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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쾌한 박자를 잊은 채 서서히 침묵하는 시리즈(2.5)
다루기 어려운 주제를 선택하면서 시리즈의 매력이었던 통쾌한 맛을 잃어버렸다. 영화에 대한 평 중 이미 여러 차례 회자되었던 주제를 다시 지겹도록 언급하면서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는 평이 있었다. 그 말대로 <베테랑2>는 악인이 악인을 징벌하는 것에 대한 윤리적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다. 악인을 살해하는 것은 선하다 할 수 있는가? 악인을 살해한 사람은 악인인가? 선이 악을 징벌한다고 했을 때 논리적 모순만큼이나 악이 악을 징벌한다는 논리적 모순은 해결하기 어렵지만 오랫동안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활용되었던 소재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베테랑2>의 내용은 새롭지 않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베테랑2>의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애초에 9년 전 <베테랑>(2015)이 개봉했을 당시에도 형사 '서도철(황정민 분)'이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 분)'를 마약 혐의로 체포하는 서사가 새로워서 1000만 영화가 된 것은 아닐 터이다. 대중오락영화에서 신선한 소재라는 말 자체가 성립하는지를 생각해보면 소재 그 자체가 신선해서라기 보다 연출, 연기, 촬영, 미술, 편집 등 그것을 다루는 방식이 신선함을 더한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출처. 왓챠피디아
그렇다면 <베테랑2>의 문제는 그 내용이 신선하지 않아서라거나 혹은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한, 즉 뻔한 내용을 영화화하는 과정에서 신선함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베테랑>이 신선했던 이유는 악을 사이다에 기반한 사법 체계로 해결했기 때문일게다. 기본적으로 악을 악으로 징벌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선이 악을 벌할 수 없다는 믿음에서 시작된다. 징벌이라는 행위 자체를 선이 행할 수 없다고 인식되고 선에 기반해야 하는 사회 시스템은 이미 부패했다는 믿어지는 암울한 오늘날 악을 악으로 징벌하는 것은 그나마 현실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는 동앗줄과 같다. 여기에 암울한 현실을 버티게 하는 동앗줄이기에 악으로 악을 징벌하는 서사는 이른바 사이다 서사와 연결된다. 악에게 고통스러운 형벌을 가하는 서사를 통해 동앗줄을 붙잡은 이들은 암울한 현실로 억압되어 응축된 감정을 배출하게 되고 현실을 마주할 수 있게 된다. 이 카타르시스의 과정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악으로 악을 징벌하는 소재 혹은 서사는 굉장히 잔인하고 극단적인 형벌을 연출하는 경우가 많고 그에 따라서 지나친 오락성으로 비판받기도 한다.
하지만 <베테랑>은 조금 특이하게 이제는 더이상 믿어지지 않는 사회 시스템을 통해 사회의 악을 제거한다. 형사 서도철은 폭력을 활용하는 경찰이라는 점에서 완벽한 선은 아니나 동시에 그가 근무하는 직업 환경을 생각해보면 그의 액션은 개인의 감정에 기반한 폭력은 아니다. 사람 팰려고 경찰 됐다는 평을 가끔 듣기는 하지만 서도철의 액션은 기본적으로 개인의 감정이 분출되는 결과가 아니다. 이에 반해 조태오의 액션은 사회적 지위, 그에 대한 개인의 인식 등에 기반해 개인의 감정을 분출한 결과이다. 조태오가 하청업체 트럭 운전사를 폭행하는 장면만이 아니라 경호업체 직원과 스파링 중 부상을 입히는 장면, 클럽 여직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장면 등을 보더라도 조태오의 액션은 자신의 감정을 방해하는 외부 자극에 대한 개인적 징벌에 해당한다. 서도철이 완벽한 선은 아니나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는 시스템의 액션을 행한다면 조태오는 개인의 감정만을 위하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기적 폭력을 행하는 것이다.
출처. 왓챠피디아
이러한 구도에서 <베테랑>은 서도철의 액션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장치를 해놓는다. <베테랑>의 액션을 생각해보자. 서도철과 '미스봉(장윤주 분)'이 중고차 사기 조직을 체포하기 위해 불륜 커플로 변장한 채 중고차 딜러를 만나러 들어오는 시작 장면부터 강력범죄수사대 직원들이 다함께 러시아 조직까지 체포하는 부산항 장면까지. <베테랑> 초반부의 흐름은 단순히 인물들이 어떤 인물들인지, 각 인물의 관계가 어떤지 개략적으로 보여주는 흐름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베테랑>은 강력반 식구들의 액션을 경쾌한 음악을 배경으로 리듬감 있게 보여주면서 시스템의 액션을 웃음이 있는 통쾌한 액션으로 탈바꿈한다. <베테랑>의 경쾌한 OST 속에서 서도철을 비롯한 경찰들은 자신들에게 날아오는 악의 폭력을 웃으며 이겨내고 끝끝내 법의 처벌을 받게 한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어?"라는 대사가 명대사로 여겨지는 이유는 경쾌한 리듬 속에서 진중하지 않은 듯한 경찰들이 사실 선에 기반한 시스템을 수호한다는 자신들의 본분에 따르고 있다는 통쾌함을 주기 때문이다. "형님, 밥 먹으러 갑시다!", "내가 죄짓고 살지 말라고 그랬지?", "이제 판 뒤집혔다."와 같은 대사들이 맛깔나게 느껴지는 이유도 핵심은 기본적으로 <베테랑>의 서사가 경쾌한 리듬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법, 편법, 차별 등의 악으로 가득해 머리가 아파오는 현실을 한풀이 하듯 가볍고 경쾌한 분위기 속에서 시원하고 통쾌한 액션의 서사로 날려버리는 것이다. 너무 단순하고 오락적인 해결책으로 보일지 몰라도 오히려 그렇기에 가장 단순한 기본을 쉽게 기억할 수 있다. "죄짓고 살지 말라 그랬지"
그러나 <베테랑2>는 악을 악으로 징벌하는 것에 대한 윤리적 담론을 가져오면서 이를 단순하게 풀지 못한다. 좋은 살인이 어딨고 나쁜 살인이 어딨냐는 서도철의 외침과 달리 영화는 악을 징벌하는 악에 대한 사회의 다양한 반응을 나열하고 이에 대한 판단은 보류한다. 자신을 향한 관심에 희열을 느끼며 악을 징벌하는 '선우(정해인 분)'에 대한 판단도 보류하는 듯하다. 경쾌한 분위기도 통쾌한 액션도 없고 강력반은 자신들의 행위에 확신이 없다. 자신이 가지고 온 소재에 대해 영화는 모든 판단을 보류한 채 9년 전 <베테랑>의 이미지만 염세적으로 반복할 뿐이다. 선우를 체포하는 과정은 통쾌하게 결론으로 나아가 끝을 맺는 것이 아니라 확신이 없어 질질 끌려가 맺어져야 하는 결론에 억지로 도달한 것 같다.
출처. 왓챠피디아
애초에 전작과 다른 분위기에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면 오프닝 자체도 경쾌한 주부도박단 체포기가 아니라 암울한 다른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9년 전의 강력반이 아니라 지금의 강력반이 어떤 현실을 마주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 시리즈의 변신에 더 좋았을 게다. 악을 징벌해야 한다는 인식이 남아 있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지 혹은 그 인식 자체도 아무런 의심없이 맹목적이고 교조적인 인식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더 암울한 생각이 난다. 마찬가지로 이 시리즈 역시 악을 징벌해야 한다는 인식을 맹목적으로 따르다 스스로의 발목을 잡은 것 같다. 3편을 예고하는 결말이 단순한 욕심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