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상처입은 치유자 Aug 23. 2021

너무 오래 외롭지 않기를

어느 주저앉은 자의 고백

나의 본캐라고 하는 본업을 너무 오래 쉬고 있다.

몇 개월에서 몇 년째가 되고 있으니..


왜 그랬을까, 그 시작은 무엇이었을까?

내려놓고 나서의 나는 행복한가? 잘 한 선택인 걸까?

더 버텼어야 하는 게 아닐까? 지금이라도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루에도 몇 번씩 많은 물음표를 던진다.


사실 나는
자리도 직함도 그대로인데 마음이 떠난 휴직 중이다.
어차피 그만둘 수 없는 운명이기에

한다고도 안 한다고도 할 수 없는 정말 애매모호한.

 

그러나 애초에 애끓마음이 없으면 한다고 할 수 없는 일이기에 나는 내려놓았다고 하는 편이 맞다.




사람에게 많이 치이고 지쳤다, '나'라는 사람에게도.
그들이 내게 피해를 주고 괴롭힌 게 한 게 아니라, 내가 '사람'이라는 것을 잘 감당하지 못해서이다.

이제는 대인기피증이 생긴 것도 같다.


내 본업이라는 것이, 사람을 대하고 다루는 일이라 사람이 어려우면 이 일 자체도 없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에 대한 열망과 사랑, 직관이 가득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우울한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내가 우울하고

자존감이 결여된 사람들을 대해야 하는데 내가 먼저 주저앉아 버려서 

공감이 아닌 동감이 되기 시작했고, 내 감정과 타인의 감정을 구분 짓지 못해 갑절로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자격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본캐를 잃었다는, 그리고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에 울적해지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억지로 웃으며 이 길을 계속 갈 수는 없었다. 

'마음을 쓰는 것 같은' 흉내만으로

잘하고 있다고 하기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모성애가 없던 사람도 아이를 낳으면 모성애가 발동되듯이

나도 본업을 삼았으면 사랑이 일렁이어야 는데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 속에서 지내다 보니,

내가 나를 내어줄 만큼의 사랑과 희생의 마음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빈 손이면서 손에 든 것이 많은 척, 도저히 가면을 쓰고 이 일을 계속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많이 아팠고 탈진했고 마음의 휴직을 선포했다.




현재의 나는, 혼자 있고 싶어 하는 아니러니 한 ESFJ이다.

다른 항목은 치우침 정도이지만
내/외향성만큼은, I의 항목에는 단 한 개도 체크가 되지 않는 완벽한 E 성향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결혼 전까지는 스케쥴러에 하루라도 약속, 일정이 없는 날이 없었고
여유 시간이 생기면 무조건 밖으로 나갔다.
친구들을 만났고 사람들과 섞이어 부대끼고 나서야 에너지가 채워져서
새로 배터리를 바꿔 낀 강아지 인형 마냥 쫑쫑거리며 비로소 내 일도 할 수가 있었다.   


물론 성격유형검사는 사람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많은 척도 중 하나로
참고할 뿐이지만 나는 나의 성격유형이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나의 한계를 바라보고 마음에서 일을 내려놓으면서 나는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내가 줄 것이 없고 나눌 것이 없다는 상실감에

처음에는 선택적으로 사람들과 거리를 두다가 점점 연락이 끊기고 멀어져 갔고

다시 연락을 하면 되는데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속에서는 피가 끓는지 몰라도 겉으로는 사람 만나는 것이 어려워졌다. 


쉬면서도 이게 과연 잘 쉬고 충전되고 있는 것이지 모르겠으나

나의 '쉼표'가 홀로 너무 오래 외롭지 않기를.. 

그 빈 공간이 '의미'로 채워져 끝끝내 마침표에 도달하기를.

이 길의 끝에서 꽃다발을 받을 수 있기를.. 

이게 너무 과한 기대가 아니기를 소망해본다.


작가의 이전글 우울 본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