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1화)
끔뻑끔뻑
초점 없는 눈이 허공을 향해 천천히
감았다 떴다를 반복하고 있다.
의미 없어 보이는 평범한 행동 같아 보여도
이것은 내가 아직까지는 살아있다고 알려주는
아주 중요한 신호이다.
뭐 엄밀하게 따지고 보면 지금의 나는 육체만 겨우
살아 있지 정신은 진작에 죽은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과연 큰 의미가 있는 중요한 일일까 싶기도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모스 부호처럼 미약하지만 꾸준하게
신호를 보내 주고 있다.
과거엔 총기로 가득 차 있던 눈동자였지만
지금은 총기가 있었던 눈이라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 상태이다.
썩은 동태 눈깔에 비유하기에도 아깝다. 오히려 썩은 동태눈을 반짝반짝 돋보이게 해 줄 수준이다.
그렇다면 뭐에 비유해야 가장 비슷할까?
좀비? 아니지 좀비에 대한 선입견이 있어서 그렇지
생각해 보니 좀비처럼 강렬하고 총기로 가득한
죽었지만 살아있는 눈동자는 본 적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비교 대상 자체가 없는 것 같다.
깜빡거리는 거 외에 다른 기능은 하고 있지 않던
흐리멍덩한 내 눈동자가 갑자기 반짝거렸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생기다.
이상한 전율이 온몸에 흘렀다.
이윽고 눈동자의 초점이 방 한 구석 작은 구멍을 향했다.
‘언제 생긴 거지? 못 보던 구멍인데?’
방이라고 해봤자 코딱지 만해서 5평 남짓에
불과했지만 50평을 꽉 채우고도 남을 만한
물건들로 집안 곳곳 가득 채워져 있었다.
어지럽게 대충 널브러져 있는 것 같아 보여도
나름 규칙이 있고 또한 체계적으로 정리해 둔
것이다. 어떤 물건이 어디 있는지 찾아보라고
한다면 단숨에 찾을 수 있을 정도로 물건의
위치 하나하나 다 기억하고 있다.
뇌의 총기는 아직 유효한 모양이다.
심지어 떨어진 머리카락의 위치까지 기억한다.
침대 오른쪽 바닥 아래에서 30센티 위치에는
언제 떨어졌는지도 모르는 머리카락이 수년째
그 자리를 지키고 있고, (마치 뿌리라도 내린
듯 조금씩 자라고 있는 착각마저 들 정도이다.)
다양한 종류의 과자 부스러기들도 방구석
한편에 타운 하우스처럼 옹기종기 모여있다.
가끔 개미들의 공격으로 집이 허물어져
버리기도 하지만 말이다.
수많은 물건들과, 음식물, 심지어 벌레들까지도
개체수를 계속 늘리는 바람에 안 그래도 작은
공간은 더욱 비좁아지고 있는 중이다.
누군가는 더럽고 너무 징그럽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애초에 다른 사람의 생각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이 모든 것들은 나의 애착인형처럼 항상 옆에 있어야 안심이 되고 심지어 없으면 불안하기까지
한 상태이다.
떼려야 뗄 수 없는 공생 관계라고나 할까?
냉기로 가득 찬 방에 작게나마 미세한 온기를
불어넣어 주고 있는 무척이나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들이다.
내 숨구멍과 닮아 보이는 이 작은 구멍의 발견은
살아있는 시체처럼 무기력한 내게 작은 활력과
생명을 불어넣어 주었다.
나는 구멍이 무척 흥미롭고 궁금했지만,
몸이 움직이질 않아 긴 시간 동안 멍하니 멀리서
지켜만 보다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인지 저녁인지 모를 시간에 겨우
눈을 뜬 나는 제일 먼저 구멍을 쳐다보았다.
어제보다 구멍이 더 커진 것만 같았다.
‘이게 무슨 일이지?’
변화라고는 찾을 수 없었던 다섯 평 작은방에
큰 변화가 생긴 것이다. 정말로 커진 것이 맞는지
확인이 필요한 순간이 왔다.
그러기 위해선 몸을 일으켜 세워야 하는데
이것은 나에겐 굉장히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뼈 밖에 안 남은 종잇장 같은 몸을 일으켜
세우는데 천근만근 이상의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니 최근엔 생리적 현상을 제외하고는
자발적으로 몸을 일으킨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 어떤 것도 나의 무거운 몸을 일으켜 세울
만한 의지를 주지 못했다.
밖에서 전쟁이 난다 한들 내 알바는 아니었다.
오히려 잘됐다 생각했을 거다. 바깥 보다
더 전쟁터 같은 내 방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긴
싫기 때문에 차라리 포탄이 내 방에 떨어져서
아무 흔적도 없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린다면
오히려 더 좋을 것만 같았다.
지금처럼 이렇게 혼자 살다 언젠가
독거청년으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면
그 뒤에 내게 벌어질 일들은 불 보듯 뻔했다.
각종 뉴스에는 공개를 허락하지 않은 내 방이
버젓이 공개고 있을 것이며, 화면 속 취재
기자는 심각한 표정과 말투로 이 사태의 원인과
대책에 대해 늘어놓고 있으리라.
그 와중에 카메라맨은 내가 마지막으로
발견된 자리를 찍다가 바퀴벌레 (내 소중한
친구 잭슨5세)를 발견하고는 극적 효과를 위해
클로즈업을 시도하여 더욱 비극적이고
혐오스럽게 보일 수 있도록 촬영했을 것이다.
그걸 본 사람들은 일면식도 없는 나를 향해
혀를 끌끌 차며 온갖 험담을 쏟아 내겠지?
“쯧쯧 젊은 사람이 어쩌다 저 지경까지
갔을까? ”
“어휴! 저기서 어떻게 사람이 살았대? ”
“어우 더러워”
“밥맛 떨어져”
“이해가 안 가”
상상만 해도 역겹다. 먹은 것도 없지만 구역질이
나오려고 한다. 물론 내 죽음을 동정해 주는
소수의 사람도 있겠지만 별로 관심 없다.
나는 그 누구에게도 동정과 비난을 바라지 않는다.
내 의지로 얼마 만에 침대에서 일어나는
건지 모르겠다.
“저 작은 구멍이 뭐라고 나를 일으켜 세우네”
혼잣말을 내뱉고는 혼신의 힘을 다해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고 나서 구멍을 향해 한발 한발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