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과 걱정 vs 공감과 추억
전라도에 있는 한 초등학교 야구부와 아들이 속한 야구부는 몇년 전부터 홈스테이를 통해 교류하고 있다. 지난 겨울방학에는 아들이 2박3일 동안 전라도로 내려갔고, 이번에는 전라도에서 올라왔다. 아이를 전라도에 보낼 때도 조심스러운 마음도 있었지만 보내는 입장은 아이의 짐과 전라도 홈스테이 부모님께 보낼 선물만 챙겨보내니 한결 수월했는데, 얼굴도 모르는 아이가 집으로 온다니 보낼 때 보다 몇 배는 더 신경이 쓰이고 준비할 것이 많았다.
야구부에서 홈스테이 날짜가 정해졌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어디서 재우지?’와 ‘무얼 먹이지?’였다.
먼저, 어디서 재우지?에 대한 고민은 나에겐 가장 큰 부분이었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방 3개에 욕실 하나의 옛날식 구조이기 때문이다. 여분의 방이 없을뿐더러 야구하는 아들 위로 누나가 있어 방을 빌려주거나 합쳐 줄 수가 없는 상황이고 화장실 마저 하나여서 손님 아이가 불편할까 염려되었다. 그래서 친구네 아파트 게스트룸을 이용할까를 한참 고민했는데 이 고민을 들은 우리팀 임원분이 그건 홈스테이 취지에 맞지 않다 하셨다. 처음엔 ‘그럼 어떻게 하라는 건가?’ 난감했는데, 취지를 생각하다보니 홈스테이를 통한 교류는 서로 다른 지역에 살지만 야구라는 공통분모가 있는 아이들의 소통과 성장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장소나 환경에 대한 고민은 최소한으로 하고 아이들이 교류할 수 있는 편안한 분위기와 기억에 남을 추억에 중심을 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동시에 어떻게든 ‘우리 집을 잘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아이가 함께 잘 공간과 침구가 필요했다. 최소한의 고민이지만 아들 방에는 싱글 침대 밖에 없고 책상 때문에 공간이 작아 또 다시 고민에 빠졌다. 그럼, 아이들 둘을 함께 재우려면 아들 방 보다는 거실이 좋다는 데 생각이 미쳤으나, 거실에 재우는 건 손님 대접에 소홀한 느낌인데다 부엌에서 아침 준비를 하게 되면 아이들 수면에 방해가 될 까 걱정이 되어 집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생각에 빠졌다. 그렇게 내린 결론은 안방에 두 아이를 함께 재우고 우리 부부가 거실에서 자는 것, 잠자리는 그렇게 결정되었다.
다음은 이불이었다. 이불은 ‘어디서 재우지?’와 세트로 떠오르는 고민이다. 결혼 초에 장만해 두었던 손님용 이불은 명절에도 친척집에서 자고 가는 풍토가 사라짐과 동시에 처분한 터라 여분의 이불이 없었다. 더구나 침대생활을 하는 요즘 아이들에겐 얇은 깔개는 불편할 것 같아 검색 잘 하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손님용 두꺼운 깔개를 구입했다. 이 깔개는 아마도 내년 홈스테이와 아이들 친구 초대에도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홈스테이 바로 직전 주말에는 이불과 베게 커버를 빨고 욕실청소를 했다. 오랜만에 손님을 맞으려니 할 일도 많고 신경 쓸 일도 많았다. 사실 편하게 생각하면 좋으련만, 아이와의 인연이 또 이어질거란 생각에, 그리고 우리 아이와 좋은 만남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에 자꾸 준비하게 되고 신경 쓰게 되었다.
그 다음은 먹거리였다. 정성을 다해 해 주고 싶기도 했지만 무얼 좋아하는지 모르겠고, 우리집 반찬이 입맛에 맞을까 고민이 되었다. 그래서 아이에게 지난번 전라도에 갔을 때는 어떻게 했는지 물으니 상대 부모님은 저녁으론 아이와 함께 외식을 했고 아침은 저녁 외식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보통 아침에 너희 집에선 무얼 먹니?’라고 아이에게 먼저 묻고 그걸 해 주었다고 했다. 일단, ‘외식을 해도 되는구나’ 싶어 안심이 되었고 아이의 평소 아침 메뉴를 물어보았다는 상대 부모님의 센스어린 질문이 인상적이어서 나도 적용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일정이 변경되어 저녁은 야구부 전체가 함께 먹고 집으로 온다는 통보가 왔다. 그렇다면, 저녁은 해결. 그런데 아침은 아이에게 묻고 준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고로 아이들이라면 잘 먹는다고 생각되는 메뉴로 정하기로 했다. 소불고기와 야채전.
드디어 전라도에서 손님 아이가 오기로 한 날 저녁.
복도에서부터 떠드는 소리가 나기에 ‘이제 도착하는 구나’ 싶어 얼른 문을 열고 맞이했다. 야구 모자와 정갈한 선수복은 언제 봐도 멋이 느껴진다. 어린 아이지만 선수복을 입고 짐 가방을 든 모습이 늠름해 보였고 그 친구의 팔을 잡고 웃으며 들어오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왠지 먼 곳에 사는 동지를 만난 느낌이 들어 무척 반가웠다.
낯선 집에서 낯선 사람들과 자게 될 아이의 어색함과 불편함을 덜어주기 위해 얼른 잘 방을 안내해 주고 가방을 받아 주었다. 그리고 과일을 놓고 마주한 아이. 집에 오기 전에 함께 저녁을 먹으며 통상명을 하고 와서 그런지, 아니면 야구부라는 커다란 공통분모가 있어서인지 아이들은 내가 긴장하며 준비한 시간들이 무색하리만큼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뭐가 그리 재밌는지 만면에 웃음을 머금은 아들의 모습도 흐뭇하고 전라도 야구부에 대한 질문들에 대해 자부심어린 표정으로 답하는 손님 아이의 모습도 보기 좋았다. 아이들은 둘 다 야구부지만 전라도에서 온 아이는 초등 야구부, 우리 아이는 리틀야구부여서 서로에게 궁금한 점이 많았다. 더구나 전라도와 서울이라는 먼 거리만큼이나 생활하는 모습에도, 사투리가 섞인 억양에도 차이가 있어 그것이 또 새롭고 반갑고 흥미로운가 보다. 서로 종알종알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과일을 먹고 대화를 나눈 후 먹고 싶은 간식이 있냐고 물으니 떡볶이와 아이스크림이란다. 남편과 나는 간식을 사러 나오고 아이들은 어느새 인형으로 캐치볼을 한다. 누가 야구부 아니랄까봐 놀이도 늘 ‘야구놀이’다. 그렇게 훈련을 하는데도 놀이까지 하는 걸 보면 야구가 좋긴 좋은가 보다.
아이들은 간식을 먹고 각자 씻은 후 최강야구를 보며 웃더니 10시가 넘어 잠이 들었다. 아이들은 참 신기하다. 만난 지 몇 시간 안 됐는데 전에도 본 적 있는 친구처럼 혹은 종종 만나는 친척처럼 친밀하게 대화하고 함께 몸을 부비며 잠이 든다. 두 아이가 한 매트에 누워 곤히 자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역시 아이들의 추억에는 편리하고 좋은 장소가 중요한 게 아니라 아이들끼리의 교감과 편안한 교류가 중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화장실이 몇 개인지, 방이 얼마나 크고 편리한지가 아이들에겐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아침, 6시 반. 전라도팀이 오늘 대회가 있어 8시 10분에는 집을 나서야 하기에 일찍부터 서둘렀다. 불고기를 앉히고 야채전을 붙여 아이들을 식탁에 앉혔다. 손님 아이가 내 요리를 좋아할지 싫어할지 몰라 아침상을 차리며 ‘햄이랑 옥수수콘이 들어있어서 맛이 괜찮을거야’라는 설명을 보탰다. 그래도 다행히 아침밥을 잘 먹는다. 과일을 깎아서 내어 오는 사이 또 인형 캐치볼을 한다. 그리곤 깔깔거리고 웃는 모습이 예뻐서 사진을 찍었다. ‘내년에도 또 만날 테니 기억하자‘며 사진을 더 찍어 손님 아이와 아들의 핸드폰으로 전송해 주며 추억을 남겼다. 문자 메세지엔 ‘좋은 선수로 성장하자’라고 보내주었다. 집을 나서기 전 둘은 꼭 끌어안고 ‘잘가’라고 인사를 했고 나는 손님 아이의 손에 얼마의 용돈을 쥐어 주었다. ’가는 길 휴게소에서 맛있는 거 사먹으며 가라‘고 말해 주면서.
아이를 보낼 때에는 주로 내 아이가 상대 가족에게 불편을 주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여러 상황별 예의를 주지시켰고 3일이나 신세를 지는 상대 부모님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고민하며 선물을 준비했었다.
반대로, 우리 집으로 홈스테이를 오게 됐을 때에도 오는 아이를 어떻게 하면 편하게 지내게 할까? 하는 고민이 가장 컸고 불편하지 않도록 준비했다.
항상 상대의 마음을 먼저 신경쓰게 되는 게 우리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아마도 전라도 부모님도 나와 같이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가장 컸을 것이다.
손님 아이가 떠나고 나니, 많은 것을 준비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은 아이들의 방식으로 잘 적응하고 만들어간다. 그저, 함께 해 주고 편안하게 대해주는 마음, 서로의 추억을 소중하게 여겨주는 배려가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마음은 마음으로 통하니까. 아마도 지난 번 전라도에서 아들은 그런 마음을 전달받고 왔던 것 같다. 이번 전라도에서 온 아이에게도 서울에서의 홈스테이가 오래 기억에 남았으면 한다. 돌아가는 길이 즐거웠으면 좋겠고 다음 홈스테이 때는 못 만나는 동안 쌓은 경험들이 또 다른 이야깃 거리가 되길 바래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