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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현 Jun 07. 2023

혼자 먹는 점심이 더 좋은 사람

사람이 너무 싫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람을 사귀는 데 관심이 없다. 어쩌면 사회성이 결여된 인간이다. 나이로만 보면 "요즘 MZ들은 쯧쯧..." 혀를 차는 꼰대에 가깝지만 마음만은 문제 많다 회자되는 Z세대인 셈이다. 조직안에서 일할 때 가장 힘겨웠던 것 중 하나는 바로 '인사'다. 사무실에 들어서면 밝고 명랑하게 톤을 높여 오버해야만 했던 인사. 한껏 목소리를 높일 만큼 반갑지는 않은 게 진짜 속마음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가식을 떨어야 했다.


한껏 텐션을 올려 밝게 소리쳤다. "좋은 아침입니다","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대체 뭐가 중요한 건지 모르겠어도 열심히 했지만 마음 같아서는 쌩까고 싶었다. 그 정도도 하기 싫으면 때려치우라고, 인사는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동료들과 잘 지내는 것 역시 사회생활이라고, 그것도 안 하면 진짜 답이 없다고. 그런 반응들이 대다수라는 것도 알고 있다. 역시 나는 사회 부적응자가 맞나 보다. 일만 잘하면 되는 거지 왜 굳이 인사까지 잘해야 하는지 도통 모르겠으니까.


많은 관계를 거치면서 지친 나머지 변해버린 건지, 원래부터 이런 인간이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내 기분을 감추고 텐션을 한껏 끌어올려 가식을 떨어야 하는 사회생활이 무척 피곤하다는 사실이다.


인사만큼 힘든 건 점심시간도 마찬가지였다. (회식은 너무 당연하니까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첫 직장에서는 팀원들 모두가 자연스레 함께 나가서 우르르 점심을 먹었다. 메뉴를 고르는 선택권이 나에게까지는 잘 오지 않았다. 먹고 싶은 것을 먹지 못하는 것은 둘째고 편하지 않은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밥을 먹는 시간이 너무 고단했다.


관성처럼 이어지던 점심시간을 도저히 못 견디겠던 어느 날, 은행에 볼일이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혹여나 들킬세라 최대한 먼 곳으로 걸어가 먹고 싶던 콩나물국밥을 먹고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겼다. 혼자서 맘껏 누린 점심시간의 기억은 회사생활 중에 몇 안 되는 행복한 기억 중 하나다. 고작 점심을 혼자 먹겠다고 거짓말까지 해야 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이런 나의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성향을 고백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이상하고 모난 사람으로 보이는 건 또 두려워서다. 학창 시절에는 친구들과 잘 지내야 칭찬받고 사회에서는 사람과의 관계도 능력이라고 인정받는 분위기가 분명히 있어서다. 대세를 거스르고 소신을 드러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나를 제대로 내보이는 데도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안다.


'나의 해방일지'라는 드라마를 알기 전에는 나만 이런 인간인 줄 알고 살았다. 드라마에 공감하며 여기저기서 속출한 극내향인들을 보고 나 같은 인간이 곳곳에 숨어있다는 걸 새삼 알게 된 것이다. 드라마 속에서 염미정(김지원)은 "모든 관계가 노동이에요"라고, 구씨(손석구)는 "싫을 때는 눈앞에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싫어"하고 말한다.


관계 맺는 걸 노동이라고 속 시원하게 고백하는 염미정(김지원)과 사람이 지긋지긋하다고 내뱉는 구씨(손석구)를 보고 괜히 따스함이 일었다. 나는 대개 '너만 그런 거 아니야. 나도 그래'라는 공감을 통해 위로받는다. 나만 그런 건 아니구나. 사람이 싫고 인간관계가 피곤해도 되는 거구나. 이러면 안 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에 마음이 든든해졌다.


왜 항상 '이래도 되는 걸까, 이게 맞는 걸까?' 모든 판단을 외부에서 인정받으려 하는지 모르겠다. 외부의 평가에 신경을 꺼버릴 만큼 튼튼한 자아를 갖지 못한 탓일 거다. 여전히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자리는 불편하고 힘들다. 서로를 소개할 때 흐르는 어색한 공기, 대화에 공백이 생기면 얼른 메꿔야 하는 것은 아닌지 자꾸 눈치를 보게 되는 순간들. 그러면서도 애써서 편안한 척해야 하는 일 모두.


고백하니까 속이 다 시원하다. 이런 나를 드러내며 살았다면 한결 편했을지도 모르는데. 지금부터라도 나의 폐쇄성을 종종 고백하며 시원해지고 싶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꺼내고 보여주는 건 두렵고 어렵지만 들켜버렸을 때만 느낄 수 있는 속시원함이 있다.


그래, 좀 들키면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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