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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옷 Jan 26. 2024

쓰는 맛과 읽는 맛이 좋은 문장과 글에 대해 쓰다

-지구 끝의 온실-을 읽다

나는 주로 엄청난 만연체로 글을 쓴다. 읽기에는 조금 불편할지 몰라도 일단은 쓰는 맛상당히 좋기 때문이다.(독자들에게는 죄송하다.) 아직 프로 글쓴이가 아닌 덕분이겠지만 어쨌든 내 마음대로 쓰는 맛을 즐기며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이다. 이런 나 조차도 글을 읽을 때는 정갈하게 다듬어진 문장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독자들에게는 다시 한번 죄송하다.) 내가 읽기 좋아하는 문장이란 글쓴이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히 드러나고, 주술 호응이 잘 되면서도 운율이 춤추듯이 나풀거리고, 세상의 주요한 이치를 깨친 듯한 통찰력이 느껴져서 밑줄을 긋지 않고서는 못 기는 문장이다. 이러한 문장은 읽기만 해도 작가가 얼마나 공들여서 깎고 다듬었는지 눈치챌 수 있다. 에세이 한 편을 읽는다면 한 두 문장 정도인데, 작가가 등장하는 포인트까지 공들여 정했기에 '팟'하고 나오면 나는 '헤헤' 거리며 밑줄을 긋고 문장을 수집할 수밖에 다.


나는 확실히 이러한 문장들을 읽기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글을 한번 더 읽으면서 '오, 저번엔 저 문장에 밑줄을 그었었군. 지금은 이 문장이 훨씬 더 와닿는데.' 하다 보면 2 회독 뚝딱이다. 하지만 때로는 줄거리에 압도되는 글이 좋을 때도 있다. 작가가 직접 문장으로 하진 않지만 등장인물들의 상황과 행동 변화로 세상의 이치를 보여주고, 사건의 등장 순서도 치밀하게 계산해서'팟'하고 사건을 일으키면 나는 '허업' 하며 책장을 마구마구 넘길 수밖에 없다. 뒤에 어떤 이야기가 이어질지 너무 궁금하기 때문이다. 스포노출에 철저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유형이다. 한 번 줄거리 머리에 주입되고 나면 읽는 재미가 반반의 반으로 줄어든다.(ex : 명탐정 코난)

  

이 소설은 당연히 두 번째 유형의 글이다. 그래서 책 한 권을 통틀어 밑줄은 다섯 문장 밖에 못 그었다. 하지만 하룻밤을 꼴딱 새며 읽을 정도로 흡입력이 있다. '더스트'로 시작된 지구의 디스토피아에서 살아남기 위한 사람들의 이런저런 태도가 현실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는 듯하다. 지구의 끝에서 만난 온실은 우연히 너와 나의 시공간이 겹쳐진 곳일 뿐일까. 일상을 사는 우리도 어쩌면 온실을 중심으로 구성된 '프림 빌리지'의 일원과 같은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지 모른다. 개인의 우주는 일생에 한 번은 반드시 죽음으로 멸망하고야 마니까 말이다. 지만 세상은 끝없이 영원할 거라는 헛된 믿음, 또는 희미한 미래를 명확히 인식하는 능력의 부족으로 죽음을 잊고 지낼 뿐이다.


아름다운 문장은 사람을 위로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는 사람을 감동시킨다. 잊고 지내던 개인의 멸망을 마주 볼 수 있게 하는 용기도 준다. 문장을 읽고 모으지 않을 이유가 없으며, 이야기를 읽고 기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나에게 쓰라고 한다면 이야기꾼 모드의 글은 조금 어렵지 않을까 싶다. 상상력이 빈약하여 '모스바나'와 같은 식물을 탄생시키기는 확실히 어려울 것 같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글이 만연한 세상에 만연체로 씌여진 문장을 하나 더 보탤 뿐이다. 이야기꾼 같이 탁월한 능력은 없더라도 문장을 깎고 다듬는 일은 어쩌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만연체의 문장이 점점 정갈해지는 모습을 나도 보고 싶다. 쓰는 맛도 포기하지 않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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