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난해서 미안합니다
암묵지에 대한 설명은 모두 망상이고 지랄이다.
내가 어제 서점에 가서 정말 놀랐던 것은 "퀀텀 독서법, 글쓰기 강의"라는 머저리같은 책이 서점 한 가운데에 진열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글쓰기랑 독서법을 책으로 배운다는 것은 자전거 타기를 책으로 배운다는 것과 같다. 암묵지란, 암묵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을 말한다. 그것은 잠재의식의 신경이 작용되는 창의적 상상, 직관, 예술, 스포츠, 글쓰기, 걷기 등이 해당된다. 방법론에 대해 다루는 것은 전부 학습 동기에 대한 맹점을 갖고 있다. 그 어떤 특별하고 혁신적인 방법론도 그 행위에 대한 동기를 절대 넘을 수 없다. 즐기는 자는 언제나 최강이다. 독서법을 아무리 독파한 사람도 나만큼 독서에 흥미를 가진 사람을 이길 수 없다. 탁월한 독서법은 탁월한 동기를 넘어설 수 없다. 그냥 흥미가 생기면 읽는 것이다.
축구에 미쳐있는 어린 아이들은 축구를 즐기다가 의문이 발생한다 "어떻게 하면 더 잘하지?" 피드백은 그 때 받는 것이고, 그제서야 기술을 개발해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독서를 제대로 하지도 않고 글쓰기를 즐기지도 않는 사람이 글쓰기와 독서가 성공한 사람들의 비법이라고 따라하는 것은 그의 영혼을 따르지 않은 행위인 것이다. 그것은 허상이고 가짜다.
쇼펜하우어가 과연 글쓰기 방법론을 읽고 글을 썼을까? 그는 세상에 대한 분석, 직관, 통찰력이 머리에 넘쳐흐르자 글로 날랐던 것이다.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방법론이 역설적으로 학습 동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장기적이지 못하다. 방법론에 치우치면, 자신의 영혼으로부터 비롯되는 동기, 즉 '그냥 읽기'가 방법론에 끼워 맞춰져야한다는 강박을 만들어낸다. 이것은 부작용이 크다. 암묵적 지식을 명시적 지식으로 바꾸자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내가 앞선 글에서 편식하는 자가 대가가 되기 위한 초석이라는 것은 이와 같은 원리를 따른다. 글쓰기와 독서가 자신의 영혼으로부터 비롯됐을 때, 다시 말해 잠재의식적으로 꽃혀서 하는 행위일 때 가장 잘한다. 그러니 그저 행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