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텍스트의 한 줄 평들이 궁금하시다면 왓챠피디아(Gozetto)나 키노라이츠(Gozetto1014)를 보시면 됩니다.
낙관으로만 푼다 해도 정신은 차려야지(2.0)
부산국제영화제 홍보팀으로 일하면서 영화를 볼 수 있는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놀랍게도 영화를 두 편이나 볼 수 있었다. 두 영화 중 한 영화는 딱히 할 수 있는 말이 별로 없기에 넘어가기로 하고 기대했지만 배신당한 영화, <고스트캣 앙주>에 대해서 말해보자. 간혹 애니메이션 중에 어떤 특정 이미지에 기댈 뿐 영화 전반의 내용은 중요한 의미가 없는 경우나 영화가 기대고 있는 이미지가 내용의 흐름과 연관성을 찾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고스트캣 앙주>는 후자에 해당한다.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해 여느 고양이들과 달리 죽지 않고 살더니 고양이 요괴가 된 '앙주(목소리 모리야마 미라이)'. 37세에 아저씨인 이 고양이 요괴는 귀여운 외관과 더불어 어딘가 어리숙하면서도 사려 깊은 행동으로 호감이다. 즉, 앙주는 카와이한 포지션을 맡아 관객들이 영화에 빠져들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출처. 왓챠피디아
문제는 영화에서 앙주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 즉 없어서는 안 된다고 하기 어렵다. <고스트캣 앙주>는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은 '카린(목소리 고토 노아)'이 저승으로 엄마 '유즈키(목소리 이치카와 미와코)'를 찾으러 간다는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이 줄거리에서 앙주는 카린이 저승으로 가는 것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그런가? 고양이 요괴인 앙주는 인간들은 볼 수 없는 가난신을 볼 수 있어 가난신과 카린 사이의 통역사 역할을 해 카린은 저승으로 갈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그 외에 다른 역할을 할 수는 없다. 그냥 오래 살아서 요괴가 된 앙주에게는 어떤 특별한 능력이 있지 않다. 그렇기에 저승의 도깨비들과 염라가 도망친 유즈키를 쫓아왔을 때도 앙주는 그저 샌드백 역할 밖에 하지 못한다.
출처. 왓챠피디아
물론 앙주에게 물리적으로 확인 가능한 특별한 능력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앙주에게 서사 내적으로 카린의 정신적 지주와 같은, 정신적으로 특별한 능력이 있어야 한다. 즉, 카린과 앙주 사이에 어떤 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 하지만 영화에서 카린과 앙주는 어떤 특별한 관계를 갖지 않는다. 유즈키가 스스로 저승으로 돌아가면서 모든 상황이 정리되었을 때에야 둘은 우정과 같은 관계를 갖게 된다. 카린이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아빠 '테츠야(목소리 아오키 무네타카)'에 대한 불만 등으로 시골 마을에 정착하지 못하는 동안 둘은 서로에게 미운 정도 들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시골 마을에서 둘 사이의 관계는 뜨뜻미지근한 감정에 기반한 것으로 보인다. 그저 어쩌다 보니 카린을 보호해야 하는 앙주가 어떻게 하다 보니 카린을 따라 도쿄에 왔다가 어찌저찌 저승에 가게 되는 흐름. 앙주가 서사에서 하는 역할은 무엇인가?
카린이라는 아이의 성장을 그리는 영화에서 앙주라는 존재는 크게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가난신을 볼 수 있는 앙주의 능력은 어린 아이인 카린이 동화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해도 무방해 보인다. 앙주의 도움이 크게 필요해 보이지 않는 카린이 다른 신적인 존재 혹은 요괴들과 어울리면서 함께 저승으로 갔다가 엄마와 함께 산다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이야기였어도 무방해 보인다. 카린의 성장에서 앙주가 없어도 가능한 이야기라면 이 영화가 굳이 앙주라는 아저씨 고양이 요괴를 서사에 집어 넣어 고스트캣 앙주라는 제목으로 내세울 이유가 없다. 정신 없이 서로를 놀리고 사고를 치면서 아무런 내용 없이 깔깔 대고 웃기만 하는 미니언즈조차도 단순히 귀엽기만 한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서로를 놀리고 사고를 친다"는 역할을 하면서 서사를 이끌어간다. 개인적으로 고양이 선생님들을 사랑하는 애묘인으로서 앙주라는 고양이 아저씨가 무의미하게 느껴져 더욱 안타까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