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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현 Feb 06. 2023

시한부 서울살이

"올해도 시집 못 가면 방 빼버릴 테니까 다 정리하고 내려와"

엄마가 3년째 밀고 있는 공갈협박이다. 굳이 '공갈'이라 일컫는 이유는 협박대로라면 이미 고향 집에 내려갔어야 하는데 여전히 서울 땅을 밟고 있어서다. 아무리 공갈이라고 해도 언제 효력을 발휘할지는 모를 일이라 현실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엄마가 서울살이를 담보로 협박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내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누구보다 두려워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동생과 살고 있는 서울 아파트의 전세금이 100% 부모님 몫이라는 것도 이유라면 이유겠다. '세상에, 그 나이에도 여전히 독립을 못 했어?' 놀랄 수도 있겠다. "예. 애석하게도 소녀, 아직도 능력이 부족하여 경제적 독립을 못 하였사옵니다."


나는 논과 밭이 보이는 깡시골에서 태어나, TV에 나오는 ‘서울’세계를 꿈꾸며 자랐다. 그냥 이유 없이 서울이 좋았다. 반짝반짝하고 화려한 도시에 살아보면 소원이 없겠다고 바라면서. 대학을 서울로 오게 되면서 간절했던 소원은 현실이 됐고 그때부터 쭉 서울살이에 한을 풀고 있다. 뭐가 그렇게 좋았냐고 묻는다면 ‘그냥 홍시 맛이 나서 홍시 맛이 난다고 했을 뿐인데…’같은 대답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마냥 서울이 너무 좋았다. "이런 소녀, 정말 시집을 못 가면 다 접고 내려가야 하옵니까?" 물론 협박의 목적은 서울살이 청산이 아닌 딸의 결혼임을 알고 있다. 갑자기 좀 화가 나려고 한다. 엄마한테 끌려가기 싫어서 해야 하는 것이 결혼인가. 4년제를 못 갈 실력이면 전문대라도 가야 하는 그런 선택지가 아닌데. 무려 인륜지대사 결혼인데 말이다. 엄마, 나는 4년제냐 전문대냐를 놓고 고민하는 게 아니고, 애초에 대학을 갈지 말지 망설이는 건데 왜 이렇게 나를 못살게 구는 거야.


엄마는 오늘도 말한다. “시집가야지, 정말 큰 일이야. 좀 지나면 네가 가고 싶어도 못가” 작정하고 비혼을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결혼이 커다란 허들 같아서 막막한 게 솔직한 심정이다. 기혼자의 생활을 엿보면서 오히려 생각이 더 많아진다.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알지 않는가. 결혼하면 따라오는 수많은 희생 절차를. 얼마 전 명절을 지날 때도 K-며느리의 한탄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결혼 시기가 늦어지고 비혼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결혼을 결심하는 것도 안다. 다수가 선택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고 하지만 그저 많은 사람이 가는 길이라고 해서 나한테도 행복한 길이라는 보장은 없다. 답이 없는 질문이 또 꼬리를 문다. ‘결혼은 과연 누굴 위한 것일까? 다들 왜 하는 거지?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게 정말 맞을까?’


딸은 답한다. “결혼하고 싶은 남자가 없는데 어떻게 해?” 그러면 엄마는, 이제 나이도 있는데 눈을 낮춰서 찾아보라고 한다. 또 시작이다. 다시 도돌이표. 사실 미래의 남편과 아이를 상상하며 한 가정을 꾸린다고 가정하면, 무언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기분이 든다. 나를 희생하면서 타인을 보살필 자신이 없다. 올겨울에는 코로나와 독감으로 두 번이나 앓으면서 내 한 몸을 건사하는 것도 무척 힘들었다. 이렇게 비실비실한 내가 타인을 사랑으로 보듬고 돌볼 수 있을지 생각하면 99%의 확률로 실패할 게 뻔히 보인다. 야, 다들 그렇게 어른이 되는 거야. 닥치면 다 하게 되어있어. 아니? 난 그냥 안 닥치고 싶은데? 안 닥치고 살아보는 건 안 될까. 그렇다. 나는 여전히 철부지다. 경제적 독립도 못 했고 신체적 독립도 못한 이런 나약한 인간. 이게 바로 나다.


그리고 엄마가 잘못 생각하는 게 있다. 혼자 산다면 외롭고 천하게 늙는 게 당연하다는 가정. 물론 엄마의 말처럼 미혼이라는 신분으로 40대, 50대를 거치다 보면 외롭고 천한 모습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역시나 뼈저리게 후회할 가능성도 0%라고 단언할 수 없다. 인생에 어떤 것도 절대라는 것은 없다고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땅 치고 후회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닥치지도 않은 훗날을 걱정하면서 현재를 담보로 미래를 준비하는 건 안 될 일이다. 간절히 원하는 선택지가 아니라면 더더욱 신중해야 한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처럼 내가 고를 수 있게 두 갈래의 길이 놓여 있는 인생만 있지 않다. 선택지 모두 나에게는 주어지지 않을 가능성도 있고, 나의 선택과 무관하게 샛길로 빠져버리는 현실을 마주하기도 한다. 결혼도 비슷한 것 같다. 내가 결혼의 길로 걸어가고자 한대도 비혼으로 비껴가는 운명에 놓여있을 수도 있다. 할지 말지 오로지 내 선택만으로 결정되는 문제가 아니다. 인생에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게 어디 하나라도 있던가. 그렇다면, 그저 흐르는 대로 살아보는 건 어떨까. 어차피 가보지 않은 길에 남는 후회와 아쉬움은 필연적이다. 어떤 길을 선택해도 그건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오늘도 그저 주어진 시간에 감사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에 집중하면서, 내 선택과 상관없이 흘러가는 일에는 태연한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할 뿐이다. "그게 아니면 경제적 독립도 못 한 이 소녀, 나약한 몸으로 이 세상 어떻게 살아가겠나이까. 그냥 될 대로 되라고 생각하며 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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