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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Jun 11. 2024

찹쌀팥떡

떡에 사랑을 모으다

마음을 모아야 할 일이 있을 때 주변 정리한다.

초점에 정확하게 집중하는 게 좋지만 여의치 않으니 마음을 모으려 정리를 한다. 공부 안 하고 미루다가 시험이 코앞으로 닥쳤을 때 책상 정리부터 했다. 어려서는 그 행동이 나의 불안을 가라앉히려는 노력인 줄 몰랐다.      

들뜬 마음이 고요해져야 초점을 맞출 수 있다. 내 속의 소란함에 화내거나 슬퍼하지 않으려 떡을 만든다.

팥을 씻어서 한소끔 끓이고 물을 버린 후 다시 냄비에 물을 담아 끓인다. 팥의 첫물을 버리는 이유는 불순물을 제거하고 떫은맛과 배앓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팥의 두 배 분량의 물을 붓고 끓이면서 냉장고에 보관하고 있던 찹쌀을 꺼내 풀씨 등 이물질을 골라낸다. 지인이 준 시골에서 농사지은 찹쌀은 시중에서 파는 것과 달리 조처럼 작다. 30분 넘게 이물질을 골라내다 보니 등과 어깨가 아프다. 중간에 팥물이 많이 줄어서 물을 더 넣어 약한 불로 끓인다. 

    


삶이 고속으로 쭉쭉 달릴 수 있는 길이 아니라 장애물을 만나 굽이굽이 돌아서 오르락내리락한다. 찹쌀의 이물질 고르기를 멈추고 씻는다. 종종 더 보이는 이물질을 분리하느라 쌀 씻는 시간이 제법 걸린다. 삶이 이런 장애를 만났을 때 누군가 나서서 다 제거해 주면 떡 만드는 것쯤 별일 아닐 테고, 누군가는 찹쌀의 이물질을 제거하며 무념무상으로 깨달음을 경험할 거다. 나는 내 손으로 다 치우며 몸이 지치기 시작하여 떡 만들기를 괜히 시작했나 의심이 올라온다. 씻은 찹쌀을 압력솥에 안치고 소금 간을 한다. 

    

팥고물 만들 시점이다. 잘 익은 팥에 소금을 넣고 설탕도 넉넉히 넣어 물기를 날리는 작업을 시작한다. 인덕션의 온도를 높여 간간이 젓는다. 물기가 줄어들수록 젓는 횟수가 늘어나고 팥을 뭉개느라 바쁘다. 등 아프고 힘 달려서 앙다문 입을 벌리지 못하다가 숨을 몰아쉰다. 

    

팥고물을 오랜만에 만든다. 딸의 열 살 생일에 수수팥떡 해준 이후 처음이다. 내 인생의 한동안은 건강한 먹거리와 슬로푸드에 꽤 진심이었다. 요리하기가 내 몸의 피로를 심하게 일으키지 않으면 먹거리에 정성을 기울이기를 좋아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남들에게 나는 요리가 싫다고, 요리 못한다고 말하는데, 사실은 요리가 힘에 부쳐서 못하는 거다. 나는 담백한 집밥이 좋다. 집에서 만든 건강한 맛이 나는 떡이 좋다. 집에서 만든 음식은 확실히 속이 편하다. 

    

맞춤하게 달달한 팥고물이 완성된다. 내 입맛보다 딸의 입맛에 맞춘 팥고물이다. 팥고물을 유리 용기에 옮겨 담고 팥이 달라붙은 냄비는 물에 담가두고 헉헉거리며 누울 자리를 찾는다. 몸이 바스러지는 느낌이다. 지금 떡을 완성하기에는 너무 지쳐서 쉬어야 한다.  

   


어렸을 때 집에서 만든 모찌를 기억을 더듬어 만드는 중이다. 어렸을 때 찹쌀은 방앗간에서 쪄왔는데 내가 오늘 하려는 방법은 압력솥에 밥 해서 딸이 사준 식빵 제조기의 반죽 기능을 이용할 예정이다. 등이 빠지는 듯하고 피로에서 오는 울렁거림이 가라앉으면 떡을 완성해야겠다.  

   

딸이 합격 통지받은 두 대학에 유학할 수 없다는 메일을 보냈다. 예상보다 주거비 등이 비싸서다. 유학 포기 메일을 보내기 전 나보고 그 나라의 주거비는 그 정도가 당연하다며 예상하지 못했냐고 말해준 사람이 있다. 예상은 했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던 나에게 콕 박히는 아픈 말이다. 딸이 학비를 장학금 받기로 했으니 생활비는 내가 아끼고 살면 지원해 줄 수 있을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불찰이다.  

   

딸이 가장 가기를 원했던 국가의 대학에서 세 번째 합격통지가 왔을 때 딸이 통곡했다. 보내달라고 떼쓰지도 않으면서 온몸으로 우는 딸을 안고 할 말을 잃었다.

유학을 하고 10년 후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다며 딸은 밥벌이를 걱정한다. 그래서 부모에게 보내달라고 말할 수가 없다고 한다.  

   

스무 살 넘으면 경제적인 부분에서도 인생 책임져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는데 막상 딸이 원하는 것을 선뜻 해줄 수 없는 상황이 되니 자꾸 눈물이 난다. 몸이 힘들다고 하는데 일거리를 찾아 떡을 만든다.   

  

딸이 아르바이트해서 사준 식빵 제조기에 찹쌀밥을 넣고 반죽한다, 20분 반죽한 찹쌀이 손에 그냥 둘러붙게 질척해서 모찌를 만들 수 없다. 원하는 대로 딱딱 이루어지면 좋으련만 현실과 마음 사이에 거리가 있다.  

    

혼자 바람 쐬러 나갔던 딸이 집에 왔을 때 모찌가 아닌 수수팥떡으로 바꾼다. 딸이 질척한 찹쌀을 한 수저씩 떼주면 내가 팥고물에 묻혀서 입에 넣어준다. 수수와 찹쌀가루를 익반죽 해서 해주던 수수팥떡이 아니라 찹쌀밥을 반죽하여 팥고물 묻히는 수수팥떡이다. 수수가 안 들어갔으니 찹쌀팥떡이라고 불러줘야 하려나. 

   

딸이 맛있다며 웃는다. 팥고물도 더 집어 먹는다. 

딸이 굽이굽이마다 걸어 나가는 힘을 잃지 말기를.

때로는 아슬아슬해 보이는 길을 걷더라도 딸 안에 헤쳐나갈 힘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기를. 

   

마음을 모아 떡을 만든다. 몸이 고단하지만 찹쌀팥떡 맛있다고 먹는 딸을 보니 더 만들고 싶다. 떡에 사랑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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