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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처입은 치유자 Sep 23. 2021

결혼은 처음이라

결혼 후 첫 명절의 기억

명절이면, 결혼 후 첫 명절이 생각나곤 한다.

웃픈 기억의 얼룩.


나의 시어머니. 대쪽 같은 한 가지 가치관이 있으시지만 마냥 좋은 분이다.

시댁에 가도 와서 누워라, 쉬어라, 하지 마라, 그만 해라, 쉬었다 해라 하시는 분이셨다.


결혼 후 첫 명절은 설날이었다.

어린 새댁이 명절에 뭘 준비해야 하는지 몰랐기에 친정 엄마에게 장을 같이 봐 달라고 했다.

마침 당시 이동 최단 거리는 우리집 친정 시댁 순이었다. 그래서 엄마와 장을 보고 시댁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아서 시간이 늦어졌고 친정에 엄마 짐을 올려드리고 서둘러 시댁에 갔다.


당연히 반갑게 맞으실 줄 알았던 어머님이 이렇게 늦었냐고 약간의 채근을 하시는가 싶더니,

남편이 처가에 갔다 왔다고 말을 하는 순간, 어머님은 급기야 언성을 높이셨다.

'결혼 후 첫 명절인데 친정부터 가는 법이 어디 있냐'며 밖으로 나가버리셨다.

이게 어머님이 살아오신 인생과 신념을 뜻하는 말이라는 것을 한참 후에야 알았다.


거짓말도 아니니까, 그냥 장 봐 오느라 늦었다고 하면 좋은데...

변명의 기회도 없이 어머님이 나가셨기에

우리는 일단 시트콤의 한 장면처럼 어머님을 쫓아가며

잘못했다고 했고 남편이 어머님께 당도하고야 노여움을 달랠 수 있었다.

친정에 간 게 아니라 장모님이 장을 같이 봐주신 거라고..


당신도 그토록 화가 나실 줄 몰라 놀라셨던 모양인지 스스로에게 당황하신 표가 역력했다.

그런 어머님을 위해 우리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덜그럭 덜그럭 명절 지낼 준비를 했다.


막상 가보니, 음식 준비를 어머님이 거의 다 마쳐 놓으셨고 나에게 뭐 일을 시키실 것도 없었는데,
그저 아들 얼굴이 빨리 보고 싶으셨나 보다.

어차피 자취를 하던 아들인데, 어디 뭐 멀리 보낸 것도 아닌데.. 

내게 맡긴 것이(?) 못 미더우셨던 걸까?


전화라도 먼저 드렸으면 좋았을 것을..

단지 어머님께 도움이 되고 싶었던 마음에 무지와 성급함이 더해졌던

첫 명절의 해프닝은 이젠 짙은 추억이 되어버렸다.



이번에도 설날이었다.

큰 아이가 두 살, 뱃속에 이제 곧 나올 둘째가 있을 때의 일이다.


명절 음식 준비를 끝내고 퉁퉁 부은 발을 올려놓고 이제 쉬어볼까 하고 시계를 봤을 때는 밤 12시가 막 넘어가는 때였다.

아버님의 일을 도와드리고 늦게 들어온 남편이 주방을 힐끗 보더니

"엄마, 이번엔 전 안 해? 냄새가 안 나네"라고 한 마디를 던지고 씻으러 들어갔다.

어머님과는, 전은 내일 하기로 말을 끝내 놓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아들의 그 한 마디에 어머님은 정말 용수철처럼 엉덩이를 튕겨 일어나셨다.

아가는 그냥 쉬어라 라고 하셨지만, 어찌 그럴 수 있을까.

간단히 먹을 것만 몇 개 하자고 했으나 하다 보니 많이 하게 되었고

다 되었으니 나와서 먹으라고 남편을 부르셨는데, 들어가 보니 남편은 잠이 들어 있었다.

애꿎은 각종 전 들은 꼬수운 향을 내며 그대로 덮였다.


다음 날 물어보니, 피곤해서 먹을 생각도 없었고
먹고 싶은 생각에 물어본 게 아니라 그저 궁금해서 한 말이었다는데..

어머님께는 그 말이 '엄마, 지금 먹고 싶어'로 들리셨던 모양이다.


결혼이 처음이라 낯선 것 투성이었던 새댁과 새신랑은 그저 실수를 통해 하나씩 배워나갈 뿐입니다.


이제야 그 마음 헤아려 더 잘해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머님은 손으로 만질 수 없는 천국에 가 계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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