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옥현 Aug 16. 2021

쥐포

세 개의 추억

   쥐포 싫어하는 사람은 잘 없을 거 같은데 달콤 짭짜름하면서 쫄깃한 육질에 오래 씹어도 단물이 오래도록 나는 그 맛.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크지만 얇은 두께의 쥐포를 말하는 게 아니다. 쥐포는 쥐치라는 생선을 포 떠서 말린 것이다. 정식 명칭은 쥐치포이지만 대부분 쥐포라 불린다. 어이없지만 진짜 쥐가 재료인 줄 아는 사람도 있을 거다. 삼천포(사천)가 쥐포의 최대 주산지인데 아직도 옛맛을 간직한 오리지널 쥐포가 생산되고 있다. 1960년대에 처음 만들어 일본에 수출했고 1970년대에 전국에 판매하여 인기를 누렸던 대표 주전부리였다. 최근에는 국산 쥐가 잘 잡히지 않아 베트남산 등 해외에서 재료를 가져와 국내에서 가공 생산한다. 국산 쥐포, 납작하게 눌리지 않은 두툼한 쥐포는 그 식감이 비교가 안 된다. 오리지널 쥐포는 가위로 자르지 말고 손으로 뜯어야 결이 그대로 느껴지고 더 풍부한 식감과 맛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최상급 쥐포는 드물기도 하거니와 가격도 비싸다. 단순히 무게로만 비교하면 한우보다 더 비싸다. 가끔 인터넷으로 주문하기도 하고 삼천포를 지나칠 경우 직접 건어물시장에 가서 사 오기도 한다. 쥐포!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다. 당시 처음 시중에 나온 쥐포는 기계로 납작하게 누른 게 아니었고 애들 손바닥보다 좀 작은 크기였다. 대신 두꺼웠다. 연탄불에 구운 쥐포는 그 맛이 가히 혁명적이었다. 변변한 먹을거리가 잘 없었던 시절에 쥐포는 단연코 최상의 간식이었다. 그렇다고 항상 맛볼 수 있는 흔한 것은 아니었다. 가격을 잘 알지는 못했지만 누가 그걸 먹는 걸 보면 부러운 눈초리로 봐야 했고 내가 먹을 땐 누가 볼세라 숨어서 먹기도 했다.


   그날은 이른 아침이었다. 누나들 둘과 학교 갈 준비 중이었고  씻으러 막 수돗가로 나선 참이었다. 안방에서 부엌을 통과해 수돗가로 나서는데 맛있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날 웬일인지 아침부터 쥐포를 구워주시는 엄마. 그 냄새를 혼자 맡았을 리 없다. 당연히 쥐포 굽는 쪽으로 가면서 누나들과 부딪혔다. 급기야 서로 먹으려고 소리를 높이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아침부터 싸우는 소리가 들리는데 가만히 계실 아버지가 아니었다. 안방에서 나오시더니 눈을 부라리고 쥐포를 뺏어 담장 너머로 던져버렸다. 아뿔싸 우린 한 마디도 못하고 숨죽였고 서로를 원망하는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학교로 출발했다.

   저학년이라 누나들보다 하교가 빨랐다. 수업에 열중하고 학우들과 노느라고 아침에 일어난 쥐포 사건을 까맣게 잊고 있다가 하교하면서 갑자기 생각이 났다. 아 그 쥐포 정말 맛있는데. 우리 집의 담 너머는 잡초가 우거진 공터였다. 폐목들도 있었고 친구들과 가끔 놀기도 하는 공터였다. 이걸 어째야 하나? 책가방을 집에 던져 놓고 공터로 갔다. 다행히 주변에 아무도 없었고 동네 친구들도 보이지 않았다. 보인다. 쥐포가 보인다. 쥐포를 들고 후다닥 달리기 시작했다. 몰래 훔쳐 먹는 음식이 더 맛있다고 누가 그랬더라? 평생 잊을 수 없는 쥐포의 맛은 그렇게 각인되었다.    


  

   결혼 후 애들 셋을 낳아 기르면서 국내에 여행을 자주 다녔다. 전라도 지역을 돌아다니는 5박 6일의 여행을 여름 늦자락에 출발했다. 7인승 차량에 장인 장모님 두 분과 가족을 태우고 함양, 담양, 증도, 목포, 여수를 거쳐 삼천포, 지리산을 거치는 코스였다. 삼천포에서 크고 두툼한 쥐포를 샀다. 가방에 넣어뒀다가 지리산을 떠나 서울로 귀경할 때 쥐포를 모두 구웠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살짝 두르고 타지 않게 구웠다.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다들 맛있게 나눠먹었다. 아내는 연신 옆자리에서 쥐포를 뜯어 장시간 운전 중인 남편의 입에 넣어줬고 장모님은 사위가 쥐포 좋아한다는 것은 아셨지만 그때 확실하게 기억하셨을 거다. 그 쥐포의 맛도 잊을 수 없다. 아내가 일일이 손으로 뜯어 먹여줘서 더 맛있었을까?      



   그 후 10여 년이 지나 장모님은 경동시장에서 샀다면서 쥐포 한 봉지를 주셨다. 딱 봐도 최상품이었다. 이제까지 본 쥐포 중에 제일 두꺼웠다. 알고 있는 가격대보다 더 비쌌고 가게 주인이 물건이 많이 없는 삼천포산 국산이라고 했단다. 꼭꼭 숨겨놨다가 찾는 사람에게만 내놓는다고 하면서 장모님에게 보였다고 한다. 항암치료 중이신 장모님은 입맛이 없어 이거라도 먹으면 좀 나을까 해서 샀다고 하신다. 그나마 한 마리씩 구워 찢어놓으면 조금이라도 먹으니 도움이 된다고. 쥐포 좋아하는 사위 생각에 한 봉지 더 사셨다. 역시 맛있었다. 아니 여태 보지 못한 정도의 두께에 크기였다. 수술받고 첫 항암치료 때 기운 없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시면서 하신 말씀에 순간 눈물이 맺히고 울컥했다. ‘나가면 맛있는 거 많이 사줘야 해!’ 다행히 6차례의 항암치료를 끝내고 회복 중이시다. 사위사랑은 장모님이 아니라 장모님사랑은 사위가 해야겠다.


쥐치 사진 출처; 팔도식후경


작가의 이전글 우연과 필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