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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랭 Apr 28. 2024

블랙홀

잭슨 5세 (2화)


“내가 지금 무엇을 본 거지? 잘 못 본건 아니지?”

긴 더듬이를 이용해 눈을 비빈 후 다시 한번

크게 눈을 뜨고 확인해 보았다.

잭슨 5세는  남자의 반짝이는 눈동자를 처음

보았다. 마치 다른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집주인 남자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를 통해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이미 상세하게 알고 있었다.


처음 이 집에 터를 잡은 잭슨 할아버지는

인간이라면 치를 떨던 분이셨다. 우리는 습성상

인간의 눈을 피해 밤에만 활동하고 바닥에 떨어진 지저분한 음식들 위주로 골라 먹으며 최대한 피해 안 끼치고 숨어 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인간들은 아무 이유 없이 우리를 혐오의 대상으로 생각한다. 우리랑 비슷한 수많은 곤충들이 존재하지만 유독 우리 종족에게만 가혹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모르겠다.

굳이  한 가지를 골라 본다면 번식력이 강한 것이 이유라면 이유일까? 그렇게 따지면 개미 또한 번식력이 강하고 무리 지어 다니는데 우리 만큼 혐오스럽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내 생각에는 우리를  돈벌이로 생각한 해충약 회사에서 우리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강하게 심어줬던 게 큰 요인이 아닐까 싶다. 주홍글씨처럼 한 번의 낙인으로 지금까지

혐오의 대상 일등 자리를 꾸준히 유지 중이다.


만약 지나가는 사람에게

“당신은 바퀴벌레를 좋아합니까? “

라고 묻는다면

백이면 백 질겁하는 목소리로 손사래를 치며 뒷걸음질 치면서 싫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렇다면 싫어하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신 적 있나요?”

“음..... 모르겠어요. 그냥 생각하기도 싫고 너무 징그럽고 그냥 싫어요.”


혐오하고 싫어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없으면서 무조건적으로 싫다고 반응하는 태도는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까? 마치 자기들이 지구의 주인인 것 마냥 행동하며 온갖 똑똑한 척은 다하면서 이런 모습을 볼 때면 인간이란 참 알 수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잭슨 할아버지는 인간으로부터 온갖 역경과 수모를 당하고, 죽을 고비도 몇 차례 넘겼지만 재빠른 발재간 덕분에 용케 살아남아 이 집에 정착했다고 한다. 처음 도착해서 며칠은 숨죽이며 구석에서 몸을 숨기고 있었다.


배가 고파 더 이상 참기 어려웠던 할아버지는 어두워지길 기다렸다 활동을 시작했다. 몇 걸음

안 움직였을 뿐인데 바닥은 먹을 것들로 가득했고

어떤 위험 요소도 느껴지지 않았다. 숨을 곳 또한 아주 많아서 위급 상황시에도 매우 유리한 최적의 환경이었다. 유토피아가 있다면 이곳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완벽한 곳이었다. 이런 호사가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경계를 늦추지는 않았다.


그때 작은 인기척 소리가 들렸다.

 놀란 잭슨 할아버지는 후다닥 발재간을 놀려 발 빠르게 빈 공간으로 숨어 들어갔다.

숨어서 소리 나는 곳을 지켜보았는데, 그곳엔 젊은 남자가 누워있었다.

분명 인기척 소리가 났으니 살아있다는 건데

마치 죽은 사람처럼 미동도 없이 가만히 누워서

아무것도 없는 천장만 응시하며 눈만 깜빡

거리고 있었다. 잠시 후 양쪽 눈에서 눈물이 흐르더니 틀어 놓은 수도꼭지 마냥  멈추지 않고 계속 흐르고 있었다. 남자는 눈물을 멈출 생각도 닦을 생각도 없어 보였다. 지켜보던 할아버지는 뭔가 단단히

고장 난 사람임을 직감했다.

사람이라면 치가 떨렸지만 뭔가 이 사람은

측은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렇게 일주일 넘게 같이 지내며 그 남자를 지켜보았는데 하루에 몇 번 일어나서 간단하게 음식을

먹거나 화장실을 가는 것 외에는 외출도 거의 하지 않은 채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 있거나 책상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비교적 일정한 행동패턴을 가지고 있다 보니 잭슨 할아버지는 경계심을 풀고 집안 구석구석을 마음껏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경계심이 너무 풀린 어느 날 침대 근처에 오징어 땅콩 과자가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잭슨 할아버지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홀린 듯 다가가 정신없이 먹고 있는데  갑자기

검은 물체가 할아버지 위로 덮쳤다.

“턱”

소리와 함께 할아버지가 있던 곳은 순간 암흑으로 변해 버렸다. 죽은 줄만 알았는데 아직  살아있음을 깨닫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놀랐던 마음을 진정시킬 새도 없이 이윽고 강한 빛이 보이더니 이 남자의 엄지와 검지 손가락 사이에 잡힌 채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재빠른 다리라 해도 공중에서는 아무 소용없었다. 버둥거려 봤자 힘만 들뿐이었다.


‘결국은 이렇게 인간의 손에 죽는구나 ‘


잭슨 할아버지의 6개월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잠시 후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그 남자의  반대쪽 검지 손가락이 내 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 진짜로 죽는구나 '


생각을 하며 눈을 질끈 감고 있었는데 검지 손가락이 내 머리를 눌러 터트리는 것이 아니라 쓰다듬어 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너무 당황스러웠다.


“귀여운 자식! 드디어 만나네! 일주일 동안 얼굴을

안 보여줘서 무척 궁금했었어. 검색해 보니 너희들이 오징어랑 땅콩 종류를 좋아한다고 하길래 일부러

옆에 두고 언제 오나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단다. “


남자가 말을 마쳤다.

잭슨은 이 남자가 소리 내어 말하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다정하고 상냥한  말투였다.

생각보다 이상한 사람은 아니구나 싶었는데,

이 남자의 행동을 보면 보통 사람들의  반응과 너무

다르기 때문에 이상한 게 맞다고 해야 하나

싶기도 했다.


몇 번 더 쓰다듬어 주고는


“또 보자! 잭슨“


이라는 말과 함께 침대 바닥에 살포시 내려주었다.

그 이후로 남자는 항상 침대 곁에  오징어 땅콩 과자 조각을 하나씩 꺼내 두었다.

졸지에 잭슨이라는 이름이 생긴 할아버지는  매일 맛있는 음식과 더불어 사랑까지  듬뿍 받으며 평화롭고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이후 이곳에서 할머니를 만나 결혼도 하고 바퀴의 평균 수명을 훨씬 뛰어넘는 15개월이라는 생을 살다 가셨다. 다만 유전적 결함 때문인지  번식력은 너무 약해서 겨우 겨우 후손을 유지했다.


그렇게 이 전설 같은 이야기는 페로몬을 통해 대대로 전해져 내려왔다. 먹을 것이  넘쳐나고, 우리를 반려충으로 생각하며 사랑을 듬뿍 주는 사람이 살고 있는  환상적인 이곳에 대한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때랑 지금의 실상은 많이 달라졌다.

이 남자는 예전보다 의지도 사라지고 더 먹지도 움직이지도 않고 겨우 숨만 붙어있는 상태이다. 오늘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상황에서도  항상 잊지 않고 오징어 땅콩은 꼭 챙겨주었다.

만약 이 남자가 죽는다면 우리도 유토피아 같은

이 공간을 버리고 떠나야 할 것이다.

이래 저래 참 슬픈 미래가 예상되다 보니 마음이

심란해진다.


그런데  오늘 이 남자의 반짝이는 눈을 보았다.

반짝이는 그의 눈동자는  방구석 작은

구멍을 향해있었다.

나도 남자 옆에서 오징어 땅콩 과자를 먹으며 같이 구멍을 지켜보았다. 남자는 하루종일 구멍만 쳐다보다 잠이 들었다.

다음날 남자는 큰 결심을 한 듯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구멍을 향해 힘겹게 한발 한발 다가갔다.

나의 암울했던 미래에 한줄기 빛이 들어오는

것 같았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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