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정년퇴직을 희망하던 두 아이의 아빠라는 책임감으로 고정적인 수입이 필요하고, 불안정한 수입인 사업에는 조금의 생각도 없었다.
20대 후반, 한 회사에 입사하여 30대를 보내고 40대 중반쯤 퇴사하였다.
17년 넘게 한 곳의 회사를 다닌 것이 나름 자부심이었고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했다.
나의 자부심, 나의 희망인 정년퇴직은 한 가지의 이유로 파도가 휩쓴 모래성처럼 허탈함 속에 무너졌다.
어쩌면, 퇴사하고싶은 나의 마음을 정년퇴직이란 보자기로 강하게 감싸고 있었는지 모른다.
- 퇴사를 결정한 순간 -
남의돈을 벌기란 쉽지 않다는 말은 어디서나 들어 본말이다. 나 또한 그런 말은 인정하기에 회사에서 업무적인 일들은 잘 견디고 참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인격적인 부분에 타격을 입었을 땐 그 상처의 회복은 쉽지 않았다.
난 생산직의 팀장이었다. 나름 장기근속이기에회사 내엔 어느 정도 입지도 잡혀있었다. 육체적인 노동의 피곤함과 신경적 스트레스는 점점 누적되어가고 있었지만, 단 한 번도 고된 노동으로 퇴사를 염두한 적은 없었다.단 한 번도.
하지만, 한 명의 사람에게 인격적인 타격을 정기적으로 받고 있었기에 정신적 상처는 점점 곪아가고 있었다.
결국에 그 상처는 터졌고 난 퇴사를 마음먹었다.
퇴사를 결정하던 그날, 오전 11시쯤 수십 번을 생각하고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나 이 회사 이제는 그만둘까 봐"
아내는 그동안 나의 마음을 알았는지 예상외로 너무나도 간단하게 나의 뜻을 받아줬다.
"그래. 알았어. 당신이 결정해. 반대하지 않을게."
생산현장 한구석, 아무도 없는 작은 방안에서 통화하며 아내의 수긍하는 목소리가 들려오자, 입술이 떨리고 콧물이 날 정도로 소리 내어 울었었다. 지난날 그렇게 참아왔던 세월이 아까워서, 그리고 억울해서였을 것이다.
당시 아내의 마음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가끔 들었지만, 지금까지 물어보진 않았다.
가장으로서 회사를 그만둔다는 결정은 너무나 미안했기에 물어볼 수 없었다.
- 새삶을 위한 또다른 계획의 선택 -
앞으로 먹고살아야 했기에 대출과 퇴직금을 보태어 장사를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장사의 선택지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넓지 않았다.
1. 퇴직금은 중도에 정산을 받은 터라 초기투자금이 적은 쪽으로 생각을 했어야 했다.
2. 요식업에 대한 경험이 없어 기초교육을 받을 수 있는 체인점을 생각해야만 했다.
아내와 내린 결론은 주방만 갖추면 할 수 있는 배달음식점. 배달피자집을 창업하기로 결정했다.
가게건물의 위치는 집과 우리 아이들 학교사이에 알아보기로 결정하고 4군데의 빈건물을 눈여겨보았다. 그중 한 곳이 주방시설인 덕트가 그대로 남아있었고, 3년 정도 빈 건물이었기에 임대료도 평수에 비해 낮은 가격으로 정해져 있어 그곳으로 결정했다. 평수는 17평이고 임대료는 55만원, 괜찮은 조건으로 건물주인과 계약했다.
주방설비는 모두 중고제품으로 들이고, 내부인테리어도 벽지만 새로 붙일 뿐 크게 손댈 것이 없었다.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같이 있어야 했기에 작은 방하나를 추가설치했다.
이 모든 것은 체인본사와 협의하고 나의 의견이 대부분 수락되어진 후 체인본사에서 거의 모든 일을 진행했다.
드디어, 이젠 내가 힘들고 노력한만큼 보상이 오리란 기대를 가진채 계획에도 없던 장사꾼의 삶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