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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진 Apr 06. 2022

온천에서 만난 청년에게 미안한 이유

캐러밴으로 돌아보는 호주: 캐서린(Katherine

무더운 날씨에 비포장도로에서 흙먼지와 지냈던 카카두 국립공원(Kakadu National Park)을 벗어난다. 남쪽에 있는 캐서린(Katherine)이라는 동네가 다음 목적지다. 남쪽으로 내려가기 때문에 무더위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원하는 식자재를 마음껏 구할 수 있는 쇼핑센터도 있다. 크고 작은 식당도 있는 제법 큰 동네다.


가는 길은 깔끔하게 새로 포장되어 있다. 운전이 편하다. 두어 시간 달리니 작은 동네(Pine Creek)가 보인다. 잘 꾸며져 있는 아기자기한 그림 같은 동네다. 여행자를 유혹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카페에 들어가 샌드위치와 커피를 주문했다. 모텔 건물에 있는 카페다. 이곳에서는 우체국 사무도 본다. 작은 소포를 찾아가는 사람이 보인다. 


실내 장식이 고풍으로 잘 꾸며져 있다. 커피 향과 어울리는 분위기 좋은 카페다. 멋진 분위기에 젖어 간단한 브런치를 끝내고 건물을 나선다. 들어올 때는 못 보았는데 건물을 판다는 광고판이 입구에 있다. 오지에 있기 때문에 가격이 저렴하다. 시드니 웬만한 동네에 있는 집 한 채 값이다. 

캐서린에 있는 야영장에 도착했다. 주위에 냇물이 흐르는 공원이 있고 풍광이 좋다. 사무실에 들어서니 할머니가 반긴다. 야영장 주인이다. 삶의 황혼 길에 들어선, 나이가 많아 보이는 할머니다. 그러나 컴퓨터 스크린을 보며 일을 빈틈없이 처리한다. 이런저런 농담도 젊은이 못지않게 받아넘기며 야영장 시설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한다. 오래전부터 알던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꾸밈없고 정이 가는 할머니다.


캐서린에는 사람이 많이 찾는 야외 온천이 있다. 다음 날 아침 수건 하나 들고 가까운 곳에 있는 온천을 찾았다. 특별한 시설을 갖춘 온천장이 아니다. 흐르는 온천물에 들어가기 쉽게 계단을 만들어 놓은 것이 전부다. 미리 와서 온천욕 하는 사람들 틈에 끼어든다. 물은 뜨겁지 않으나 수영하며 지내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물길 따라 상류 쪽으로 올라가 보았다. 이곳에도 대여섯 사람이 온천물에 몸을 맡기며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캐러밴을 가지고 여행하는 은퇴한 사람들이다. 이런저런 여행담을 나누고 있는데 서너 명의 청년이 물속으로 뛰어든다. 원주민처럼 까만 피부색이다. 옆에 있던 할머니가 나에게 한마디 한다. 밖에 놓아둔 물품을 조심하라고…


바위 끝자락에서는 온천물이 솟아오른다. 깊은 웅덩이에서 온천물이 끊임없이 올라와 흐른다. 수정같이 깨끗한 물이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누워 하늘을 본다. 키가 큰 나뭇가지 사이를 오가는 뭉게구름을 바라본다. 최소한의 생활용품만 가지고 다니는 여행이다. 그러나 부족함이 없다. 마음이 풍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잠시 나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청년이 다가온다. 조금 전에 물에 뛰어든 청년 중 한 명이다. 수영을 잘하는 청년은 온천수가 나오는 웅덩이 속으로 들어가 보기도 한다. 바누아투(Vanuatu)라는 작은 섬나라에서 온 청년이다. 이곳에서 일하며 돈을 번다고 한다. 자기가 사는 바누아투에는 코로나 환자가 한 명도 없다며 은근히 고국 자랑을 늘어놓는다. 보기와 달리 순진함이 넘쳐나는 덩치 큰 청년이다. 조금 전에 잠시나마 가졌던 편견이 부끄럽게 떠오른다. 동양 사람인 나를 편견을 가지고 보는 호주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음 날에는 캐서린 계곡을 찾았다.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다. 동네를 벗어나 20여 분 운전하여 관광안내소(Nitmiluk National Park Visitor Centre)에 도착했다. 넓은 주차장이지만 자리 찾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자동차가 많다. 다른 관광지 주차장과 다른 점이 있다면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차박이 가능한 자동차가 많이 보인다는 점이다. 차박하며 지낼만한 캠핑장이 국립공원 곳곳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넓은 대지에 자리 잡은 큼지막한 안내소 건물에 들어선다. 실내 공간이 넓다. 식당에서는 종업원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각종 팸플릿이 비치된 안내소에는 서너 명의 관광객이 구경할 곳을 알아보고 있다. 건물 끝자락에서 국립공원을 바라본다. 멀리 하늘과 맞닿은 곳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발아래 펼쳐진 무성한 산림이 눈을 즐겁게 한다. 낭떠러지 끝자락에 건물을 건축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이곳에는 산책로가 수없이 많다. 특별한 준비 없이 편하게 걸을 수 있는 산책로를 선택했다. 산을 오른다. 가파른 산이 아니다. 힘들이지 않고 천천히 걸어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에는 수돗물을 공급하는 커다란 물탱크가 있다. 사방을 둘러본다. 많이 올라오지 않았지만, 확 트인 시야가 마음을 시원하게 한다. 가볍게 몸을 감싸며 지나가는 바람이 풍기는 냄새도 좋다.


정상에서 조금 내려가니 절벽에 멋지게 만들어 놓은 전망대(Baruwei Lookout)가 있다. 절벽 아래로는 강물이 천천히 깊은 계곡 사이를 흘러간다. 캐서린 계곡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관광객이 많이 찾아올 수밖에 없는 풍경이다. 주위 절경에 빠져있는 마음을 추스르고 전망대를 벗어난다. 

내려가는 길에는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거의 수직에 가까운 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계단에서 바라보는 계곡도 흔히 볼 수 없는 멋진 풍경이다. 계단을 내려와 강을 따라 계속되는 산책로를 걷는다. 조금 걸으니 유람선들이 정박해 있는 선착장이 나온다. 배를 타고 계곡 사이를 유람하고 싶지만, 시간이 맞지 않는다. 포기할 수밖에 없다. 

캐서린의 또 다른 관광지로는 폭포(Edith Falls)가 유명하다. 지금까지 많은 폭포를 둘러보면서 왔다. 그렇다고 이곳에서 유명하다는 관광지를 빼놓을 수 없다. 조금 떨어진 곳이다. 그러나 주저 없이 가기로 했다. 이곳을 떠나면 폭포를 구경할 수 없는 내륙으로 여행하는 일정이다. 마지막으로 폭포 소리를 들으며 수영할 기회이기 때문이다.


폭포로 향한다. 폭포까지는 60km 정도 운전해야 한다. 호주 오지를 다니는 여행객에는 운전하기에 큰 부담이 없는 거리다. 차창 밖 풍경을 즐기며 목적지에 도착했다. 차를 세우고 옆을 보니 잠자리와 살림 도구를 갖춘 자동차가 보인다. 자동차 바로 옆에서는 젊은 여자가 혼자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전형적인 히피풍의 방랑자 모습이다. 이곳에 잠시 정착하며 지낸다고 한다. 이곳 말고도 가볼 만한 폭포가 있다며 산등성이를 가리킨다.   


주차장 옆에 있는 폭포를 찾았다. 폭포가 높지는 않다. 그러나 호수가 엄청나게 크다. 흔히 표현하는 축구장 크기의 두 배는 족히 된다. 이곳에서도 사람들은 폭포수가 떨어지는 곳까지 가서 시원한 물줄기를 즐긴다. 수영을 잘하지 못하는 내가 한스럽다. 그러나 깊지 않은 곳에서 수영하며 나름대로 물을 즐긴다.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내고 주차장 근처에 있는 카페에 들렀다. 커피와 간단한 먹을 것을 파는 구멍가게다. 아이스크림 하나 사 들고 더위를 식히면서 주위를 둘러본다. 캐러밴에서 생활하며 호주를 여행하는 나이 든 부부가 대부분이다. 오지를 다니며 힘든 여행을 즐기는 젊은 남녀들도 있다. 혼자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누군가와 함께 여행하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잠시 스쳐 간다. 


그러나 일생에 한 번쯤은 외로운 여행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나만의 삶을 살고 있다는 이야기다. 혼자 지내는, 나만의 삶을 만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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