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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랭 Apr 27. 2024

블랙홀

구멍(1화)


끔뻑끔뻑


초점 없는 눈이 허공을 향해 천천히

감았다 떴다를 반복하고 있다.

의미 없어 보이는 평범한 행동 같아 보여도

이것은 내가 아직까지는 살아있다고 알려주는

아주 중요한 신호이다.

뭐 엄밀하게 따지고 보면 지금의 나는 육체만 겨우

살아 있지 정신은 진작에 죽은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과연 큰 의미가 있는 중요한 일일까 싶기도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모스 부호처럼 미약하지만 꾸준하게

신호를 보내 주고 있다.


과거엔 총기로 가득 차 있던 눈동자였지만

지금은 총기가 있었던 눈이라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 상태이다.

썩은 동태 눈깔에 비유하기에도 아깝다. 오히려 썩은 동태눈을 반짝반짝 돋보이게 해 줄 수준이다.

그렇다면 뭐에 비유해야  가장 비슷할까?

좀비? 아니지 좀비에 대한 선입견이 있어서 그렇지

생각해 보니 좀비처럼 강렬하고 총기로 가득한

죽었지만 살아있는 눈동자는 본 적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비교 대상 자체가 없는 것 같다.


깜빡거리는 거 외에 다른 기능은 하고 있지 않던

흐리멍덩한 내 눈동자가 갑자기 반짝거렸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생기다.

이상한 전율이 온몸에 흘렀다.

이윽고 눈동자의 초점이 방 한 구석 작은 구멍을 향했다.


‘언제 생긴 거지? 못 보던 구멍인데?’


방이라고 해봤자 코딱지 만해서 5평 남짓에

불과했지만 50평을 꽉 채우고도 남을 만한

물건들로 집안 곳곳 가득 채워져 있었다.

어지럽게 대충 널브러져 있는 것 같아 보여도

나름 규칙이 있고 또한 체계적으로 정리해 둔

것이다. 어떤 물건이 어디 있는지 찾아보라고

한다면 단숨에 찾을 수 있을 정도로 물건의

위치 하나하나 다 기억하고 있다.

뇌의 총기는 아직 유효한 모양이다.

심지어 떨어진 머리카락의 위치까지 기억한다.

침대 오른쪽 바닥 아래에서 30센티 위치에는

언제 떨어졌는지도 모르는 머리카락이 수년째

그 자리를 지키고 있고, (마치 뿌리라도 내린

듯 조금씩 자라고 있는 착각마저 들 정도이다.)

다양한 종류의 과자 부스러기들도 방구석

한편에 타운 하우스처럼 옹기종기 모여있다.

가끔 개미들의 공격으로 집이 허물어져

버리기도 하지만 말이다.


수많은 물건들과, 음식물, 심지어 벌레들까지도

개체수를 계속 늘리는 바람에 안 그래도 작은

공간은 더욱 비좁아지고 있는 중이다.


누군가는 더럽고 너무 징그럽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애초에 다른 사람의 생각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이 모든 것들은 나의 애착인형처럼 항상 옆에 있어야 안심이 되고 심지어 없으면 불안하기까지

한 상태이다.

떼려야 뗄 수 없는 공생 관계라고나 할까?

냉기로 가득 찬 방에 작게나마 미세한 온기를

불어넣어 주고 있는 무척이나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들이다.


내 숨구멍과 닮아 보이는 이 작은 구멍의 발견은

살아있는 시체처럼 무기력한 내게 작은 활력과

생명을 불어넣어 주었다.

나는 구멍이 무척 흥미롭고 궁금했지만,

몸이 움직이질 않아 긴 시간 동안 멍하니 멀리서

지켜만 보다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인지 저녁인지 모를 시간에 겨우

눈을 뜬 나는 제일 먼저 구멍을 쳐다보았다.

어제보다 구멍이 더 커진 것만 같았다.


‘이게 무슨 일이지?’


변화라고는 찾을 수 없었던 다섯 평 작은방에

큰 변화가 생긴 것이다. 정말로 커진 것이 맞는지

확인이 필요한 순간이 왔다.

그러기 위해선 몸을 일으켜 세워야 하는데

이것은 나에겐 굉장히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뼈 밖에 안 남은 종잇장 같은 몸을 일으켜

세우는데 천근만근 이상의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니 최근엔 생리적 현상을 제외하고는

자발적으로 몸을 일으킨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 어떤 것도 나의 무거운 몸을 일으켜 세울

만한 의지를 주지 못했다.

밖에서 전쟁이 난다 한들 내 알바는 아니었다.

오히려 잘됐다 생각했을 거다. 바깥 보다

더 전쟁터 같은 내 방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긴

싫기 때문에 차라리 포탄이 내 방에 떨어져서

아무 흔적도 없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린다면

오히려 더 좋을 것만 같았다.


지금처럼 이렇게 혼자 살다 언젠가

독거청년으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면

그 뒤에 내게 벌어질 일들은 불 보듯 뻔했다.

각종 뉴스에는 공개를 허락하지 않은 내 방이

버젓이 공개고 있을 것이며, 화면 속 취재

기자는 심각한 표정과 말투로 이 사태의 원인과

대책에 대해 늘어놓고 있으리라.

그 와중에 카메라맨은 내가 마지막으로

발견된 자리를 찍다가 바퀴벌레 (내 소중한

친구 잭슨5세)를 발견하고는 극적 효과를 위해

클로즈업을 시도하여 더욱 비극적이고

혐오스럽게 보일 수 있도록 촬영했을 것이다.

그걸 본 사람들은 일면식도 없는 나를 향해

혀를 끌끌 차며 온갖 험담을 쏟아 내겠지?


“쯧쯧 젊은 사람이 어쩌다 저 지경까지

갔을까? ”

“어휴! 저기서 어떻게 사람이 살았대? ”

“어우 더러워”

“밥맛 떨어져”

“이해가 안 가”


상상만 해도 역겹다. 먹은 것도 없지만 구역질이

나오려고 한다. 물론 내 죽음을 동정해 주는

소수의 사람도 있겠지만 별로 관심 없다.

나는 그 누구에게도 동정과 비난을 바라지 않는다.


내 의지로 얼마 만에 침대에서 일어나는

건지 모르겠다.

“저 작은 구멍이 뭐라고 나를 일으켜 세우네”

혼잣말을 내뱉고는 혼신의 힘을 다해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고 나서 구멍을 향해 한발 한발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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