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이상했고 미국에서는 평범했다
나는 유행에 서툰 사람이 아니라, 유행이라는 것에 구조적으로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에 가깝다. 누군가는 그것을 감각이 부족하다고 말했고, 누군가는 시대에 느리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그것이 감각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살아온 사회의 방식과 맞지 않았을 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유행을 몰라서 소외된 것이 아니라, 애초에 유행이라는 게임의 규칙에 공감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한국에서 사람들은 유행을 알아야 세련되고, 유행을 따라야 뒤처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늘 궁금했다. 왜 지금 이 옷이어야 하는지, 왜 이 드라마여야 하는지, 왜 이 음악이어야 하는지. 이유 없이 끌리는 감정은 있되, 이유 없이 따라야 할 이유는 도무지 발견하지 못했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유행을 타지 않는 스타일이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보다, 사람들이 왜 그것을 좋아하는지를 더 궁금해했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유행하던 옷, 게임, 콘텐츠는 늘 친구들 사이에서 하나의 통과의례처럼 돌아다녔다. 참여하지 않으면 대화에서 빠지고, 빠지면 자연스럽게 외곽으로 밀려났다. 다들 같은 브랜드를 입고, 같은 게임을 하고, 같은 프로그램을 이야기하며 소속감을 확인했다. 그런데 나는 그 흐름 속으로 들어가지 못했다기보다,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 자체가 잘 들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주류라 불리는 것들에 대해 막연한 반감을 가졌고, 그 반감은 나이를 먹으며 점점 체계적인 불신으로 바뀌었다. 다수가 선택한 것에는 다수가 선택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기보다, 다수이기 때문에 선택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유행은 개인의 취향이 아니라 사회의 압력 같았다. 취향이라기보다는 동기화에 가까웠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항상 편한 트레이닝복만 입은 이유도, 멋을 포기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의류가 개인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사회 분위기가 유치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옷이 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옷을 입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옷은 단순한 천 조각이 아니다. 옷은 말이 되고, 신분증이 되고, 자기소개서가 된다. 어떤 브랜드냐, 어떤 스타일이냐에 따라 성격이 추정되고, 사회적 위치가 가늠된다.
겉보기에 자유롭게 보이는 패션조차 실은 매우 정교한 규범으로 움직인다. 유행을 따른다는 것은 선택의 자유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집단이 허용한 선택지 안에서만 움직이는 일이다. 나는 그 좁은 선택지 안에서 나를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옷을 입고 싶었다.
학창시절에 친구들이 PC방에 갈 때 나는 도서관에 갔다. 이유는 단순했다. 사람들의 관심이 한곳에 몰릴 때, 그곳에는 대개 오래가지 않는 열기가 있었다. 반면 책장 안에는 수십 년, 수백 년을 버텨온 생각들이 조용히 눕거나 서 있었다. 나는 단기적인 흥분보다, 오래 남는 질문에 더 끌렸다.
사람들이 게임의 공략을 이야기할 때, 나는 인간의 공략서를 읽고 있었다. 세상에 정답은 없지만, 질문은 오래 남는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았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시간은 심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세상이 조금씩 열리는 기분이었다. 조용히 있지만 고립되지 않고, 혼자 있지만 비어 있지는 않은 시간이었다.
음악 취향조차 나는 늘 단체 버스를 타지 않았다. 친구들이 한국 가요를 이야기할 때 나는 미국 팝을 들었고, 일본 팝을 들었다. 새로움을 추구했다기보다, 익숙함을 강요받는 느낌이 싫었을 뿐이다. 지금 돌아보면 나의 취향이 독특했다기보다, 나는 집단의 중심선을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었던 것 같다. 혼자서 옆길을 걷는 사람이었다.
이런 성향 덕분에 한국 사회에서 나는 종종 특이하다, 이상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개성이라는 말로 포장되었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뉘앙스가 들어 있었다. 너는 다르다, 그래서 낯설다, 그래서 어쩌면 위험하다. 튀는 사람이라는 말은 칭찬처럼 들리지만 대부분 경계다. 사회는 조용한 이단자를 유머로 포장하면서도, 결코 안쪽으로 들이지는 않는다.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 내 선택은 특히 이해받기 어려웠다. 대학 시절과 군대 시절, 나는 종종 혹시 종교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술을 거부하는 사람은 독실한 신앙인일 것이라는 공식 같은 것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무종교였다. 그냥 술이 맛없었고, 담배가 궁금하지 않았다. 그게 전부였다.
나를 만나는 친구들은 내가 술을 마시지 않기에 자연스럽게 술을 마시지 않는다. 우리는 밥을 먹고 카페에 간다. 커피를 마시며 두세 시간 이야기한다. 걸으며 또 이야기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 시간이 지루할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그 시간이 가장 진하다. 인생은 늘 술기운이 아니라 맨정신에서도 충분히 흥미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종종 이런 말을 들었다.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이 질문은 정말 흥미롭다. 무엇으로 재미를 규정하는가, 왜 모두 비슷한 재미여야 하는가. 재미가 있어야 삶 같다는 생각은 어느 순간 의무처럼 굳어져 있다. 다들 즐기는 방식이 같아야 안심한다. 다르다는 것은 모험이 아니라 위험이 된다.
삼십 년 가까이 한국에서 나는 특이하다는 말을 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 말은 내 이름처럼 친숙해졌다. 성격처럼 붙어 다녔다. 덕분에 나는 조금 일찍 사회 밖의 공기를 맡았는지도 모른다. 중심에 선 사람보다, 가장자리에서 세상을 더 많이 보게 되었으니까.
한국 사회는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사회라기보다, 집단의 리듬에 얼마나 잘 동기화되는지를 평가하는 사회다. 조용한 사람은 사려 깊은 사람이 아니라, 존재감 없는 사람이 된다. 유행을 모르는 사람은 개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 사회성이 결핍된 사람처럼 취급된다.
나는 그렇게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사회의 중심에서 멀어졌다. 선택된 아웃사이더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배치된 주변인이 되어갔다.
그리고 훗날에야 알게 되었다. 나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었다. 단지 이 사회의 템포와 다른 호흡으로 살아가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 글은, 그 느린 호흡으로 살아온 한 사람의 기록이다.
미국에 도착한 뒤 가장 먼저 체감한 변화는 언어도 아니고 음식도 아니었다. 그것은 훨씬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다가왔다. 이곳에서는 아무도 나를 평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생각보다 낯설고, 때로는 두려운 감각이었다. 우리는 대개 평가가 불편하다고 말하지만, 사실 평가는 우리가 사회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누군가 나를 보고 말할 때, 나는 이 세계에 발 딛고 서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데 뉴욕에서는 아무도 나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말은 건넸지만 판단은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내 전공이나 직업을 묻고,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묻고, 어떤 음식을 좋아하느냐를 묻는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그 다음 문장은 오지 않았다. 한국에서라면 자연스럽게 따라붙었을 질문들이 있었다. "그러면 나이는요? 결혼은 하셨어요? 왜 그런 선택을 하셨어요? 보통은 그렇게 안 하던데요?..." 미국에서는 그런 질문이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누군가 내 생각을 듣고도 고개를 끄덕일 뿐, 평가를 덧붙이지 않았다. 너는 왜 그렇게 살아 같은 문장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 언어처럼 느껴졌다.
누군가의 시선이 나를 재단하지 않고, 내가 무엇을 입었는지 무엇을 먹는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즉각적인 해석을 내려놓지 않는 사회. 그 정적에 가까운 태도는 처음에는 이상할 정도로 낯설었다. 시간이 흐르며 나는 그것이 무심이 아니라 존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국 사회에서는 사람은 언제나 관찰 대상에 가깝다. 말과 행동이 의도하지 않아도 해석되고, 복장은 취향이 아니라 신호로 읽힌다. 어떤 옷을 입었느냐는 취향이 아니라 사회적 위치에 대한 암시가 되고, 어떤 말을 하느냐는 성격이 아니라 정치처럼 해석된다. 그러다 보니 인간은 늘 자신을 설명할 준비를 하고 살아간다. 설명할 때마다 조금씩 깎이고 정리되어, 마침내 타인에게 보기 좋은 모양으로 다듬어진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그런 수고가 거의 필요 없었다. 사람들은 내가 어디서 왔는지를 묻고, 무엇을 하는지를 묻고,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를 묻는다. 그러나 그 질문에는 한국에서 흔히 따라붙는 평가의 말줄임표가 없다. 그저 정보는 정보로 남고, 해석은 유보된다. 대화는 호기심으로 끝나고, 조언이나 기준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처음에는 그 점이 서운하게 느껴졌다. 관심의 부재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에게 충고해주지 않는다는 것이, 대화를 가볍게 끝낸다는 것이, 관계를 얕게 만드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은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선을 지키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타인의 삶에는 들어가지 않는 것이 예의이며, 타인의 선택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는 것이 존중이라는 태도. 프라이버시는 권리가 아니라 문화처럼 작동하고 있었고, 오히려 그것이 사람들 사이에 단단한 완충 지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미국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느 주말 맨해튼의 거리를 걷던 날이 있었다. 뉴욕 특유의 빠른 걸음과 다국적 언어들이 공기처럼 섞여 흐르던 시간이었다. 수많은 얼굴들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고, 나는 그저 배경이 되는 사람이 된 느낌으로 도시를 걷고 있었다. 그때 시선 한편에 강렬한 색채가 들어왔다.
체격이 크고 근육질인 흑인 남자가 빨간 미니스커트를 입고 빨간 하이힐을 신은 채 화장을 진하게 하고 빨간색 여성 핸드백을 들고 걷고 있었다. 그 모습은 분명 눈에 띄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가 아니라 그를 보지 않는 사람들이 더 인상적이었다. 그는 거리에 존재하고 있었지만, 사건이 아니었다. 누구도 그를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았고, 누구도 휴대폰을 들어올리지 않았으며, 누구도 웃거나 수군거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각자의 갈 길을 갔다.
그 장면 앞에서 나는 잠시 멈춰 서 있었다. 그가 아니라, 이 도시가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이었다면 어땠을까. 그 장면은 곧바로 사진으로 찍혔을 것이고, 온라인에 올라갔을 것이며, 댓글이 달렸을 것이고, 평가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를 개인이 아니라 콘텐츠로 소비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는 그가 그저 한 사람일 뿐이었다. 조금 다를 뿐, 이상하지 않은 사람. 다름이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 세계. 그것은 내가 알던 사회의 문법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거리에서 사람들의 얼굴을 유심히 보기 시작했다. 성별이 단번에 구분되지 않는 사람들, 만화 캐릭터처럼 코스프레로 꾸민 사람들, 머리색이 무지개처럼 겹친 사람들, 패션의 규칙을 철저히 무시한 듯한 사람들. 이 모든 존재가 하나의 풍경으로 녹아 있었다. 누구 하나 튀지 않았다. 튄다는 개념 자체가 무의미해 보였다.
나는 그제야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는 정상이라는 단어가 굳이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기준이 하나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기준도 중심에 놓이지 않으니, 누구도 가장자리에 밀려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다름이 곧 설명해야 할 대상이 된다. 왜 그렇게 입었느냐,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왜 그렇게 사느냐. 질문은 궁금증처럼 시작되지만, 곧 성적표처럼 바뀐다. 그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이상한 사람, 답하더라도 일반적이지 않은 사람으로 분류된다.
반면 미국에서는 그런 질문이 거의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질문은 있지만, 대답에 대한 평가가 없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사람은 평가받을 때 스스로를 방어하게 되고, 방어하는 삶은 자연스럽게 위축된다. 그러나 평가받지 않을 때, 사람은 비로소 있는 그대로 존재할 수 있다.
한국에 있을 때 나는 나름대로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나는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훈련되어 있었을 뿐이었다. 사회가 요구하는 평균값 안에서 조금 좌우로 흔들릴 뿐, 그 밖으로 벗어난 적은 없었다. 그리고 그 바깥에 어떤 공기가 있는지도 몰랐다.
미국이라는 이 공간은, 내가 숨 쉬는 방식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려준 장소였다. 항상 준비된 얼굴로 살아가지 않아도 되었고, 방어적인 태도를 유지하지 않아도 되었고, 나를 해명하지 않아도 큰일이 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 도시는 나에게 말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대신 그대로 있으라고 말했다. 있는 그대로 존재해도 된다고,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나를 축소하거나 확대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조용히 말해주었다.
자유는 늘 거창한 단어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아주 사소한 상태다. 말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 변명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 변형되지 않아도 되는 상태. 이것이 자유의 실감이었다.
나는 뉴욕에서 내 어깨에 얹혀 있던 보이지 않는 무게를 조금씩 내려놓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그제서야 깨달았다. 나는 늘 무거운 짐을 지고 살고 있었음을. 한국이라는 사회는 그 짐을 벗겨주는 대신, 더 단단히 묶는 구조였음을.
이 도시는 나에게 새로운 언어를 가르쳐주지 않았다. 대신 침묵을 가르쳤다. 그리고 그 침묵은 고요가 아니라, 존중이라는 것을 나는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나는 지금도 트레이닝복을 입고 뉴욕의 길거리를 돌아다닌다. 맛집 탐방보다는 역사와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곳을 탐방하는 것을 사랑하며, 친구들과 술을 마시지 않고 산책하며 수다 떠는 것을 즐겨하며, 남 이야기보다 내 이야기를 더 많이 한다. 이 문장은 한국에서라면 꽤 많은 설명을 요구하는 문장이다. 왜 그렇게 사느냐, 왜 남들처럼 안 하느냐, 언제까지 그러고 살 거냐는 질문들이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이 문장 뒤에 아무것도 붙지 않는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고, 질문하지도 않으며, 평가하지도 않는다. 누군가 나에게 술을 왜 안 마시냐고 묻는 대신,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를 묻는다. 담배를 안 피운다는 사실이 나의 성격을 설명하는 단서가 아니라, 그냥 하나의 습관에 불과하다는 태도다.
달라진 것은 내가 아니다. 세상도 아니다. 달라진 것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한국에서 나의 선택은 늘 ‘사유’를 요구했다. 설명되지 않으면 오해가 되었고, 오해가 쌓이면 이상한 사람이 되었다. 왜 단체 생활을 피하느냐. 왜 유행을 모른 척하느냐. 왜 사람 많은 걸 싫어하느냐. 나는 언제부터인가 나를 이해시키는 일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아무도 나를 해석하려 들지 않는다. 궁금할 수는 있지만, 판단하지 않는다. 여기서 나는 ‘설명 가능한 인간’이 아니라 그냥 ‘존재하는 인간’이 된다. 그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한국 사회에서 유행은 취향이 아니라 언어다. 유행을 모른다는 것은 요즘 언어를 못 알아듣는다는 뜻이고, 대화에 끼지 못한다는 뜻이며, 사회적 리듬에서 이탈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유행에 적응하지 못하면 어른이 아니라 도태자가 된다. 남들이 다 아는 걸 모르면 뒤처진 사람이 되고, 다들 가는 방향과 다르게 가면 문제가 있는 사람이 된다.
한국 사회에서 ‘다름’은 종종 개성보다는 위험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유행과 무관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그냥 사람일 뿐이다. 최신 아이폰이 없다고 해서 뒤처진 사람이 되지 않는다. 요즘 드라마를 안 본다고 해서 고립되지 않는다. 유행어를 모른다고 해서 늙은 사람이 되지 않는다. 그 사람은 그냥 요즘 그거에 관심이 없는 사람일 뿐이다. 그리고 그 문장은 비난이 아니라 정확한 설명이다.
이 차이가 나를 자유롭게 만들었다. 나는 더 이상 사회에 나를 맞추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다는 감각을 처음으로 배웠다. 겨우 옷 하나, 겨우 취미 하나, 겨우 관심사 하나가 사람의 자격을 가르지 않는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깊은 안정감을 준다.
나는 이제 유행을 거부하는 사람이 아니다. 유행을 인생의 기준으로 삼지 않는 사람일 뿐이다. 이 둘은 전혀 다르다. 유행을 거부하는 사람은 유행을 중심에 둔다. 하지만 유행을 기준으로 삼지 않는 사람은 애초에 중심에 두지 않는다. 나는 더 이상 유행을 따라갈까 말까를 고민하지 않는다. 그것이 내 삶에 필요한가만 생각한다. 그래서 때때로 나는 여전히 트레이닝복을 입고 그대로 하루를 살아간다. 그리고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
누군가 나를 정의하지 않고, 해석하지 않고, 조언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관심이 아니다. 존중이다. 미국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자유가 아니라 침묵이다. 판단하지 않는 침묵, 간섭하지 않는 침묵, 설명 요구가 없는 침묵.
그 침묵 속에서 나는 나 자신에게 처음으로 조용해질 수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더 특별해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편안해졌다. 아마 그 이유는 이곳에서는 사람이 증명할 대상이 아니라 전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 전제 위에서 비로소 숨을 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