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텍스트의 한 줄 평들이 궁금하시다면 왓챠피디아(Gozetto)나 키노라이츠(Gozetto1014)를 보시면 됩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 저항하는 용기를 날카롭게 빚다(4.0)
지독하게도 현실적인 시선으로 삶의 사소한 것들을 극복해 용기를 갖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추적한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영화의 시작부터 삶에서 용기를 갖기에는 사는 것이 너무나 바쁜 소시민 '빌 펄롱(킬리언 머피 분)'을 보여준다. 아일랜드의 작은 마을에서 석탄상을 하고 있는 빌 펄롱은 사무실에 걸려 오는 전화는 직접 받을 수도 없이 숏의 전환으로 직접 배달을 다니고 있으며 직원들과 밥을 먹을 때는 미처 한 술을 뜨기도 전에 마찬가지로 숏의 전환으로 배달을 하고 있는 사내이다. 영화가 시작한 직후 빌이 집에 들어가기 전까지 숏 구성과 전환은 빌 펄롱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바쁘게 그리고 열심히 일하는 성실한 석탄상인지를 보여준다. 그런데 이 숏 구성 중 이질적인 숏이 있다. 배달을 마치고 돌아가는 빌이 이웃의 어린 아들이 위험천만하게 도로를 따라 걸으며 땔감을 줍고 있는 것을 볼 때이다. 보통 같으면 그가 배달을 마치는 순간 이미 직장에 돌아가 다른 일을 하건 다른 곳의 석탄 배달을 하고 있는 숏이 나와야 할 텐데 그가 도로를 타고 돌아가던 중 아이를 본 숏부터는 그가 아이를 유심히 쳐다보고 차에서 내리기까지 고민하다 결심하는 데까지, 그리고 그가 차에서 내려 아이에게 괜찮은지를 묻고 주머니에서 약간의 잔돈을 건네주는 것까지, 모든 순간을 담는다. 시간의 삭제가 있는 이전 숏들과 비교해보면 이 숏에서 빌은 그렇게 살기 힘든 소시민임에도 왜인지 아이에게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출처. 왓챠피디아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빌 펄롱이라는 소시민을 중심으로 관객에게 묻는다. 과연 당신은 도와야 하는 누군가를 보는 순간 가족, 사회적 위치, 공동체와 관계 등을 모두 사소하다고 생각하며 도움의 손길을 줄 수 있는가? 빌이라는 개인의 모습은 관객들 개개인과 비슷하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일을 우리는 평소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 대수로운 생각조차 갖지 않았던 사소한 것들에 의해 주저하게 된다. 빌의 인간성과 관련있는 시작부의 대조적인 숏 구성은 단순히 빌의 인간성만을 보여주기 위한 숏이 아니다. 빌의 어린 시절과 연결되어 '윌슨 부인(미첼 페어리 분)'이 아니었다면 비 오는 밤 길거리에서 오물이 묻은 그릇의 물을 마시는 아이, 수녀원에서 학대와 노동 착취를 당하며 석탄 저장고에서 아이를 낳아 헤어져야 할 수도 있던 '사라(자라 데블린 분)'의 모습이 빌 자신 혹은 미혼모인 어머니의 모습일 수 있다는 것을 빌이 알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도 있다. 동시에 그런 사실을 인식하고 있음에도 아이와 사라에게 손을 내밀어 집으로 데려오는 것을 계속 고민하게 만드는 삶의 사소한 지점들이 지닌 위력을 보여준다. 다르게 말하면 아이와 사라에게서 자신의 다른 삶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빌보다 그러한 삶을 보기 어려운 혹은 인지하지 못하는 타인인 우리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할 때 사소한 것들의 위력을 극복하고 용기를 낼 수 있을까?
출처. 왓챠피디아
영화의 질문이 지독하게도 날카롭다. 특히 마지막까지 그 날카로움을 놓지 않기에 이 영화는 연말을 맞은 한국 사회에 의미가 크다. 마을의 상점에서 어린 시절 미혼모 어머니가 사주기에는 값비쌌던 직소 퍼즐을 본 빌은 마음을 다잡고 사라를 수녀원에서 데리고 나온다. 추운 밤공기를 뚫고 집으로 사라를 데리고 가는 길에서 밤공기보다 더 날카로운 것은 마을 사람들의 눈길이었을 것이다. 사라를 데리고 가는 빌을 길거리의 모두가 바라보는 장면은 그러한 빌의 용기에 박수를 치게 하지만 동시에 거리의 군중이 곧 관객인 우리일지도 모른다고 자각하게 한다. 집에 도착한 빌이 크리스마스 연휴를 맞아 가족들이 웃고 떠들고 있는 거실로 사라를 인도했을 때 차갑다는 것을 넘어 완전히 얼어붙을 정도로 고요해지는 빌의 가족이 관객인 우리가 아니라고 하기에는 입이 떨어지기 어렵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뒤 자리에 일어난 누군가가 자신도 빌처럼 할 수 있다고 쉽게 입에 담는다면 그만큼 삶의 무게가 가볍거나 그 무게를 쉽게 생각하는 이일 것이다. 선한 행위가 반드시 밝은 미래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 다르게 말하면 선한 행위는 그것이 선하기에 할 뿐 행위의 결과와는 무관하다는 사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의 제목처럼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것에서 한 발 벗어나는 것이 실은 얼마나 커다란 용기를 가져야 하는 일인지를 곱씹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