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로 인간이라면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은 욕심은 무리더라도 자신이 매력적인 사람이고 싶을 것이다. 노잼과 무매력으로 점철된 인간이고 싶은 사람이 과연 있을까. (있다면 알려줘~) 적어도 나는 그렇다. 내가 매력 있는 사람이고 싶지 지루한 인간이고 싶지 않다. 나를 앞에 두고 상대가 연신 하품해댄다고 상상하면 조금 슬픈 기분까지 든다. 갑자기 이 매력이라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에 대한 쓸데없는 고찰이 시작됐다. 사실 뚜렷하게 물성을 가진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누군가 '이게 바로 매력이라는 것이오' 하면서 가져다줄 수도 없는 노릇인데, 어떻게 정의를 내려야 할 것인가.
지금은 '신호등'으로 많이 알려진 가수 이무진을 몇 년 전 무명가수전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인상 깊게 봤다. 소박한 모습으로 기타를 치며 뱉어낸 첫 소절 '여보세요~ 거기 누구 없소' 한마디의 노래만으로도 감탄을 부르는 목소리에 귀를 빼앗겼다. 너무 좋아서 유튜브 클립으로도 그 노래를 여러 번 들었더니 어느새 알고리즘으로 새로운 영상이 띄워졌다. 그가 TV에 출연하기 전 모교인 서울예대 복도에서 동기와 함께 장난치듯 부른 '잉글리쉬 맨 인 뉴욕' 노래 영상이었다. 그 영상을 여러 번 보았더니 이번에는 유튜브가 '잉글리쉬 맨 인 뉴욕'의 원곡 가수인 스팅의 라이브 공연으로 나를 데려다주었다. 자유로운 몸짓과 표정으로, 나는 커피 같은 건 안 마시고 차 마시는 영국인이라고 노래를 뽐내는 데 이무진과는 다른 음색과 매력으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때 어깨너머로 보던 동생이 잠시 눈을 못 떼고 바라보더니 남자가 봐도 매력이 넘친다고 줄줄 칭찬을 늘어놓았다. 이내 휴대폰으로 눈길을 돌려 검색하더니 말한다. "그래! 역시 이혼했네. 이혼했어. 저렇게 멋있는데 여자들이 가만뒀을 리가 없어." 그 순간, 내가 찾던 매력의 실체라는 것이 과연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매력이 있으면 이혼을 밥 먹듯이 해도 상관없고 매력이 없어야만 결혼생활을 이어간다는 맥락으로 의견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여자들이 가만 안 둘 만큼 매력이 흘러넘친다는 지나친 칭찬에 설득당한 것은 사실이다. 나도 눈이 달린 인간인지라 중년의 모습을 하고 노래를 부르는데도 묘하게 사람을 홀리는 스팅의 모습을 부인할 수 없었다는 게 맞겠다.
나는 짐짓 물었다. "야, 사람의 매력은 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왜 누구는 있고 누구는 하나도 없을까?" 노래하는 모습만 보고도 여자들이 가만 안 두겠다는 말이 흘러나올 만큼 온몸으로 멋짐을 뿜어내는 스팅, 이왕이면 나도 그런 사람이면 좋겠다는 소망이 기저에 깔린 물음이었다. 동생의 답변은 아주 뜻밖이었다. 말하자면 출생 전 스스로 성별을 결정하지 못하고 태어나듯이 매력 역시 자연스레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라서 누구도 말로 명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영역이라는 것이다.
흥! 갑자기 조금 심술이 나면서 마음이 조급해졌다. 무매력으로 태어났다면 노력해서 바꾸지도 못한다는 것이잖아! 재능과 외모도 모자라 매력까지 모두 태어날 때 바로 정해지는 것이라면 인생은 너무 불공평하다. 내가 가진 매력 씨앗의 크기가 혹여나 작을지 모르니 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 좋아, 내가 매력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는 문제는 일단 접어두자. 내 마음을 사로잡은 타인들을 떠올리며 실체라고는 없는 안개 같은 ‘매력’이란 개념을 한동안 생각했다. 내 눈길을 끄는 사람들을 왜 매력적이라고 느끼는지 정리하다 보면 실체를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이 글은 그런 취지로 쓰게 되었다. (잘못하면 그저 최애 연예인 소개 리스트가 될지도 모르겠다)
1. 배우 박정민
내가 박정민을 눈여겨본 것은 ‘쓸만한 인간’이라는 그의 에세이를 읽고 난 후다. 책 덕후다 보니 자연스레 글을 잘 쓰는 사람에게 동경이 피어나는데 박정민의 글은 아주 오묘한 끌림이 있었다. 그가 나온 영화를 봤을 때는 관심이 가지 않다가 책 한 권을 단숨에 읽게 만든 필력 때문에 눈길이 갔다. 책을 읽고 난 후에 보니 박정민이 이렇게 잘생긴 배우였나? 싶게 멋있어보였다. 관심의 안테나가 뻗치게 되니 그가 나오는 프로그램을 조금은 집중해서 보게 되었는데 특히 '나 혼자산다'를 재미있게 봤다. 그리고 나는 또 한 가지의 포인트에 반하게 된다. 매니저를 대동하지 않고 남의 시선에도 신경 쓰지 않으며 모닝을 모는 그의 담백한 모습에. 평소 허세가 있는 사람을 싫어해서 그런지 적어도 남에게 보여주기식의 삶을 살지는 않을 것 같은 그의 가치관을 모닝을 통해 짐작했다. 펭수에 빠져 덕질하는 면모는 좋아하는 대상에 솔직하고 무언가를 진심으로 좋아할 수 있는 열정을 가졌다는 점에서 보기 좋았다. 한 번 반하게 되니 자연스레 그의 이력을 찾아보게 된다. 나무위키를 한 번 읽어보았다. 학창 시절 열심히 공부해서 고려대에 갔지만 끝내 배우를 하고 싶어 한예종으로 방향을 틀었다고 한다. 그의 미친 재능에 다시 한번 입이 떡 벌어진다. 한마디로 그는 팔방미인이구나. 이런 매력적인 인간!
2. BTS RM
우선 고백하자면, 나는 아이돌 그룹에는 딱히 관심이 없다. RM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문제적 남자’라는 한 TV 프로그램에서였다. 나는 그를 랩몬스터로 먼저 알았다. 생전 처음 보는 아이돌 멤버가 높은 아이큐를 자랑하며 어려운 문제들을 막힘없이 풀어내는 것을 보고 아, 이런 게 바로 뇌섹남이구나! 생각했던 것 같다. 다른 뇌섹남들도 있었지만 유독 랩몬스터에게 눈이 갔다. 프로그램 내에서 모의 면접 같은 걸 하는데도 앞뒤가 꽤 논리적이라 귀를 기울이게 하는 ‘멋짐’이 있었다. 결정적으로는 그가 공식 석상에서 하는 발언, 가끔 전하는 글을 통해 말과 글을 다듬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말과 글이 다듬어졌다는 것은 내뱉기 전에 사색으로 한 번 걸러냈다는 뜻이다. 아이돌이라면 춤추고 노래하는 것이 전부라고 편견을 가져서인지 몰라도 사색하는 사람이라는 점이 고스란히 매력으로 다가왔다. 가끔 영어 공부를 하면서 늘지 않는 내 처지에 풀 죽을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갈수록 느는 그의 영어 실력 또한 나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내가 잘하고 싶은 분야에 두루두루 재능이 있는 RM을 볼 때마다 멋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3. 제니퍼 로렌스
영어 공부를 위해 봤던 인터뷰 영상을 통해 그녀를 알게 됐다. 우연히 보게 된 영상은 2013년 오스카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러 가다가 계단에서 넘어지는 장면이었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넘어진 그녀의 모습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게 느껴져 미소가 번졌다. 무려 오스카 시상식에서 주연상을 받는 명예로운 순간에 꽈당 넘어지는 실수가 생기다니. 아름다운 자태에서 뿜어져 나온 귀여운 면모가 반전이었는지 확 반해버리고 말았다. 시상식이 끝나고 치러진 백스테이지 인터뷰에서 보여준 그녀의 모습은 더 매력적이었다. 생각나는 대로 할 말을 다 뱉어내는 모습이 조금은 엉뚱하면서도 귀여웠다. 살짝 허스키한 그녀의 목소리는 한층 더 매력을 더해주었다. 매력적인 사람은 계속 보고 싶어지는 특징이 있다. 나는 그녀의 모습을 더 많이 찾아보았다. 오스카 시상식에서 드러난 사랑스러운 성격은 그녀의 평소 성격인 듯 했다. 거리낌 없이 생각하는 바를 내뱉고 쿨하면서도 당당한 모습이 정말이지 매력적이다.
이제는 답을 찾았을까? 여전히 모르겠다. 역시 우려한 대로 좋아하는 연예인을 소개하는 글이 되어버린 것 같다. 뚜렷한 답을 얻지는 못했지만, 사람마다 고유한 매력을 소유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은 하게 됐다.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가고 자꾸 찾아보게 되는 인간의 매력, 이것은 결코 하나로 통일되지도 않고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 같지도 않다. 결국 확고한 삶의 방식을 고수하다 보면 자연스레 삶의 결과물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결정적으로 나를 끌어당기는 상대의 매력 요소는 객관식보다 주관식 답에 가깝다. 저마다 매력 요소를 다르게 가진 만큼 상대의 매력 포인트로 꼽는 요소 또한 천차만별이다. 분명 BTS라는 그룹에서 RM보다 다른 멤버를 더 좋아하고 배우 박정민보다는 배우 이제훈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테니까. '매력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애초에 답 같은 게 없는 문제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