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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진 Mar 17. 2022

물고기와 아이들이 뒤섞여 지내는 바다

캐러밴으로 돌아보는 호주 대륙: 호주 최북단 행정도시 다윈(Darwin)

폭포와 개미집으로 둘러싸인 유명한 리치필드 국립공원(Litchfield National Park)을 떠나 다윈(Darwin)으로 향한다. 인구가 150,000명 정도 되는 행정 중심 도시다. 가까운 곳이라 일찌감치 다윈에 도착했다. 북쪽이 바다로 가로막혀 있는 호주 최북단에 도착한 것이다. 열대 지방에 버금가는 더위로 숨이 막히는 도시다. 


다윈은 관광객이 많이 찾는 도시다. 그러나 야영장에 빈자리가 많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일 것이다. 캐러밴을 설치하고 나니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다. 내리쬐는 태양열이 강하다. 점심을 준비하기에는 너무 지쳤다. 혹시나 해서 한국 식당을 인터넷으로 찾아보았다. 괜찮은 한국 식당 사진이 떠오른다. 오랜만에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힘이 난다. 


한국 식당에 도착했다. 바다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생각보다 규모가 큰 식당이다. 오늘같이 더운 날에는 냉면이 제격이다. 맥주로 일단 목을 축이면서 메뉴를 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냉면 혹은 더위를 식힐만한 음식은 없다. 차선책으로 돌솥비빔밥을 주문했다. 에어컨 바람으로 실내가 선선해 먹을 만하다.  


한국 냄새 물씬 풍기는 얼큰한 음식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식당을 나선다. 식당 건너편에 있는 워터프런트(Waterfront)라는 관광지를 둘러본다. 바다 수영장은 사람으로 붐빈다. 인공적으로 파도를 만들어 즐거움을 배가하는 수영장도 보인다. 바다에는 악어가 서식하기 때문에 파도를 즐길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다음 날에는 박물관을 찾았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자리 잡은 규모가 큰 박물관이다. 이곳에서 서식하는 다양한 물고기와 식물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넓은 전시관을 둘러본다. 다윈을 강타해 70명 이상이 목숨을 빼앗고, 많은 재산 피해를 준 태풍을 간접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전시관에서 특이한 경험도 한다. 박제가 되어 있는 큼지막한 바다악어도 있다. 몸무게 780kg, 길이가 

5.1m 되는 대형 악어다. 다윈을 다방면으로 소개한 박물관이 마음에 든다. 


박물관 건물을 나와 바다를 바라본다. 백사장이 없다. 너른 갯벌만 펼쳐져 있는 황량한 해변이다. 박물관에서 보았던 대형 악어가 서식하기에 좋은 장소라는 생각이 든다. 

박물관 뜰에는 5개 정도의 컨테이너가 줄지어 있다. 궁금증을 가지고 찾아갔다. 이곳에서는 컨테이너 내부를 전시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호주 무역의 많은 부분이 다윈 항구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자랑하는 전시관이다. 해양 무역을 상징하는 컨테이너를 다용도로 활용하는 사례도 보여준다. 전시물 중에 컨테이너를 이용해 지은 건물이 시선을 끈다. 한국에 있는 건물이라고 한다. 컨테이너에는 '오픈 스쿨'이라고 쓰여 있다. 외국 생활을 오래 했으나 한국을 만나면 반가움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갈 곳을 찾아본다. 관광안내 책자를 보니 물고기와 사람이 함께 지내는 관광지가 있다. 물고기 먹이 주는 시간에 맞추어 찾아갔다. 주차장에 자동차가 많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니 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이 대부분이다. 잘 가꾸어 놓은 연못에서는 큼지막한 게와 거북이들이 한가하게 노닐고 있다. 


해변에는 수많은 물고기가 던져 주는 먹이를 먹느라 어수선하다. 스피커에서는 사람 사이를 오가는 물고기를 소개하고 있다. 발을 적시고 바다에 들어가 빵조각을 물에 담가 보았다. 팔뚝 크기의 물고기들이 달려든다. 바다에 사는 물고기가 식사(?) 시간에 맞추어 모여든 것이다. 색다른 경험에 빠져든다. 

다윈에 왔으면 꼭 들려야 하는 해변이 있다. 민딜 해변(Mindil Beach)이다. 석양을 마주하면서 세계 각국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유명한 관광지다. 오늘은 해변에서 마켓이 열리는 날이다. 저녁 시간에 마켓을 찾아 나섰다. 예상했던 대로 넓은 주차장은 빈틈이 없다. 교통 안내원의 수신호를 따라 멀찌감치 주차하고 해변으로 걷는다.


마켓은 사람으로 붐빈다. 개성 있는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 화려한 단색의 의상을 전시한 가게가 보인다. 다윈의 풍경을 담은 사진을 파는 가게도 있다. 젊은 일본 여자는 자신이 직접 그린 풍경화를 팔고 있다. 거리의 악사들은 빠른 템포의 음악으로 흥을 북돋운다. 독특한 가게들이 어우러져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사람이 많이 모여 있는 음식 파는 곳을 둘러본다. 다양한 국가의 음식 냄새가 진동한다. 이탈리아, 스페인, 태국은 물론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가게도 있다. 여행하면서 구미에 당기는 음식을 찾지 못해 고민했지만, 이곳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너무 많아 고민에 빠진다.  


거리의 음식으로 저녁을 때우고 해변에 나가 석양을 기다린다. 백사장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에게 미소를 머금고 시선을 고정한 엄마의 모습이 포근하다. 연인끼리 술잔을 들고 앉아 있는 모습이 정겹다. 혼자서 자신만의 삶에 젖어 황혼을 기다리는 여자의 모습도 아름답다. 떨어지는 해가 바다와 하늘을 수 놓는다. 수없이 보아온 황혼이지만 같은 풍경을 반복하지 않는다. 매료될 수밖에 없다. 

오늘은 관광객이 많이 찾는 부두(Stokes Hill Wharf)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부두에는 관광객도 있지만, 다윈에 사는 주민도 많이 찾는 것 같다. 큼지막한 물고기를 잡아 올린 강태공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고 있다. 젊은 중국인 부부가 낚싯대를 바다에 담그고 대어를 기다린다. 관광객을 태우고 섬으로 떠나는 배들이 보인다. 거대한 군함도 정박해 있다. 


부두 한복판에는 거대한 관람차(Wheel)가 천천히 돌면서 관광객을 유혹하고 있다. 옆에는 전시관이 있다. 호주 대륙을 비행기로 다니며 환자를 돌보는 의사(Flying Dr.)와 일본군의 호주 공습을 보여주는 전시관이다. 더위도 피할 겸 에어컨으로 시원한 전시관을 찾았다. 


전시관에 들어서니 2차 대전 당시 일본군의 공습에 대한 사진과 설명이 벽을 장식하고 있다. 일본이 1942년 2월 19일에 250여 대가 되는 비행기로 다윈을 폭격했다고 한다. 폭격의 굉음과 진동을 느낄 수 있도록 장치해 놓은 시설에 올라가 전쟁의 두려움을 간접으로나마 경험해 본다. 흥미로운 사진 앞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일본 군인 사진이다. 포로라고 한다. 앳된 모습의 젊은이다. 호주에 일본군 포로가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전쟁관 옆에는 오지에 사는 주민을 찾아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구급 비행기에 대한 소개가 장황하다. 같은 전시관에 사람을 죽이는 전쟁과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전시가 함께 열리고 있다.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든다.


입체 영상을 체험하는 안경을 써 보았다. 비행기를 타고 왕진하러 가는 의사가 되어 본다. 발아래 호주의 광활한 대륙이 펼쳐진다. 유명한 국립공원 상공을 날아가기도 한다. 호주 대륙을 누비는 의사 생활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시관을 나와 부두에 있는 식당가를 찾았다. 늦은 점심을 먹으며 바다를 바라본다. 일본군 폭격기가 지금 내가 있는 상공을 누비며 폭탄을 퍼부었을 것이다. 일본군 포로 사진이 어른거린다. 국가를 위해 목숨을 버리라는 교육을 받았을 것이다. 


군사독재 시절,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났다는 교육을 받으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지금은 고국을 떠나 호주에 살고 있다. 국가란 무엇인가, 잠시 생각에 잠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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