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강진 Jan 10. 2022

호주 오지에서 만난 중국 유적지(?)

캐러밴으로 돌아 보는 호주 대륙: 크로이던(Croydon)


오늘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냇가로 걸어가 물소리와 함께 몸을 풀며 아침을 시작한다. 조금 서두르는 아침이다. 새로운 목적지로 떠나는 날이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빵으로 아침을 해결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익숙해진 솜씨로 캐러밴 정리도 끝냈다. 야영장을 벗어나 고속도로에 들어선다. 아침에 내리쬐는 햇살을 뒤에서 받으며 서부 내륙으로 깊숙이 들어간다. 


얼마나 운전했을까, 포장한 도로가 끝난다. 지금부터는 도로 중앙에 자동차 한 대만 지나갈 수 있도록 대충 포장한 도로가 시작된다. 앞에서 오는 자동차와 마주치면 한쪽 바퀴는 포장되지 않은 흙길을 달릴 수밖에 없는 좁은 도로다.

 

문제는 로드 트레인(Road Train)을 만났을 때이다. 로드 트레인은 컨테이너를 4개까지 끌고 가는 긴 트럭이다. 트럭 길이가 최대 55m가 된다는 안내판을 본 적이 있다. 도로를 달리는 기차라고 부를 만하다. 로드 트레인과 마주치면 흙먼지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심지어는 작은 돌덩이들이 튀어 앞유리창이 깨졌다는 여행자들의 투덜거림을 몇 번 들은 적이 있다. 제대로 포장되지 않은 2차선 도로에서 로드 트레인을 만나면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는 이유다.

   

캐러밴을 뒤에 달고 조심스럽게 두어 시간 운전하여 조지타운(Georgetown)이라는 동네에 도착했다. 인구는 200여 명밖에 되지 않지만, 여행객이 많이 찾는 동네다. 동네 중앙에 있는 공원에 주차하고 몸을 풀면서 공원 주위를 걷는다. 공원에는 캐러밴을 세우고 휴식을 취하는 사람이 많다. 오지에서는 큰 동네에 속하기 때문에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넣는 자동차도 많다. 작은 동네에서는 휘발유 가격이 비싸기 때문이다.

  

공원 끝자락까지 걸어가니 도로 건너편에 정육점이 있다. 오지에서 신선한 고기를 살 수 있는 정육점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반가운 마음으로 길을 건너 정육점을 찾았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가게 안으로 들어가는 손님 숫자가 제한되어 있다. 따라서 정육점 앞에는 서너 명의 손님이 기다리고 있다. 그중에 젊은 동양인 여자도 있다. 낯선 오지에서 동양인을 만나니 상대편도 반가운 마음이 들었나 보다. 이야기를 쉽게 나누기 시작한다.

  

시드니에 사는 사람이다. 이곳에 온 지 한 달 되었다고 한다. 어린이집 교사로 1년 동안 지낼 것이라고 한다. 힘들지 않겠냐는 질문을 했다. 그러나 오지에서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어 만족한다고 하며 자랑스럽게 자신의 삶을 이야기 한다. 거리낌 없이 생소한 삶을 받아들이는 모습이 마음에 든다.

          

신선한 스테이크 고기를 아이스박스에 담고 다시 길을 떠난다. 광활한 광야를 달린다. 지평선이 다시 펼쳐진다. 작은 동산 하나 보이지 않는 사방이 완전히 트인 지평선이다. 산이 많은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에 시선을 빼앗기면 크로이던(Croydon)이라는 동네에 도착했다. 이름이 낯설지 않다. 초창기 한국 이민자들이 많이 살던 시드니에 있는 동네와 이름이 같기 때문이다.

 

이곳에 머물기로 했다. 최종 목적지인 바닷가 동네, 카룸바(Karumba)까지는 너무 멀기 때문이다. 동네를 자동차로 둘러보며 하나밖에 없는 야영장에 들어섰다. 주인으로 보이는 부부가 친절하게 맞이한다. 작고 오래된 야영장이다. 그러나 시설은 제대로 갖춘 야영장이다. 미리 와서 지내는 여행객들과 이야기도 나누면서 캐러밴 주차를 끝냈다.

   

점심시간이 지났다. 허기를 채우려고 가까운 곳에 있는 카페를 찾았다. 주유소와 작은 가게도 운영하는 카페다. 특이한 것은 가게에서 일하는 여자가 프랑스 사람이다. 프랑스 억양이 심하게 섞인 영어로 주문을 받는다. 여행 중에 잠시 머물며 남자 친구와 함께 용돈을 마련하는 중이라고 한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남자 친구는 물건 정리를 하고 있다.

 

식탁에 앉아 있으니 홍콩에서 왔다는 청년이 주문한 샌드위치를 가지고 온다. 혼자서 여행 중이라고 한다. 호주를 다니다 보면 경비를 벌어가면서 여행하는 사람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심지어는 어린아이를 데리고 용돈을 벌어 가면서 여행하는 젊은 부부를 만나기도 했다.

   

하루가 끝날 무렵 동네를 걸으며 새로운 환경에 빠져본다. 을씨년스러운 바람이 세차게 분다. 지평선 너머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다. 수많은 새가 전깃줄을 오가며 시끌벅적하다. 땅거미가 지는 들판에도 수많은 새가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며 떼를 지어 날아다닌다. 해가 지면서 만들어낸 빠알간 황혼이 하늘을 덮기 시작한다. 광야에 와 있음을 실감한다.

    

다음 날에는 가까운 곳에 있는 호수(Lake Belmore)를 찾았다. 관광지로 소개하는 호수다. 야영장을 나와 작은 언덕을 오르니 넓은 호수가 나타난다. 물이 귀할 것으로 생각했던 황량한 들판에서 예상하지 못한 풍경에 접한다. 호수 근처에는 최근에 악어가 나타났다고 하며 수영을 금지한다는 경고문이 있다. 바비큐 설비와 식탁 등도 넓은 호수가 한눈에 내려 보이는 장소에 마련되어 있다.


이곳에는 새를 비롯한 야생 동물을 관찰할 수 있도록 벙커를 설치해 놓았다.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야생 동물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만들어 놓은 벙커다. 카메라를 들고 잠시 벙커에 머무른다. 대낮이어서인지 특별한 동물이나 새는 보이지 않는다. 조금 떨어진 하늘에 솔개 서너 마리가 유유히 바람에 몸을 맡기고 맴돌고 있을 뿐이다. 야생 동물이 활동하는 이른 아침이나 저녁에 와야 할 것 같다.

    

호수를 벗어나 근처에 있는 전망대(Diehm’s Lookout)에 들렸다. 지평선이 보이는 너른 들판 한구석에 자리 잡은 작은 동네가 인상적이다. 마치 동화에 나오는 동네 같다. 들판을 타고 불어오는 바람은 마음 깊은 곳까지 쓰다듬으며 지나간다. 전망대 주위에는 이름 모를 노란 들꽃이 피어 있다. 천박한 환경에서 자라는 꽃은 더 아름답게 보인다.

   

전망대를 떠나 운전하는데 황색으로 쓰인 이정표가 보인다. 황색 팻말은 볼거리가 있다는 표시다. 이정표를 따라가니 중국 사람들의 유적지가 나온다. 금광을 찾아온 중국인들이 1880년대에 정착했다고 한다. 그들이 건축한 절과 삶의 흔적을 관광지로 만들어 보전하고 있다. 혹시 영국사람보다 중국 사람이 호주에 먼저 정착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호주 오지를 다니다 보면 중국인 묘지가 있을 정도로 중국인의 발자취를 자주 접한다.

 

다음날에는 관광안내소에 들렀다. 관광지를 찾아보기보다는 인터넷 연결을 위해서다. 안내소에 도착하니 동상과 의자를 비롯해 많은 물품이 철로 만들어져 있다. 철이 풍부한 동네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메일을 열어보는 등 인터넷을 사용을 끝내고 관광안내소를 둘러본다. 중국인들이 쓰던 물건, 한문으로 쓴 묘비 등 중국과 관련된 것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설명서를 보니 35년에 걸쳐 23,675kg의 금을 이 지역에서 채굴했다고 한다. 안내소 전시품들도 금과 관계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오후 늦게 술집(Pub)을 찾았다. 동네 분위기에 젖어 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동네 한복판에 있는 맥줏집은 이곳에서 규모가 제일 큰 건축물이다. 맥주를 앞에 놓고 주위를 둘러본다. 동네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여행객이 대부분이다.

  

오래전에는 금을 찾아온 사람으로 북적였던 동네다. 심지어는 중국인까지도 바다를 건너 찾아왔던 동네다. 그러나 지금은 한가한 동네로 바뀌었다. 금이 없기 때문이다. 중국인을 비롯해 금을 찾아왔던 사람들은 또 다른 금, 부를 찾아 떠난 것이다.

 

부를 찾아 나서는 삶은 현대인이 당연시하는 삶이다. 나의 삶을 돌아보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삶을 보면 마음 한구석에 알 수 없는 불편함이 조금은 자리 잡고 있다. 부를 찾아 나서기보다는, 행복을 찾아 나서는 삶을 잠시 생각해 본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우리의 필요를 위해서는 풍요롭지만, 탐욕을 위해서는 궁핍한 곳이라는 성인의 말씀이 떠오른다. 은퇴자이기에 쓸데없는 생각에도 잠길 수 있는 특권(?)을 누린다. 

작은 동네이지만 전시관까지 마련해 놓고 여행객을 맞는 여행정보센터(Information Centre)

작가의 이전글 관광객보다 강태공이 많이 찾는 동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