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책 (4)

오스트리아 멜크 수도원 도서관에서 <장미의 이름>을 만나다

by 향지소피아


몇 해전 동유럽 여행중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행운을 만났다.

오스트리아 짤즈부르크에서 빈으로 가는 도중에 멜크 수도원에 들르는 여정 중이었다.

버스 안에서 멜크 수도원이 소설 <장미의 이름 >의 배경이 된 곳이라는 가이드의 말에,

나는 눈이 번쩍 뜨였다.

<장미의 이름>?!

옴베르토 에코?!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옴베르토 에코! 내게는 매우 친숙한 이름이었다. 이미 내 책상 위에 오래 머물던 이름이었다. 그는 그 당시 감히 내가 롤모델로 삼고 싶어했던 유일하게 살아있던 대상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은 모두 고인들이 많았다. (지금은 옴베르트 에코도 고인이 되셨다)


그는 그 당시 이탈리아 블로냐 대학의 철학 교수이면서, 소설을 쓰는 작가이기도 했다. 『장미의 이름(The Name of the Rose)』 , 『푸코의 진자(Foucault’s Pendulum)』 , 『전날의 섬(The Island of the Day Before)』 , 『바우돌리노(Baudolino)』 ,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The Mysterious Flame of Queen Loana)』 , 『프라하의 묘지(The Prague Cemetery)』 같은 중세 시기의 팩션형 소설들을 써서 세계적 성공을 거두었다. 나는 특히 『장미의 이름(The Name of the Rose)』을 좋아했다. 이 소설을 좋아한 이유는 팩션형 추리소설이었기 때문이여, 무엇보다 '책'이란 소재가 주된 모티브였기 때문이다.


소설 <장미의 이름> 는 옴베르토 에코의 작품으로 14세기 북이탈리아의 한 베네딕트 수도원을 배경으로, 노승이 된 아드소가 젊은 시절 스승 윌리엄을 따라 수도원을 방문했던 경험을 회고하는 형식으로 서술된다. 그들은 수도원에 머무르는 동안 연이어 발생하는 수도사들의 의문사를 목격하고, 그 진상을 파헤치게 된다. 표면적으로는 “수도원 살인사건”을 다루는 미스터리 플롯을 띠지만, 그 사건의 무대가 봉쇄된 미로형 도서관이라는 점에서 소설은 지식의 통제, 금서(禁書)의 정치학, 해석의 권력이라는 사유의 층위를 자연스럽게 끌어올린다.



곧 도착하게 될 것임에도 멜크 수도원이 궁금증이 일었고, 조바심이 났다. 중세 시대의 도서관을 보게 되다니!


버스는 언덕을 돌아 수도원에 다다랐다. 황금빛 외관의 적요함 속에 수도원은 우리를 맞이했다.



오스트리아 멜크 수도원 : 사진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 멜크 수도원의 내부 도서관 모습 :사진출처 : 연합뉴스 )



수평으로 길게 뻗은 베이지색 회랑을 지나 수도원 안으로 들어섰다.

도서관 안으로 들어섰을 때, 그곳의 공기는 오래된 종이와 세월의 냄새로 가득했다.


책장마다 수백 년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장미의 이름>의 서술적 화자인 ‘아드소 드 멜크’라는 이름이 스쳐 지나갔다. 그가 살았던 상상의 수도원이 바로 여기에,이곳의 실제 공간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묘하게 가슴을 셀레게 했다.



영화포스터 : 1989.06.03.


감독

장 자크 아노

출연

숀 코너리, 크리스찬 슬레이터, 피도르 찰리아핀 주니어, 엘리야 배스킨



<장미의 이름> 이야기 속 곳곳에는 중세 스콜라철학의 논쟁, 신학적 금기와 이단 문제, 웃음과 권위에 대한 성찰 등이 촘촘히 배치되어, 독자는 서사를 따라가며 동시에 사유를 시험받는다.


사건은 결국 “무엇이 진리인가”라는 질문보다, “진리는 어떻게 관리·검열·해석되는가”라는 문제로 전환되고, 이 전환 과정에서 독자는 텍스트와 현실, 해석과 권력의 관계를 낯선 시각에서 목도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장미의 이름》은 추리소설을 빌려 쓴 인문학적 사유 실험이며, 읽기의 방식과 생각의 조건 자체를 이야기로서 재현한 독특한 소설로 평가된다.


소설의 연쇄 살인 사건의 주범은 바로 책이다. 금지된 것을 보려는 욕망, 그 욕망을 검열하기 위한 방법으로 책에 비소를 발라놓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금서는 무엇일까?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과 관계가 있다. <시학>은 그리스 비극의 평론집이라고 할 수 있다. 옴베르토 에코는 이 <시학>을 읽고 가정했다.


과연 아리스토텔레스가 '비극'에 대한 책만 과연 썼을까? <시학>에는 비극뿐만아니라 '희극'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다. 그러니 희극에 대한 것도 썼을 것이다. 그렇다면 희극론은 어디로 갔을까? 이런 가상에서 출발된 것이 <장미의 이름>소설이다. 이 소설은 동명으로 영화화되었다.






한때 나는 모 대학의 철학과 강의실에서 수업의 일환으로 <장미의 이름> 영화를 학생들과 함께 본 적이 있었다. 그때의 나는 스크린 속의 중세 수도원을 하나의 사유의 공간으로만 바라보았다. 책, 기호, 금지된 웃음, 해석의 미로 —그 모든 것이 상징으로서만 존재했다.


세월이 흘러, 나는 그 수도원의 실제 이름인멜크 수도원(Stift Melk)에 도착했다.


도나우 강변의 언덕 위,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수도원의 외관은 영화 속 어두운 수도원과는 전혀 달랐다.

그곳은 황금빛과 노란빛이 섞인, 따뜻한 바로크 양식의 궁전이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마음속의 장면들이 교차했다. 영화 속 차가운 회랑과, 눈앞의 따스한 빛.비밀스러운 도서관의 그림자와, 창문 밖으로 쏟아지는 도나우의 햇살.


나는 그날 두 세계 사이에 서 있었다.

하나는 스크린 속 기억의 세계, 다른 하나는 발로 딛고 있는 현실의 세계.


나는 그날 멜크의 도서관에서 대학 강의실의 나를 떠올렸다. 학생들과 함께 스크린을 바라보던, 아직 멜크를 가보지 못했던 그 시간의 나. 그리고 지금, 중세의 도서관의 한가운데서 그 기억의 장면을 다시 해석하고 있는 또 다른 나.


옴베르토 에코를 벤치마킹히고 싶어했던 그 시절의 결기는 결코 오만이었던가?

여행은 결국 잃어버렸거나 잊혀졌거나 분산되어 있던 '나'를 만나는 과정이다.

그날의 멜크 수도원 기행도 역시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높은 등반을 했던 힘있던 시절의 나와 조우했던 시간이었다.

이 날의 여행은 아쉽게도 동유럽 여행 중의 사진 파일을 일부 소실되어 기억으로만 존재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여행에 같이했던 이들도 지금은 교류를 하고 있지 않아서 그들의 기억 속에 그날의 나는 어떤 모습으로 존재할지 궁금하기도 하다. 제발 이날의 사진 파일들을 돌려받을 수 있다면 정말 좋으련만.



<장미의 이름>에서 장미는 무엇을 뜻할까? 사라졌으나 이름으로 남아 계속 해석되게 하는 빈 자리 즉 진리·사랑·기억·쾌락·지식 등 “잃어버린 것”의 총체적 은유이다.


소설의 제목이 지칭하듯 정말 이름만 남은 멜크 수도원 기행이다. 하지만 뜻하지 않는 백일몽과 조우를 하는 행운의 여행이었다. *


















※ 멜크 수도원은 오스트리아 니더외스터라이히 주 멜크 시에 위치하며,


잘츠부르크와 빈 사이를 이동하는 관광 동선에서 자주 들르는 구간에 있다.


도나우 강을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 세워진 베네딕트회 수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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