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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처입은 치유자 Jul 29. 2021

여행의 또 다른 이름, 참회

나에게 여행은,

현실에 대한 불만과 불평이 쌓이고 쌓여 폭발 직전일 때 다녀오면

결국 내 집이 제일 좋은 곳이며
내 가족과 내 사람들이 전부라는 것에 대해 다시금 감사하게 되는 참회를 불러오는 외출이다.


집은 치워도 치워도 왜 똑같이 어수선하고 
치우는 사람은 왜 나 하나이며
식구들은 종일 집에 있으면서 왜 하루 두 끼로는 안 되고  세 끼니를 다 먹어야 하며
중간중간에 간식까지 꼭 드셔야 하는지.

애들은 각자 방에 들어가 몇 번씩 불러도 왜 못 듣는지 아니면 못 들은 척을 하는 것인지.

내 체력은 왜 이렇게 저질이며 운동을 해도 체중은 그대로인지..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드는 것이 없이 불평이 쌓은 더미 속에서 숨이 꽉 막힌 것 같다면 

내가 나갈 시간이 된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가 터지면서 외출에 제한이 생기자 나는 더 힘들어졌다. 

그러나 다행히도 우리는 몇 년 전부터 지인이 소유한 빈 집에 갈 수 있었다.


본인의 집은 서울인데 시골에 작은 주택이 있어서 아무 때나 와서 마음껏 쉬다 가도 된다고 하여

작년에도 다녀왔다. 

그곳은 와이파이가 안 되고 에어컨이 없는 날것이 가득한 곳이다. 

게다가 이번에는,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견디다 못해 변기가 깨어진 채 있다는 소식도 전해 들었다.

아뿔싸!


고생길이 훤히 보이는 이야기들을 들었지만 

코로나 시국에 이것도 감지덕지라 여기고 우리는 일단 가보기로 결정했다. 


불편이 예상되는 외출 이어서일까, 갑자기 짐 챙기는 일이 너무 버겁게 여겨졌다.

세탁도 밀려 있어 여벌 옷가지들도 많이 없었다. 
지금이라도 취소할까? 짧은 시간 동안 몇 번씩 고민이 되었지만,


'시골이니 밤에는 여기보다 시원할 거야.'
사실 그곳에서의 작년 여름이 자세히 기억나지 않았지만,

에어컨 대신 선풍기가 열심히 일 할 거라 애써 다독이며 서둘러 트렁크를 닫고 혼잣말로 걱정을 일축했다.




나는 여름에도 땀을 잘 안 흘린다.

아무리 뛰고 움직여도 옷이 젖을 만큼 땀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제 그것은 옛 말이 되었다.


시골 주택 앞마당에는 넓은 터가 있어 이번에도 15인용 대형 풀장을 가져갔다. 

이것만이 이번 여행의 유일한 청량제이기에 도착과 동시에 함께 열심히 설치했다.


올해는 제일 더울 때 왔는지 설치 초반부터 진을 뺐다.
나는 지지대를 붙잡아 주고만 있었는데도
체감 37도의 줄기찬 직사광선은 등줄기를 타고 땀을 흘리게 해 점점 옷을 적시기 시작했다.

내가 이 정도면 나머지 세 명은 벌써부터 땀으로 샤워하는 수준이다. 


물을 받기 시작하자 아이들은 물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나와 남편도 발을 담그고 더위를 식히면서 작년 이맘때에 여기서 찍은 사진을 꺼내보았다.


사진과 비교해보니 아이들이 작년에 비해 부쩍 커 있음이 보였다.
비단 키와 몸집만 자란 것이 아니었다.


집에서 보는 아들은, 내년에 고등학생인데 아직도 자기 벗은 옷을 세탁실에 제대로 넣지 못하고 

먹은 그릇들 조차 바로 치우지 않아 손이 많이 가고 게으른 듯해서 늘 걱정이었는데,


오늘 밖에서 본 아들은


어느새 아빠보다 손이 빠르고 정교해져서 풀장 조립 원리를 잘 이해하고 금방 설치를 끝내도록 돕고 있었다.

작년에 풀장을 정리할 때는, 얼기설기 넣어서인지 가방의 지퍼를 못 닫아서 열린 채로 가져왔는데
이번엔는 자기가 차곡차곡해 본다더니 지퍼가 쓰윽 잘 닫히게 할 줄 아는 든든한 아들이 되어가고 있었다.


집에 오면서 
다 큰 아들 엉덩이를 두들기며 아들 없었으면 아빠 혼자 풀장 설치 못 하셨을 거라고,
너무 듬직하다고 아껴둔 칭찬을 해주었다.
사실 그 칭찬은 이번 여행도 성공!이라고 나 자신을 위로하는 것임을 아들은 알까.

 
이번에 너무 힘써서 자기는 육개장 많이 먹을 거라고 하며 두 공기를 뚝딱 잘 먹는 모습을 보니 

또 그렇게 예쁠 수가 없어 밥 먹고 간식까지 사주겠노라고 약속을 하고 있다.

삼시세끼 다 먹고 간식도 챙긴다고 불평하던 나는 어디로 갔는지.


아이가 자신의 일을 성실히 하고 주변을 깔끔히 정리하는 것만을 

아이들 성장의 단편적인 기준으로 삼은 나를 부끄럽지만 마주한다.


내가 허우적대고 있을 때에도 아이들은 조금씩 자신의 속도로 자라 간다. 


감사와 소중함을 가지고 다시 나의 터전으로 잘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여행.  

이번 참회의 효과는 좀 오래갔으면 좋겠다. 

당분간 나갈 수 없을 것 같으니........


p.s 시골이라 밤에는 조금 시원했다. 하지만 집 안은 열돔이었다. 선풍기는 그 열기를 더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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