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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rlotte Feb 23. 2023

다시금

오랜만에 다시 키보드 앞에 앉았다. 그동안 글을 쓸 생각이 아예 없던 것은 아니었는데 풀어낼 이야기들이 마땅치 않았다. 무언가 잠시 마음에 머물다 가는 것 같아 끄적여보면 억지스러운 말들이 많아 그냥 덮어버렸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때와 다른 건 딱히 없지만 억지로 키보드를 붙들고 놓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다.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을 갖고 싶어서. 그동안 글을 써 내려갔던 주제들이 다양한 것 같아 보였지만 나로부터 시작된 것들이라, 의도했던 건 아니지만 많은 위로가 됐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내 마음을 돌보지 못했던 시간이 벌써 돌이켜보니 반년이 훌쩍 넘어 과도기가 왔나 싶기도 하고, 오늘 같은 시간이 간절한 이유가 그것 때문만이 아닌 것 같기도 한 요즘. 내 머릿속을 떠다니는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수십 번 고민하다 찾은 위스키바에서 한숨을 돌리고 있으니, 여기에서 정리하고 싶었던 많은 것들이 생각조차 제대로 나지 않았다.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해, 지금 이 순간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려 하는지가 중요하지.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면서 오랫동안 나를 짓눌러왔던 근육통이 거짓말처럼 사라져 갔다. 나는 왜 이렇게 어렵게 살아가는 건지, 나도 항상 궁금하다, 한숨이 나오기도 하고. 어떨 때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다가도, 이렇게 나를 내가 짓누를 때면 감당이 되지 않아 숨 쉬는 방법조차 모르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엔 상담을 받기 시작했는데 예전에 들었던 멘트와 거의 같은 말을 들어서 헛웃음이 났다. 왜 이렇게 열심히, 치열하게 사냐고. 나는 그냥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살고 싶을 뿐인데, 그 말을 듣고 나니까 정말 나도 궁금해졌다. 내가 왜 이렇게 사는지. 그렇게 잠도 제대로 들지 못하는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어제, 제대로 마주하기 힘든 여러 모습들을 떠올리면서 정리를 하고 나니까 조금은 편안해졌다. 처음이었다.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고, 내 감정에 충실해서 표현했던 경험은. 가까운 사람들이 상처받을까 나보다 그들을 더 걱정하며 살았는데 더 이상 그렇게 할 수 없는 상태였고, 그러고 싶지 않았다. 모두에게 좋을 게 없다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에.


성숙해지고 싶어 하는 만큼 아직 온전한 내가 되지 않았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생각하지 못한 사건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알게 된 터라, 꽤나 당황하고 좌절했다. 이런 감정을 느끼는 나 자신이 싫었고,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해결하고 싶어 몇 날 며칠을 고민했던 끝에는 솔직해지는 게 최선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한 번은, 죽기 전에 살면서 한 번은 솔직해져야 내가 유일하게 내 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편안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언가에 쫓기지 않고 온전하게 내가 두 발로 서있을 수 있는 순간을 기대할 수 있을 것도 같았고. 아직도 어떻게 해야 할지 잘은 모르겠지만, 어설프게 한발 내 안에서 나를 깨고 나온 것만으로도 일단은 잘했다고, 괜찮을 거라고 다독여주고 싶은 오늘. 한 숨 놓을 수 있는 곳을 찾은 것 같아 더 마음이 놓인다. 귀찮은 나를 물리치고 발걸음을 내디딘 나에게 한번 더 칭찬을 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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