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고립청년에게 다가가기
“안녕하세요, 상담받으러 오셨나요?”
마치 뜻밖의 질문이라도 들은 것처럼 멈칫한다. 긴장한 채로 고개를 끄덕인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자그마하게 들려온다. 내담자 명단에서 동일한 이름을 확인하고 몇 가지 안내와 함께 대기 공간을 안내한다.
나는 이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우리가 생각하는 ‘사회적고립청년(*사회적으로 스스로 고립감을 느끼는 이들을 일컫는 용어)’의 모습은 무엇일까. 척 보기만 해도 사회를 거부하는 듯한 우울한 표정? 어두운색의 모자나 후드를 뒤집어쓴 모습? 공격적인 눈빛? 바닥만 보며 걷는 모양? 하지만 내 앞에 존재하는 이 사람들은 그런 모습이 아니다. 나와 다르지 않은 모습을 한, 하지만 스스로 ‘사회적고립청년’이라고 여긴 이 사람들은 고립 문제로 상담을 받기 위해 직접 상담실을 찾기까지 했다.
나는 그 마음과 생각을 알 수 없어 고민했다. 이들은 비고립청년과 무엇인가 다르다. 이 생각이 콱 박혀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를 오래도록 고민했다. 혹시 나의 무심한 행동이 이들을 더 움츠러들게 만들지는 않을까. 그래서 한동안은 조심스럽게. 지켜만 봤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다 아주 오랜 고립 생활을 마쳐, ‘탈고립’을 이룬 이의 말에서 소중한 힌트를 얻었다. 그저 똑같이 대화하는 것이 좋았다고. 서투르다고 생각해 먼저 말을 건네긴 힘들지만, 누군가 말을 걸어주는 것이 내심 반가웠다고. 듣다 보니 갑자기 머릿속이 환해졌다. 가만. 내가 만난 청년들은 심지어 직접 상담실을 찾을 정도였으니 꽤 적극적인 편이지 않은가. 이미 세상으로 한 발짝 용기를 낸 사람이라면, 그래 나도 용기 내 다가가도 되는 거잖아.
그때부터 말을 걸었다.
시시콜콜하게 날씨가 참 덥죠, 춥죠, 갑자기 비가 오네요 같은 이야기를 건넸다. 누군가는 당황하는 기색이 비치며 그러게요 하는 대꾸를 했다. 그러면 더우니까 시원한 음료를, 추우니까 따뜻한 음료를 권했다. 한편, 누군가는 덥썩 그러니까 감기 조심하라고 나를 걱정했다. (사실 사계절 내내 감기 조심하라는 말을 들었다. 추우면 추운 대로, 더우면 에어컨을 틀어대니까, 비가 오면 또 추우니까. 내가 감기에 걸리지 않은 것은 어쩌면 이들 덕분일지도 모른다!) 내가 좋아하는 과자라며 권하는 때면 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과자 이야기를 뽀시락뽀시락 꺼냈다. 그러자 몇 명이 눈에 익기 시작했다.
다음은, 옷이 잘 어울려요, 무슨 책 읽으세요, 뭘 그리세요 같은 이야기를 건넸다. (가만 보니 고립청년은 유독 상담 시간보다 몇 시간이고 일찍 와 공간에서 혼자 독서나 노트북을 이용해 대기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이들이 조금 더 궁금해졌다. 나에게 좋아하는 것을 설명해주는 때면 이들은 하나같이 반짝반짝 빛이 났다. 한창 말하다 대뜸 오래 붙잡았다며 민망한 웃음을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반짝이는 표정을 보다 보면 이 순간이 이들에게 소중한 순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청년이 읽는 책에, 그리던 그림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다른 청년도 관심을 보일 때도 있었다. 셋이 둘러앉아 이야기하다 보니 서로 상대가 더 멋지다며 소박하고 수줍은 칭찬 릴레이가 이어졌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서는 조그마한 장난을 주고받았다. 다른 청년이 장난에 가담하는 경우도 있었다. 히히 웃으며 나를 놀리고서도 언제나 마지막에는 장난이라고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배려받고 있구나. 그때부터 나도 꼭 장난이라고 말했고 같이 히죽거렸다.
어느 날은 그림을 그리던 청년에게 혹시 저를 그려주실 수 있느냐고 물었다. 멈칫하고 크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서 앗차하는 마음에 괜한 부탁을 드렸다고 사과했다. 그러니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자기가 너무 못 그려서 실망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을 했다고. 깜짝 놀라서 그럴 리는 절대 없다고 되려 당황했다. 그랬더니 휴대폰을 들고 나를 찍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상담사인 내가 곧 다른 내담자를 상담하러 가야 했기 때문에 사진을 보고 그리겠다는 것이었다. 활짝 웃는 얼굴로 사진을 찍었다. 휴대폰 너머로 사진을 찍는 청년의 표정이 꽤 결연하다. 시간이 지나고 받은 그림에는 예쁘게 그려진 내가 있었다. 머리나 옷, 목걸이까지 디테일이 살아있다. 공짜로 받을 수 없을 정도의 퀄리티에 깜짝 놀라 소장 중이던 간식을 마구 꺼내 그림값(?)으로 안겨드렸다. 메신저 프로필로 설정해 두고는 여기저기 자랑을 했다. 나중에 보니, 다른 청년도 커미션(?) 요청을 했단다. 진짜 금손이라며 보여준 고양이 그림은 엽서로 써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이제는 조금 알겠다.
‘사회적고립청년’의 이들은 나와 전혀 다른 존재가 아니었다.
특별한 방법을 고민했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우리는 같은 대화를 나누고, 비슷한 장난을 치며 닮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