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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처입은 치유자 Jul 13. 2021

이제 행복하고 싶은데, 그래도 될까?

10대의 나에게 보내는 작은 위로

거리두기 4단계가 곧 시행될 것만 같은 불안한 분위기,

그 공간을 채우고 있는 공기마저 아슬아슬한 지난주 금요일.


작년에는 코로나로 인해 가족과 제대로 된 휴가를 보내지 못해

올해는 나름 야심 찬 휴가 계획도 세워놓았다.

그런데... 그런데...

뉴스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모두를 위해 계획을 유보하는 게 맞을 것 같아서

구매했던 앱에 들어가 하나하나 어렵사리 취소를 하고

마치 무언가 큰 것을 도둑맞은 듯한 기분으로 앉아있었다.

버튼을 누르는 게 이토록 어려운 일이었다니.


위약금도 위약금이었지만 그보다 나의 최대 고민은, 풍선처럼 부풀어 있는 애들에게 뭐라고 하지.. 였다.


한숨을 푹푹 쉬며 핸드폰을 연 김에 메일을 뒤적뒤적거리고 있는데

딩동! 반가운 소식 하나가 배달되었다.


브런치 작가 합격!


작가 도전했다고 가족들에게 이야기하면,

연락 왔냐고 나보다 더 호들갑을 떨며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불안하게 할 것이 분명하니까

일부러 비밀로 했었다.


합격 소식을 알리고 나중에 들어보니,

막내가 "엄마 뭐해요?"라고 물어볼 때마다

내가 "엄마 브런치 해."라고 해서

우리 먹을 브런치 레시피를 찾아보고 연구하는 줄 알았단다. 그래서 음식은 대체 언제 주나 했었단다.

귀여운 녀석.

어찌 되었든 정말 핑계대기 딱 좋은 이름, 브런치였다.



사실 나는 힘들 때마다 글을 썼는데 그 시간은 대부분 브런치 타임이었다.

음식 냄새를 맡아가며 식구들 아침 준비를 하고 나면 이상하게 입맛이 없었다.
하지만 곧 죽어도 커피는 마셔야겠으니까

카페에 가서 간단한 브런치 타임을 가지며 조용히 글을 쓰곤 했었다.


그런 작은 브런치 조각들이 모여 나에게 진짜 브런치로 돌아온 것이다!


나는 왜 작가에 도전했을까.


애들이, 엄마는 왜 회사 안 다녀?라고 할 때
(내가 애들하고 너무 붙어 있어서 잔소리를 하니까, 일하는 엄마를 둔 친구들이 자유로워 보였을 것이다)


나는 집에서 공부를 가르치니까, 엄마는 프리랜서야 라고 당당히 말하고 인정을 받고 싶었으나
아이의 얼굴은 늘 수긍이 안 되는 예쁜 동그라미일 뿐이었다.

엄마도 그냥 주부가 아니라 뭔가 하는 사람이구나 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작가에 도전한 나의 목적은 따로 있다.


'작가'라는 순수한 꿈을 꾸었던 내 10대의 생기와 역동이
언젠가부터 서서히 흐려지고 이내 없어진 지 오래.
그저 나는 누구의 아내로, 엄마로, 그리고 딸과 며느리로만 먼저 살며
그 껍데기 같은 역할만 남아있다는 것이
아름다운 나의 청춘에게 너무나 미안하고 아쉬웠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역할 속에서 나는 분명히 배우고 성장했고
무엇보다 책으로는 얻을 수 없는 나만의 글감을 충분히 얻었겠지.

브런치를 통해

늦었지만, 나의 10대에게 이제라도 작은 위로를 건네볼 수 있을까.


거창한 목표나 계획은 필요 없다.


피곤해도 하고 싶은 일을 발견했다면.

심폐소생이 되는 것 같고 활기가 도는 일을 만났다면.
그 생각만 해도 너무 신나고 즐겁다면. 그것으로 되었다. 너무나 충분하다.


오랫동안 나의 정체성을 찾아 헤매었고

결혼 후 처음으로 설레는 일을 마주한 지금이니까.


이제 행복해지고 싶은데, 그래도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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