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 지났으니 나는야 며느리 전문가
십년이면 어떤 분야에서든 나름의 전문가로 인정하는데, 결혼 생활 햇수로 12년차이니 나는 이제 며느리 전문가...로 불려보련다.
이번 추석 명절은 결혼 후 12년, 즉 20번 남짓한 모든 명절 중에 가장 무탈한 명절이었다.
물론 시댁까지 내려가는 12시간이 한몫 했을 것이다. 벌써 한나절을 까먹어 주었으니.
나는 이제, 어머님 아버님의 어떠한 성격적 특질을 잘 알고 있어 최대한 맞추어드릴 수 있는 짬이 생겨났다.
"OO야, 너 정말 남편 잘만났다."와 같은 문장은 이제 매우 가벼이 웃으며 넘길 수 있다. "그럼요 아버님, 그럼요 어머님, 진짜 잘만났죠!" 능글맞게 웃으면서, 겉뿐 아니라 속까지도 이제 정말 가벼이 넘긴다.
나는 이제, 시댁에 엄청나게 많이 매우 아주 크게 잘보이고 싶은 마음을 '죄금' 내려놓았다.
넘의 시선을 그닥 신경쓰지 않으려는 나란 사람의 성장과 사유 패턴에 따른 이유도 '죄금' 있을 수 있겠고, 어머님 역시 이제 덜렁이 며느리를 주욱 파악해버리신 이유도 있을게다. 어쨌든, '잘 보이려는'마음을 '죄금' 옆으로 치워놓고 보니, 괜한 말실수와 어쩔줄 모르는 좁은 폭의 배회가 '죄금' 줄었다.
나는 이제, 어찌할지 모르겠는 멍한 순간들에 족족이 어머님께 물을 수 있는 소심한 용기가 생겨났다.
어찌할줄 모르겠는 멍한 순간들이란, 좁은 폭으로 배회하는 순간들과도 결을 같이 하는데, 식사를 준비하는 그 때에 자주 연출되곤 한다.
이 다양하고 화려한 찬들을 담을 나눔접시에 칸이 모자라는데, 여기 이 찬은 어떻게 해야할까요. 인원에 비해 접시/그릇/밥공기 수가 적어 찾아도 보이지 않는데, 그것들은 어디에 있을까요. 상을 펼까요 여기 테이블에서 먹을까요. 아이들 상은 따로 차릴까봐요. (식사 후) 이 찬은 두개 섞어서 넣어놔도 될까요. 이건 한번 불에 쉬리릭 볶아놓을까봐요. 이 도마의 원래 자리는 어디일까요.....
모르겠는 때 배회하는 내 모습이 지지리도 궁상맞고 싫어서 차라리 직진 질문을 택했다. 허나 질문 음절 사이사이 나의 소심함이 슬쩍하리 묻어있기에, 그 스을쩍조차 들키지 않으려 자연스럼(척) 안에 욱여넣었고, 나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그야말로 네츄럴 리얼리티로 가고 있는 것을 이번에 알아차렸다.
10년을 넘어가는, 나름의 중간지점에서 얻은 미들 결론, 자연스러워졌다... 라고 표현해야할까. 자연스러워보이려 노력하는것 사이에 아직 분명 나의 소심함이 숨어있으나 조금씩 더 리얼한 자연스러움에 도달하리라 믿는다.
두 밤을 보내고 서울로 올라오는 새벽차 안의 공기는 그닥 어둡지 않았고, 홍천도 내 눈치를 보아가며 애쓰지 않아도 되었다. '좋은사람'이 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던 나의 인생사는 두번째 사춘기를 맞이하며 '좋은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는데, 며느리 역할 또한 이러한 나의 곡선과 결을 같이하고 있는 중이다. 시댁이든 어디든, 뭐 그냥 조금 못해도 부족해도 더 리얼한 자연스러움에 거하는 편안한 나이고 싶어라. 눈치보지 않되 예의와 정도에 어긋나지 않고, 부드럽되 단단하고 편안한.
내가 설정해놓고 만들어놓은 살림 챡챡 순종 챡챡의 며느리모드 틀이 살짝 OFF 되어도 (다시 또 곰방 ON될걸) 사랑스러움은 어디 가지 않으리. 아멘 아멘 아아아멘. 나는야 편해지는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