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형 큰 J와 작은 j의 오사카 여행기)
“엄마! 이번 여행의 목표는 엄마랑 안 싸우는 거야.”
“오~~ 나랑 똑같애. 나도 너랑 안 싸우는 게 목표야”
오사카 여행을 앞두고 딸과 내가 나눈 대화다.
우린 이렇듯 공공연히 ‘안 싸우면 다행’이라는 마음을 서로에게 내비치고 있다.
언제부터 그랬느냐고 묻는다면, 아이가 7살이된 이후 쯤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건 좀 과하게 과장한 거 아니냐고 반문하겠지만, 이게 팩트다. 아이가 태어나 자아가 생긴 이후부터는 생각보다 자주 부딪혔다. 공식적인 이유는 아이가 본래 예민하고 겁이 많은 편이라 그렇고 더구나 지금은 사춘기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지만, 비공식적으로는 MBTI 상 J인 엄마와 J인 딸이 만나서라고 나는 비밀스럽게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건 전적으로 개인적인 판단이므로 비공식적인 평가라 할 수 있다.
MBTI는 16가지 유형으로 개인의 심리적 성향을 평가하는 도구다. 70억 인구의 독특성을 지나치게 축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지만, 큰 틀에서는 많은 부분 공감과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는 유용한 이해 도구라 할 수 있다. MBTI는 4가지 성향의 조합으로 이루어지는데, 그 중 가장 오른쪽에 적히는 알파벳이 J 혹은 P로 구분되는 생활방식 유형이다. 이는 생활방식을 결정하는 요인이기에 쉽게 두드러지고 모든 생활 측면에서 보여진다. J는 계획형 혹은 판단형이라 해서 모든 일에 있어 준비와 계획을 중요시 여긴다. 계획되고 준비되어 있을 때 그리고 예측 가능할 때 편안함을 느끼며 시간을 철저히 지키고 시간 관리를 잘 한다. 반면에 시간이나 일이 예측 불가능하거나 변하는 상황을 불안해하고 때로 짜증과 화를 낼 수 있다.
J의 반대편에는 P유형이 있다. P유형은 인식형이라 불리며 계획과 준비보다는 자율과 호기심에 의해 생활하는 유형이다. 그렇기에 변화에 유연하고 호기심이 많아 상대나 상황의 변화에 잘 적응하고 수용하여 성격 좋은 사람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순간적인 몰입력과 완성력이 있어 일을 미루다가 막판에 하는 경향이 있어 태만해 보이기도 하고 즉흥적인 호기심 추구로 인해 계획을 바꾸거나 시간을 놓치는 면에서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는 유형이다.
그런데, 딸과 나는 둘다 J유형이다. 자신만의 계획이 명확하고 늘 계획과 준비를 일삼기 때문에 계획이 흐트러지는 것을 어려워한다. 문제는 그 모든 계획과 준비가 자신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 계획 안에 상대의 계획이나 주변상황은 고려되지 않을 때가 있다는 것이다. 이건 사실 나이가 들며 많은 인생의 경험과 배움의 경험으로 유연해지게 마련인데, 아이는 어려서 언제나 상황이 변할 수 있고 우리의 계획이 상황이나 마주하는 상대방의 준비와 계획에 따라 변하고 바뀔수도 있다는 것을 예측하기 힘들다.
우리가 대체로 부딪히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늘 서로의 계획이 상충하거나 상황이나 마주하는 사람에 따라 변화될 때, 아이는 무척 예민해졌고 화를 냈다. 아이가 어릴 땐 엄마인 나 조차도 어렸기에 예민해지는 아이를 수용하기 힘들 때가 많았고 아이를 먼저 생각하기 보다 상황논리를 내세우거나 종종 만나는 다른 이들을 먼저 생각하느라 아이를 다그칠 때가 많았다. 그럴대마다 불안과 짜증을 서로에게 비치다보니 다툼이 되곤 했다. 물론, 엄마인 내가 아이의 성향을 이해하고 받아주어야 하는 줄 안다. 당연히 알지만 많은 이들과 함께 해야할 때, 엄마가 익히 잘 아는 부분일 때 혹은 엄마가 아이를 위해 무언가 계획하고 준비했을 때는 이에 대해 아이가 반론을 제기하면 나도 모르게 버럭 화가 난다. 우린 그래서 특히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갔을 때나 아이를 위해 엄마가 준비한 데이트나 여행 때 자주 부딪힌다.
다행인 것은 아빠와 아들은 P 유형이다. 두 남자는 종종 우리 둘의 중재자가 된다. 그들은 호기심이 많고 즉흥적이기에 ‘이것도 좋다하고 저것도 좋다 한다. 그래서 J의 계획들을 재밌어 하고 잘 따라준다. 다만, 가족 이벤트를 만들거나 집안의 일들을 계획해야 할 때는 태만한 태도로 여겨져 J의 비난을 받기도 한다.
얼마전 딸아이는 오사카로 여행을 가고 싶다고 했다. 요즘 경제적인 어려움과 바쁜 생활로 나는 어려울 것 같다고 했으나 아이는 며칠동안 고민하더니 여행 계획서를 가져왔다. 가장 저렴한 항공사와 비행기표의 가격, 오사카에서 저렴하면서도 지하철역에 가까운 숙소, 여행의 일정과 가고자 하는 곳 들의 입장료와 가는 방법이 적힌 한 장의 아름다운 계획서였다. 딸 J의 계획서는 엄마 J를 감탄시켰고 엄마 J는 바로 ‘오케이!’라고 외쳤다.
그렇게 딸과 나는 며칠 뒤면 오사카로 여행을 떠난다.
아이는 여행이 수락된 후에도 계획서를 또 보고 또 보며 세부 내용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친구네 가족이 함께 가고 싶다고 했으나 딸아이는 엄마랑 둘만 가고 싶다고 답했다. 이것도 비공식적인 그러니까 엄마로서의 그간의 아이의 성향으로 미루어 볼때, 맘껏 하고 싶은 걸 해보고 싶어서란 판단이 든다. 그래서 나는 여행의 계획과 실행권을 모두 딸에게 주기로 했다.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일들을 스스로 정하고 거기까지 가고 행하는 모든 것을 준비하고 생각해 보라했다. 주도적이고 계획적인 딸아이는 이 상황을 무척이나 즐기고 있다. 자신이 원하는데로 계획하고 준비하는 과정이 무척이나 신나고 재미있다고 한다. 내심 나는 여행가서 영어를 구사할 딸을 상상하며 비밀스러운 웃음을 짓고 있다. 나는 뒤로 빠지고 혼자 묻고 찾다 보면 여행겸 공부도 되겠지 싶은 속셈이다.
그러려면 나는 전적으로 나의 J를 누르고 아이의 의견을 존중하고 아이의 계획을 따라 주어야 한다. 그러기로 매일 다짐하고 있는데, 막상 현장에 가면 또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겠다. 이제 세월의 지혜가 쌓여 계획따위 언제든 변할 수 있다고 늘 마음먹긴 하지만 나의 성향은 분명히 J이므로 스멀스멀 성향이 올라와 부딪힐까 걱정이다. 그래서 결심했다.
딱 3박 4일만 P 유형으로 변신하기로.
그런데 이게 가능한 걸까?
아직은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