 뻗어있는 직선을 볼 수 없으면서도 양쪽 끝이 같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가 움직일 수 없었던 건 추위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다시 눈을 뜬 건 고작 몇 분 후였지만, 희연에게는 그보다는 더 오랜 시간으로 느껴졌다. 몸을 일으켜 앉아 눈을 비비고 회색의 침대를 훑어보았다. 회색 침대보를 산 것은 아무래도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머리맡에 놓인 붕대를 집어 들었다. 그제야 붕대의 색이 생각보다 더 하얗다는 걸 깨달았다. 이어 서서히 잠이 깨며 한기를 느꼈다. 한겨울에도 보일러를 켜본 일이 거의 없을 만큼 추위에는 제법 내성이 생겼다고 자부했으나 당장은 추위를 견디기가 힘들었다. 4월의 추위였다. 곧장 침대 오른편 머리맡으로 가서 봄을 맞이하며 정리한 옷들을 다시 한번 훑어보던 희연은 회색 원피스를 벗어 침대 위에 가볍게 던져놓은 뒤, 위에 입은 민소매옷은 그대로 두고 안감이 도톰한 기모로 되어있는 바지를 입고 옷장 문에 붙은 거울 앞에서 전신을 훑었다. 갑자기 왼쪽 뒤통수가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대로 서서 거울 한구석으로 눈을 돌려 서랍장이 있는 곳을 빤히 쳐다보았다.
첫 번째 서랍이 틀어져 있었다. 거울로도 한눈에 알 수 있을 만큼. 다시 서랍장 앞으로 가 첫 번째 서랍을 오른쪽에 있는 서랍과 바꾸었다. 이제는 서랍이 틀어지지 않고 잘 정렬했다. 방문으로 향하던 그녀는 다시 한번 서랍장 앞에 서서, 방금 바꾼 두 개의 서랍장을 당겨 안쪽의 내용물만 서로 바꾸었다. 이제 구급상자는 다시 첫 번째 서랍에 들어가 있었다. 서랍의 문제는 해결되었다. 그러나 십오 분 동안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는 아무리 노력해도 떠올릴 수 없었다.
문은 반쯤 열려있었다. 그 사이로 초인종 소리가 들려오는 것도 같았다. 바로 나가보아야 했지만, 그녀는 다시 한번 방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저기, 저기에...”
희연의 목소리는 입술 언저리에서만 겨우 맴돌 정도의 목소리여서, 자신조차도 말을 내뱉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없었다.
*졸음
충동적으로 조퇴를 했다. 서둘러 해를 보고 싶었다. 중섭에게 오후의 햇살은 우울함과 아쉬움의 시작이었으므로 그는 반드시 그 이전의 하늘을 봐야만 했다. 중섭이 집에 들어가는 순간 불청객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당장은 회사에 앉아있기가 힘들었다. 열두 시였다.
굳이 초인종을 누르고 싶지는 않았지만, 집에 있는 사람에게 미리 들어간다는 기척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초인종을 눌러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나 왔어.”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난방 한번 켜지 않아 고여버린 냉기를 희연은 아무렇지도 않게 버틸 수 있는 걸까. 아낄 수 있는 모든 것을 아끼고, 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인생에서 지우고 난 뒤의 집이, 언제고 지금의 모습만큼은 유지할 수 있는 것일까.
구두를 벗자 안쪽의 상표가 닳아있는 것이 보였다. 허리를 숙여 구두코를 현관문으로 돌려놓았다. 왼쪽에 자리한 화장실, 나란히 붙어있는 옷방을 지나쳐 거실에 들어섰다. 환기가 되지 않아서였을까. 굳게 닫힌 거실 베란다 창문을 무시하고 침입한 햇살은 아직 채 빠져나가지 않은 옅은 먼지들에 매달렸고, 빛을 받은 먼지는 쉼 없이 쪼개졌다가 합쳐지기를 반복했다.
오른편에서 시선을 거두고 왼편의 부엌을 지나면 다시 왼쪽의 서재가 있다. 부부가 함께 쓰는 넓은 원목 책상 위에는 마치 기다란 경계선이 있는 것처럼 서로의 물건이 정확히 반반씩 자리하고 있었다. 혹시나 회사에서 온 메시지가 없는지 살펴보며 서재로 들어선 그가 바로 옆에 달아놓은 가방걸이에 가방을 걸어놓고 뒤를 돌아서자 반쯤 열린 안방 문이 보였다. 그대로 손을 뻗어 문을 닫았다. 웬일로 스토퍼가 없어서 문이 끝까지 닫혔지만, 집안 가득히 차 있는 먼지 외에는 신경 쓸 겨를이 없던 그는 옷방으로 가 옷을 갈아입었다. 폴폴 날리는 먼지에 재채기를 연거푸 하고 나서야 창문을 열 수 있었다. 집과 바깥이 통하는 첫 통로를 낸 그는 거실로 나가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열고 소파에 앉았다. 햇빛에 저항하던 먼지는 두 번째 통로가 생기자 시나브로 빠져나갔다. 이윽고 4월의 한기가 눈으로 스미기 시작했다. 중섭은 눈을 감아야만 했다. 그것은 한기 때문이어야만 했고, 한기는 그의 정신을 앗아가야만 했다.
다시 일 년 전이었다.
“낮잠은 시간 낭비야.”
“응?”
“너무 게을러 보이잖아.”
중섭은 어떤 반박도 할 수 없었다. 아예 그 반대로 끊임없이 달아나야만 했다. 이미 온몸에 스민 차가운 냉기 앞에서나 안에서나 똑같이 적용되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팔짱을 낀 채 몇 분인가 가만히 앉아있었다. 이내 팔짱을 푼 그는 시간을 확인할 기력이 없어서, 실은 그 무엇도 할 수 없어서, 쏟아지는 햇살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햇살 말고는 알아볼 수 없었고, 알았다고 해도 아무 의미 없었을 것이다.
문득 중섭의 머릿속을 무언가가 스쳐 가는 바람에 자신도 모르게 눈을 떴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안방 문이 닫혀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므로, 혹은 깨달았음에도, 안방 문을 통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베란다에서 안방으로 이어진 문을 통해 안방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문을 열던 중섭의 발바닥이 움찔거렸지만, 움찔거렸다는 것을 알았을 뿐이었고 이를 느낄 수 있던 것은 아니었다. 베란다로 통하는 문은 통유리 문으로 되어있어서 꽉 닫혀있을 때 열기엔 다소 무거웠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왼쪽에 있는 서랍장의 또 왼쪽 첫 번째 서랍이 미묘하게 틀어져 있었으므로, 중섭은 바로 오른쪽 서랍과 위치를 맞바꾸었다. 서랍의 위치가 서로 바뀌는 동시에 그가 방으로 찾아온 이유는 머릿속에서 이미 사라져 버렸다. 한참 후에야 닫힌 방문을 열어 거실로 나가 다시 소파에 앉았다.
끝내 한기가 그의 정신을 앗아갔지만, 이를 되찾아준 것은 더욱 짙은 한기였다. 소파에서 일어나 베란다와 옷방 창문을 닫던 그는 희연이 거실로 나오는 상상을,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인사를 건네는 상상을 하며 나지막이 말했다.
“나 왔어.”
*졸음, 다시.
다시 열두 시였다. 그쯤이었을 것이다.
구두를 새로 사야겠다고 생각하며 옷을 갈아입고 다시 화장실에 들어간 중섭은 세면대와 거울에 물이 튀기지 않게 조심스레 손을 닦은 후 샤워기를 들어 발을 적시며 최대한 벽에 물이 튀지 않도록 조심했다. 수도꼭지를 잠근 그는 구부정하게 허리를 숙인 채로 물이 튀어 얼룩이 남은 곳이 없는지 살펴본 뒤 욕실을 나와 거실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물기가 바닥에 남지 않도록 조심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소파에 앉기 전, 중섭은 부엌에 덩그러니 놓인 편수 냄비를 보았다. 아일랜드 식탁 위의 얼음장 같은 스테인리스 냄비 안에는 상추와 꽈리고추가 들어있었다. 습관적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편수 냄비 안쪽으로 코를 갖다 대고는 코를 벌름거리며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문득 일전 희연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원래 있던 플라스틱 컵에 넣어두면 안 돼?”
“어항 올 때까지만 놓을 거야. 바로 가져다준대.”
“그러니까 말이야. 곧 올 건데 그냥 그대로 두면 안 되겠어?”
“그 비좁은 곳에 넣어놓을 수는 없잖아.”
“그렇다고 사람이 쓰는 냄비에 넣어놓을 필요는 없잖아. 그리고 투명하지도 않아서 더 좁게 느낄 수도 있지 않겠어?”
“괜찮아.”
“내가 안 괜찮아. 벌써 비린내가 나잖아.”
“창고에 있는 어항은? 우리 어항 하나 있잖아.”
이후의 대화는 생각나지 않았다.
희미하지만 비릿한 물 냄새가 나는 듯했다. 냄새가 없어질 때까지 코를 킁킁거리자 이윽고 냄새가 사라졌다. 잔뜩 숙였던 허리를 다시 펴고, 물기 하나 없이 차가운 싱크대를 둘러본 뒤 다용도실로 향했다. 분리수거함 가득한 비닐, 그 옆으로 잔뜩 늘어선 약병, 반창고를 비롯한 온갖 약이 담긴 상자가 있었다. 오래된 약만 정리한다던 희연은 기어코 구급상자까지 바꾸어버린 모양이었다. 중섭은 오른손에 둘둘 말린 붕대를 풀어 휴지통에 던져버리고는 다시 거실로 나갔다. 애초에 할 일이 있어 조퇴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우두커니 앉아있는 것 외에 할 것이 없었다.
아마 희연은 마트에 갔거나 천변으로 운동하러 갔을 것이었다. 문득 전날 희연과의 저녁 식사 시간이 떠올랐고, 무언가 중요할 것만 같은 내용이, 자신이 알고 있어야만 할 것 같은 사실이 분명 대화 속에 있었던 것 같았다. 그러나 아무리 불러오려 애써도 떠오르지 않았다. 전날 마신 술 때문은 아니기를 바랐다. 술에 약한 것은 몸뚱이지 정신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입버릇처럼 하고 다녔던 터라, 자신의 인지 능력이, 최소한 기억력만큼은 술에 취했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가 같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고 이번에도 그 주장을 접고 싶지 않았던 그는 바닥에 앉아 소파에 등을 기댄 채 미간에 힘을 주며 애써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초침이 없는 거실의 시계도, 텔레비전 대신 벽을 가득 메운 책장과 책장을 미처 가득 채우지 못한 책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중섭은 아무 의미 없이 눈길을 돌려 거실을 눈에 담고만 있었다.
책장과 베란다 사이, 그의 하반신보다도 길어 보이는 짙은 갈색의 원목 장식장이 눈에 들어왔다. 처제에게 받아온다던 그 물건인듯했다. 서랍은 없고 양쪽으로 열리는 문이 달려있었는데, 왼쪽에는 풀색의 물고기 한 마리, 반대쪽에는 녹색 물고기 한 마리가 양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초록의 물고기는 각각 위아래로 머리를 향하고 있었으나 고급스러운 장식장에 비해 그 모습이 무성의하고 볼품없어 초라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그 위로 장식장 크기만 한 어항에서 짙은 푸른빛의 물고기 한 마리가 유영하고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렸다. 며칠 전에는 미처 몰랐는데 열대어였다. 그는 조금 더 가까이 가서 화려한 지느러미를 가진 물고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열대어도 중섭이 떠올리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정말 아무 상관이 없었다. 어항 오른쪽 아래 귀퉁이에 붙은 메모처럼.
그는 다시 소파에 앉아 양팔을 벌리고 목을 젖혔다. 먼지 농도가 점점 옅어지는 것을 보지 않고도 느낄 수 있을 만큼 공기가 맑아질 때까지도 떠올리고자 하는 이야기는 찾아내지 못했다. 그러나 분명 무엇인가, 머릿속에 남겨둘 만한 무엇인가를 찾아야만 할 것 같았다. 잠시 눈을 붙이면 생각이 날 것도 같았지만, 그가 당장 우선시해야 하는 건 계속해서 게으름으로부터 도망가는 일이었다. 창문 틈으로 넘실거리는 차가운 공기가 그 노력을 뭉개주기를 바라면서.
*어항 청소부
처음 어항 청소를 시작한 건 공부가 하기 싫어서라기보다는 돈을 벌고 싶어서였고, 그게 돈벌이가 된 이유는 학교 중앙복도에 있던 커다란, 여학생 서넛이 족히 들어가 누울 정도로 거대한 어항을 청소하던 청소부와의 대화 때문이었다.
한여름 더위에 땀을 뻘뻘 흘리며 붉은 붕어와 열대어를 옮기고 어항을 닦아내던 청소부의 모습이 자못 멋져 보였는데, 사실 성실히 일하는 모습이 매력적이라거나 했던 것은 절대 아니었고, 단순히 남자의 외모가 본인의 취향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아무런 말 없이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마침내 어항 청소가 끝나갈 때쯤, 그녀는 입을 열었다.
“저기요.”
자신을 부르던 소리를 듣지 못했던 것인지, 않았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아저씨!”
“나 불렀니?”
“네.”
“나 아저씨 아닌데.”
“그러면 뭐라고 불러요?”
그는 아이스박스에서 얼린 손수건을 꺼냈다. 얼굴과 목을 한참 닦아내기만 하던 그가 손수건을 집어넣고 두 번째 손수건을 집어 들 때가 되어서야 다시 입을 열었다.
“그냥 아저씨라고 불러.”
“이거 하면 얼마나 받아요?”
“왜? 하려고?”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고, 남자는 말없이 앞에 선 여학생의 이름표를 빤히 바라보았다. 가운데 글자가 ‘회’인지 ‘희’인지 잘 구분되지 않았다.
“많이 벌 수 있어요?”
그녀의 기준으로 많이 번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고 홀로 생활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의 대답은 이랬다.
“그냥 먹고살 만큼은 벌어.”
충분한 대답이었다.
생각보다 꽤 적성에 맞았다. 한 가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남자가 단순한 어항 청소 업체가 아닌 수족관 전문 청소 업체 소속이었다. 상관없었다. 아무 생각 없이 묵묵히 청소만 하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첫 출장에서 너무 뜨거운 물을 넣는 바람에 거피 몇 마리가 익어버린 것을 빼고는 아무 사고 없이 1년 가까이 일해왔다.
‘딩동’ 또는 경쾌한 멜로디를 기대하고 초인종을 눌렀을 때,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는 것만큼 허탈한 일도 없을 거라고 스무 살의 어항 청소부는 항상 생각했다. 어항 청소부는 한번 초인종을 눌렀을 때 멜로디가 나오는지를 듣고 있다가, 단순히 ‘딩동’ 소리만 날 때면 곧장 한 번 더 초인종을 누르고는 했다. 그러나 2음절의 단순한 그 소리조차 나지 않을 때면 그녀는 이내 아쉬워했고, 또 그런 날은 일이 조금씩 꼬이곤 했지만 당장 수족관 청소가 싫어서 도망치듯 나와버린 그녀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똑똑’
응답 없는 초인종에 미련을 버리고 문을 두드린 후 시선을 바닥으로 내린 그녀의 눈에 택배 상자와 운송장에 적힌 수취인의 이름이 보였다.
김*연.
이름 가운데 글자는 가려져 있었으므로 정확한 이름을 알 수 없었다. 예약자 이름이 한중섭으로 되어있었으므로 아마 안주인의 이름인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문이 열고 나온 집주인의 얼굴은 이제 막 일어난 것처럼 보이기도, 마치 방금 씻은 사람처럼 창백하고 건조해 보이기도 했다.
“어항 청소하러 오신 거 맞죠?”
청소부가 여성이라서 다행이라는, 또는 놀란 듯한 표정이 잠시 얼굴에 스쳐 간 것 같았지만 그건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청소부는 집주인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고, 집안은 보일러라고는 한 번도 틀어본 적 없는 집처럼 냉기가 돌았다. 그 냉기 속에서 집주인은 낡은 회색 원피스를 입고 있을 뿐이었고, 그마저도 소매가 없어 팔뚝이 꼭 얼어붙은 것만 같았다.
“여기에요.”
전화로 들었던 집주인의 설명과 달리 어항이 크지 않았다. 아마 어항을 떠받치는 장식장이 너무 커다래서 그렇게 보였을 것이라고 청소부는 생각했다.
“얼마나 걸릴까요?”
그녀는 한 손에 오렌지 주스를 쥔 채로 청소부에게 물었다.
“40분 정도 걸려요.”
그녀의 대답에 집주인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자 청소부는 곧장 이어폰을 끼고 어항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어항 옆 편수 냄비에는 물고기 한 마리가 있었다. 어서 어항으로 옮겨줘야겠다는 생각이 앞서서 원래 같으면 으레 나누었을 인사 역시 나누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머릿속에는 택배가 왔다는 말을 집주인에게 해야 했을까 하는 생각, 집주인의 이름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 어항 받침대에 물고기의 이름을 써놓은 것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하는 생각 따위로 가득했다.
*희연
“다 됐습니다.”
어항 청소부가 목소리를 높여 집주인을 불러 어항을 보여주며 주의사항을 함께 읊어주었다. 모든 설명이 끝나고 청소부는 태블릿 PC를 켜 서명을 받았다. 청소부는 집주인의 이름을 보았고, 집주인은 서명 후 자동으로 발송되는 문자에서 청소부의 이름을 보았다.
“저기, 저기에...”
집주인은 이제 막 돌아서려는 청소부에게 말했다. 청소를 마친 그녀의 하얀 작업복 상의 군데군데 물이 튀어 회색빛이 돌았다.
“작은 어항이 하나 더 있어서요.”
집주인이 베란다 구석에 달린 창고를 가리키자 오히려 청소부가 앞장서서 구석으로 향했다. 창고 앞에 다다르자, 이번에는 집주인이 앞으로 나아가서 창고의 문을 열고 한쪽에 자리 잡은 어항을 가리켰다. 어항은 웬만한 성인 여성 상반신보다 조금 더 커다랬고, 혼자 들기에는 다소 무거운 무게였다. 희연은 한사코 혼자 들 수 있다며 손사래 치는 희연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결국 둘은 서로 마주하고 어항을 들어 베란다 한가운데 깔린 매트 위에 놓았다.
“저는 그럼...”
자신이 베란다에서 쓰는 초록색 의자를 희연에게 준 희연은, 머쓱한 몸짓으로 그리고 그것과는 정반대의 표정으로 주방에서 쉴 새 없이 편수 냄비를 닦아대기 시작했다.
희연은 의아했다. 희연이 꺼내준 어항은 따로 청소할 필요가 없을 만큼 이미 깨끗했기 때문이었다. 원래 같았다면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았겠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햇살의 정적 때문이었을지도, 아니면 창밖에는 없는 오롯한 고요함을 깨고 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둘 다일지도, 그 반대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희연은 양말을 신고 있었기 때문에 발소리를 내지 않고 방안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방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희연이 침대에 누워있었지만, 침대보와 원피스가 같은 색깔이어서 처음에는 눈치채지 못했으므로 방에 아무도 없는 줄로 착각했다. 냉기가 집주인의 정신을 빼앗아 간 것만 같았다. 청소부는 쇼트트랙 선수처럼 양발을 방바닥에서 떼지 않은 채 직선으로 쭉 뻗었는데, 그녀 자신도 왜 그랬는지 알 수 없었다. 희연의 발끝이 멈춰 선 곳은 희연의 발밑이었다. 그러고는 거울 앞에 서서 가만히 희연을 내려다보며 자신을 희연의 정중앙에 위치시키려 애썼다. 그때 희연의 몸이 움찔거렸다.
“저, 저기, 다 끝났어요.”
괜히 오해받지 않을까 우려한 희연이 조용히 말했다. 집주인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바깥에서 이 모든 걸 지켜보던 애드는, 한참 동안 사라진 희연이 다시 돌아오지는 않는 것인지 주시하고 있었다.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집주인을 두고 어항 청소부는 조용히 앞으로 나아갔다. 이번에는 방문을 열어 베란다로 나가 작은 어항을 창고로 돌려놓았다. 햇살이 점점 집안을 데우고 있으면서도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는 대신 집안 가득한 먼지를 희롱하고 있었다. 거의 움직이지 않던 베타가 먼지를 밀어내며 거실로 향하던 그녀를 보고는 갑자기 뒤로 돌았다. 희연도 뒤를 돌았다. 다시 한번 방안의 여인을 바라보던 청소부가 애드에게 인사를 건네지 않았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지만, 거실 가득한 햇살을 방해해서는 안 될 것만 같았다. 그녀는 점점 희연으로부터, 애드로부터 뒷걸음질 쳐 천천히 달아나기 시작했다. 여전히 정적은 깨지지 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