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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zetto Apr 04. 2024

내일 지구가 끝나도 오늘 사랑하고 있으리(1)

명동 & 홍대. CGV & 상상씨네마. 사랑은 낙엽을 타고.

*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본 글은 2편으로 나눠 연재합니다.


개인적으로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이후로 떠올릴 때면 가장 먼저 영화에 대한 첫 인상부터 생각나는 영화이다. 돌이켜 보면 혼자 피식 웃음이 나오는 인연을 영화와 맺었다 여겨진다. 처음 <사랑은 낙엽을 타고>를 알게 된 것은 영화 모임에서 만난 바 있던 한 분의 별그램 스토리를 통해서이다. 당시 본 스토리에는 원제가 Fallen Leaves 즉, "낙엽"인 북유럽 영화를 담백하게 번역한 것이 아니라 "대추나무 사랑걸렸네"처럼 한국식으로 번역한 것에 통탄하는 내용이 있었다. 스토리를 보면서 마찬가지로 통탄해했다. 어찌 됐든 영화가 대중문화로서 자본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하지만 "낙엽"을 "사랑은 낙엽을 타고"로 번역한 것은 지나치게 현지화한 것으로 원작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일종의 낚시성 번역으로 어떻게든 관객을 끌어들일 수 있다면 상관없다는 태도로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영화관에서 관람할 당시 번역에 대한 첫 인상으로 인해 걱정이 앞선 상태로 봤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재밌게도 영화관을 나서면서 제목 번역을 참 기깔나게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대추나무에 걸린 사랑을 낙엽에 실어 관객에게 전달하는 종말 배경의 북유럽풍 뮤지컬 로맨스 코미디 영화였던 것이다.


종말 배경의 북유럽풍 뮤지컬 로맨스 코미디 영화. <사랑은 낙엽을 타고>를 추상적으로 소개한다면 이렇게 할 것 같다. 그럼 듣는 사람은 그게 대체 뭔 소리냐 싶을 것이다. 특히 종말 배경과 뮤지컬 영화라고 말하는 순간 영화 예고편이든 소개 영상 등을 확인한 뒤 이상한 눈으로 쳐다볼 것이다. 종말 배경 뮤지컬이라고 했을 때 뭐가 종말이라고 할 것이고 뮤지컬의 필수 요소일 넘버도 아예 없으며 흔히 알고 있는 뮤지컬처럼 갑자기 들려오는 음악 소리에 누군가 노래를 하고 모두가 신나서 춤을 추는 장면 따위는 일절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누군가에게 처음 소개할 때면 언제나, 특히 뮤지컬 영화라고는 기어코, 억지로라도, 떼를 쓰면서까지 말해야겠다. 물론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종말 배경의 북유럽풍 뮤지컬'적' 로맨스 코미디 영화이다. "~적"이라고 하면 너무 지저분해 보일 뿐만 아니라 설명을 듣기도 전에 질린 표정으로 볼 것 같다는 생각에서 뺐을 뿐이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뮤지컬적 요소는 영화 전반에 걸쳐 내재되어 있는 종말에 대한 감각과 연계해 '안사'(알마 포위스티 분)와 '홀라파'(주시 바타넨 분)의 관계 흐름과 굉장히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억지로 떼를 쓰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근거를 가지고 <사랑은 낙엽을 타고>가 왜 종말 배경의 뮤지컬적 영화인지 알아보자.

출처. 왓챠피디아

1. 인물의 상황과 감정은 음악을 타고

뮤지컬에서 음악은 단순히 인물의 상황이나 감정 등을 표현하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그 순간 인물의 상황이나 감정 등을 묘사하거나 설명하는 정도로 활용되는 연극이나 영화의 음악과 달리 뮤지컬의 음악은 그 순간 인물의 상황이나 감정만을 묘사하거나 설명하는 것을 넘어서 다음 순간 상황과 감정이 바뀔 것이라는 의지이자 에너지 그 자체이다. 그렇기에 연극이나 영화에서 특정 순간에 나오는 그 음악은 반드시 그 음악일 필요가 없다. 인물의 상황이나 감정 등을 묘사하는 것에 더 적합한 음악이 있다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하지만 특정 순간에 나오는 뮤지컬의 그 음악은 반드시 그 음악이어야 한다. 그 음악은 특정 순간에 발현되는 인물의 상황이나 감정을 묘사하거나 설명할 뿐만 아니라 다음 순간 변화할 것이라는 의지이자 에너지 그 자체, 즉 가능태와 현실태가 혼재되어 있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뮤지컬의 음악은 단순한 음악이 아닌 서사 그 자체이다.


뮤지컬 음악과 마찬가지로 <사랑은 낙엽을 타고>에서 음악은 단순히 인물의 상황이나 감정 등을 표현하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다. 상황이나 감정을 묘사하면서도 인물의 상황이나 감정이 변하게 될 것이라는 가능성의 에너지로 작동한다. 이 가능성의 에너지는 단순히 가능태로 남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현재 상황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이자 실제로 변화하여 나타나는 자신의 상황, 즉 현실태로 이어지는 변화의 에너지이다. 대형 마트에서 유통 기한이 지난 냉동 음식을 몰래 빼와 저녁을 먹는 것으로 지친 하루를 마무리하는 안사에게 라디오는 따뜻한 일상의 소식이 아니라 병원 폭격처럼 대량 살상이 발생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소식만을 전할 뿐이다. 암울해지기만 하는 뉴스를 피해 라디오 채널을 돌렸을 때는 차려입고 밖에 나갈 옷도 허리띠도 없다는 노래가 나온다. 이때 나오는 노래는 안사의 고단하고 외로우며 가난한 삶을 묘사하는 것에 의의가 있는 듯하다. 하지만 다음 내용과 연결해보면 라디오에 흘러나오는 노래는 단순히 안사의 현재 삶을 묘사하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다. 안사가 고단하고 외로우며 가난한 삶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으며 실제로 그러한 의지와 맞물릴 어떤 사건에서 의지를 행동으로 옮길 것이라는, 가능태와 현실태가 혼재된 순간이다.

출처. 왓챠피디아

헬싱키의 한 공장에서 금속노동자로 일하는 홀라파의 삶도 고단하고 외로우며 가난하다. 홀라파는 음주 금지인 현장에서 몰래 술을 반입해 음주를 하며 일을 하고 가스 폭발의 위험이 있어 흡연이 금지된 구역에서 흡연을 한다. 그에게 삶은 더 나아질 기미도 없고 당장 내일 죽는다고 해서 아쉬울 것이 없다. 모두가 혹시나 있을지 모를 하룻밤 인연에 대한 기대감으로 시내로 나가는 불타는 금요일 밤에 그는 고독한 것이 좋다며 침대에 누워 빈둥거린다. 하지만 가라오케에 가 노래도 부르고 여자도 만나자는 동료의 꾀임에 다음 순간 홀라파는 누구보다 진지하게 외출을 준비한다. 그런 홀라파의 외출 준비는 어서 자신과 뜨거운 만남을 보내자는 가사에 흥겨운 팝음악으로 꾸며진다. 홀라파에게 삶은 당장 내일 죽는다고 해서 아쉬울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내일 죽는다고 했을 때 자신과 함께 할 누군가를 만날 수 없는 것이 두려워 술로 두려움을 잊고 일부러 외로운 늑대 코스프레를 하는 것이다. 확실하지 않지만 만남의 기대감으로 가득한 가라오케로 연결되는 흥겨운 팝처럼 홀라파는 내일을 희망으로 기다릴 수 없는 삶을 다시 뜨겁게 살고 싶은 인물이다.


일반적인 뮤지컬과 다르게 <사랑은 낙엽을 타고>에서 안사와 홀라파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것으로 자신의 상황과 감정을 묘사하고 상황과 감정을 바꿀 것이라는 의지를 표현해 관객으로 하여금 두 인물이 변화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랑은 낙엽을 타고>의 음악은 두 인물의 상황과 감정을 묘사할 뿐만 아니라 암울한 각자의 상황을 극복하고자 하고 그렇기에 서로 만나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즉, 뮤지컬스럽게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현실에 억압된 인물들의 극복 의지와 의지의 실현을 음악을 통해 제시한다. 이아 관련해 눈여겨 볼 흥미로운 지점은 안사와 홀라파 각자를 소개하는 듯한 노래, 어떻게 보면 인트로 노래라 할 수 있는 두 노래가 재생(?)되는 순간이다. 안사의 인트로는 안사 본인이 러우 전쟁 뉴스를 피해 라디오 채널을 돌리다 나온다. 안사는 암울한 러우 전쟁 뉴스보다 그나마 덜 암울하고 자신의 현실을 떠올리게 하는 우울한 노래를 소파에 가만히 앉아 차분히 듣는다. 반면 홀라파의 인트로는 홀라파의 어떤 행동과 연관없이 흘러나온다. 홀라파가 동료의 꾀임에 따라 나갈 준비를 할 때 팝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하고 그 팝음악은 홀라파와 동료가 혹시 모를 뜨거운 만남이 있을 가라오케에서 한 남자가 부르고 있던 노래이다. 이렇게 인트로 노래가 재생되는 순간을 통해 고단하고 외로우며 가난한 삶을 사는 안사와 홀라파 각자가 삶을 어떻게 대하는지 알 수 있다. 안사는 자신의 삶이 암울하다는 것과 암울한 삶에서 느끼는 외로움을 직시하는 반면 홀라파는 자신의 삶이 암울하다는 것을 알되 자신이 느끼는 외로움을 외면하고 숨기는 것이다.

출처. 왓챠피디아

인트로 외에도 <사랑은 낙엽을 타고>의 노래들은 마치 뮤지컬의 넘버인 것마냥 서사에 깊이 녹아들어 분리하기 어렵다. 술집에서 동료의 중후한 바리톤 목소리로 연주되는 슈베르트의 세레나데는 늦은 밤 서로를 보게 되는 로미오와 줄리엣마냥 어두운 펍에서 서로를 보게 되는 안사와 홀라파가 자신에게 서로 다가와달라는 사랑의 노래가 된다. 하루의 끝에서 왁자지껄해야 하는 펍에서 맘보 이탈리아노(Mambo Italiano)는 흥겨운 멜로디로 펍을 가득 채우지만 노래도 춤도, 심지어 수다도 없이 그저 조용히 맥주잔만 비우고 있는 손님들로 가득한 모습과 대조되어 암울한 삶의 현실을 극대화한다. 겨울과 얼음처럼 차갑기만 한 사랑 대신 따뜻한 사랑을 느끼게 해달라는 노래는 술과 잔소리로 서로에게 진절머리가 난 듯 첫 저녁 식사 이후 연락도 안 하고 지내는 안사와 홀라파의 교차를 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어서 빨리 서로 연락하길 바라게 한다. 슬픔과 환멸이 가득한 어딘가에 갇혀 영영 떠나지 못하고 있는 누군가 떠난다면 반드시 스스로를 위해 떠날 것이라는 노래는 모두가 멍하니 노래를 듣고 있는 펍의 손님들 사이로 홀라파가 술을 마시는 대신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펍을 떠나 술을 끊게 되는 원동력이다. <사랑은 낙엽을 타고>의 각 노래들은 비슷한 가사나 멜로디를 지닌 다른 노래로 대체될 수도 있겠으나 동시에 서사의 바로 그 순간에 서사 속 세계와 인물에 가닿아 얽히고 설켜 떨어지지 않으려 한다. 관객은 그 순간의 노래들을 들으며 다음 순간에 안사와 홀라파가 어떻게 변화하고 어떤 사건이 촉발되어 두 사람이 끝내 어떤 결말로 나아가게 될지를 기대하게 된다.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뮤지컬'적'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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