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만 내고 혜택은 제로: 미국 세금 체험기
미국에서 일을 처음 시작하고, 두 주마다 받는 주급을 손에 쥐었을 때, 나는 묘한 흥분과 함께 낯선 만족감을 느꼈다. 한국에서는 월급날 아침마다 알람을 확인하며 ‘오늘은 과연 통장에 얼마 찍힐까’ 기대하던 일상이 있었다. 매달 30일마다 돌아오는 월급날의 설렘도 나름의 재미였지만, 미국에서 경험한 주급의 쪼개진 긴장감과 즉각적 보상감은 완전히 달랐다. 두 주 동안 쌓인 내 노동의 결과가 바로 눈앞의 계좌에 찍히는 순간, 나는 작은 승리감을 느꼈다. 금액이 크지 않아도, 기다림의 즐거움과 성취감은 월급날 아침의 그것보다 훨씬 실감났다. 내 손에 직접 들어오는 돈이 눈에 보이니, ‘노동과 보상의 직결’이라는 생생한 현실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쾌감 뒤에는 곧 현실적인 장벽이 도사리고 있었다. 나는 H1B 비자(전문직 취업 비자)로 미국에 들어와 있었고, 영주권 스폰서를 제공하는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이 조건은 겉보기에는 안정적이었지만, 직급에서 정해진 최저 연봉을 받아서 내가 생각했던 연봉보다는 낮게 책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미국이라는 새로운 사회와 경제 시스템 안에서, 나는 곧바로 ‘외부인으로서의 삶’을 경험하게 된 셈이었다.
2013년, 처음 받은 2주치 급여는 세금을 다 제하고 약 2천 달러였다. 세전 연봉으로는 약 7만 달러였지만, 세금으로 약 2만 달러가 빠져나간 후 손에 쥔 실질 수령액은 약 5만 달러였다. 계산만 보면 충분해 보이는 금액이었지만, 나는 이 돈이 내 삶에서 실제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곱씹게 되었다.
미국의 세금 구조는 단순하지 않았다. 연방 세금, 주 세금, 시 세금, 그리고 FICA라 불리는 사회보장세까지. 세금은 내 노동의 산물을 여러 갈래로 쪼개어 가져갔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세금이라는 것은 단순히 돈이 빠져나가는 문제가 아니라, 삶과 사회, 권리와 책임, 미래와 현재를 연결하는 사회적 계약이라는 사실을.
그 순간, 한국에서의 삶이 떠올랐다. 한국에서는 세금을 내면 그 대가로 의료보험, 국민연금, 고용보험 같은 최소한의 안전망을 누릴 수 있었다. 출석률을 채우면 교육비를 환급받기도 했고, 문화·체육·공공시설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다. 세금은 단순 비용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혜택과 안전망을 만들어주는 사회적 투자였다. 반면, 미국에서는 내가 낸 세금이 단 한 푼도 당장 내 생활에서 보상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점이, 그 당시 싱글의 내 눈에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동시에 미국 생활은 또 다른 인문학적 체험이기도 했다. 세금을 내고도 체감 혜택이 없는 현실은, 내 개인과 사회, 정책과 삶이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 사색하게 만들었다. 두 도시, 두 사회, 두 체계 속에서 살아가는 경험은, 노동과 보상, 권리와 책임, 그리고 삶과 사회의 관계를 몸으로 배우는 인문학적 실험과 같았다.
한국에서는 세금을 내면 끝이었다. 국세청에 신고하고 지방소득세까지 자동으로 처리되니, 내 소득에서 공제되는 금액은 하나의 통로를 통해서만 빠져나갔다. 그런데 미국은 달랐다. 연방정부, 주정부, 시정부까지 세금을 각각 내야 했고, 여기에 Social Security와 Medicare를 포함한 FICA 세금까지 별도로 공제된다. 처음 이 구조를 마주했을 때, 나는 혼자 농담처럼 중얼거렸다. “내 통장이 삼등분돼 세금으로 사라지고 있군.”
내 연봉 중 약 7.65%는 Social Security와 Medicare로, 약 15%는 연방 소득세로, 약 6%는 뉴욕주 소득세로, 또 약 3.9%는 뉴욕시 도시세로 빠져나갔다. 단순 계산만 해도 2만 달러 가까이가 세금으로 나가는 구조였다. 손에 쥔 실수령액을 계산하며, 나는 ‘노동의 결실’이 이렇게 여러 갈래로 흩어질 수 있다는 사실에 잠시 멍해졌다.
2013년 당시 뉴욕의 평균 연봉은 약 8만 달러, 중위 연봉은 약 5만 달러였다. 내 연봉 7만 달러는 중위보다 조금 높았지만, 체감 혜택은 거의 없었다. Social Security와 Medicare는 장기적으로, 나이가 들어야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제도였고, 주·시 세금으로 지원받는 공공서비스나 문화 혜택도 내 생활 속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았다. 세금을 내면서도 삶이 실제로 나에게 돌아오지 않는다는 묘한 허전함이 남았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미국의 세금은 단순한 금전적 부담이 아니라, 사회적 계약과 미래에 대한 투자라는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당장 내 눈앞의 삶에서, 세금이 내 통장을 삼등분해 사라지는 느낌은 유머러스하면서도 씁쓸했다. 한국에서는 같은 금액을 내면 의료보험, 국민연금, 교육·문화 혜택 등 눈에 보이는 혜택이 따라왔던 경험과 비교하면, 미국의 세금 구조는 마치 보이지 않는 늪 속으로 돈이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 삼중 구조의 세금은 단순 계산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세금을 내고도 체감 혜택이 없는 경험은, 내가 개인으로서 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노동과 보상, 권리와 책임이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뉴욕이라는 도시에서, 세금과 내 월급, 그리고 내가 체감하는 삶의 간극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일은, 단순한 경제적 계산을 넘어선 삶의 사회학적 실험이자, 인문학적 성찰의 시작이었다.
한국에서 세금을 내는 경험은 단순한 ‘돈을 내는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내 삶과 가족, 그리고 미래를 안전하게 연결해주는 보이지 않는 사회적 계약과 같았다. 건강보험을 통해 병원비 부담이 크게 줄어드는 것은 눈으로 체감할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혜택이었다. 국민연금은 단순히 은퇴 후 연금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나 사망 시 가족에게 급여를 돌려주어 삶의 안전망 역할을 한다. 게다가 고용보험은 실직이라는 삶의 위기 앞에서도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해 주었다.
일상 속에서 혜택은 더 다양했다. 도서관, 박물관, 공공체육시설 등은 무료 혹은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었고, 정부는 평생교육이나 어학원 출석률에 따라 교육비를 환급해 주었다. 나 역시 한국에서 직장을 다니며 영어와 일본어 수업에 출석해 학원비의 대부분을 돌려받은 경험이 있었고, 헬스장도 시에서 운영하는 곳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했다. 세금을 낸다는 것은 단순히 비용을 지불하는 행위가 아니라, 생활의 안전망을 확장하고 나의 미래에 투자하는 일이었다. 세금과 복지는 현실 속에서 직접 연결되어 있었고, 그 결과 나는 안정감과 예측 가능성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사정이 사뭇 달랐다. 싱글인 내가 체감할 수 있는 혜택은 거의 없었다. 특히 의료보험 문제는 단연 심각했다. 내가 일하던 병원은 큰 병원이 아니다보니 사설 의료보험을 지원하지 않았고, 개인적으로 보험에 가입하려면 최소 월 700달러, 한국 돈으로 약 100만 원을 내야 했다. 한국에서는 거의 비용 부담 없이 누리던 기본적인 의료 혜택을 위해, 나는 매달 월급의 상당 부분을 개인적으로 지불해야 했다.
결국 나는 보험 없이 살아야 했다. 감기나 단순 병원 방문조차도 ‘참거나 운에 맡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픈 날에도 병원을 쉽게 갈 수 없다는 현실은 단순히 불편함을 넘어, 삶에 대한 불안감으로 이어졌다. 세금은 내지만, 내 생활 속에서 바로 혜택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경제적 비용과 체감 효용의 간극이 너무 컸다.
한국과 미국의 이 차이는 단순히 제도적 차이를 넘어, 사회가 개인에게 어떤 신뢰와 안전망을 제공하는지, 그리고 개인이 자신의 삶을 얼마나 예측 가능하게 계획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한국에서는 세금을 내는 순간, 나의 현재와 미래는 어느 정도 보장되었지만, 미국에서는 세금을 낸다는 사실만으로는 내 삶에 직접적인 안전망이 연결되지 않았다. 이는 단순한 금전적 차이를 넘어, 개인과 사회, 권리와 책임의 구조적 관계를 체감하게 만드는 경험이었다.
세금을 내면서도 체감되는 혜택이 거의 없는 경험은 단순히 개인적 불편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곧 사회적, 정치적 감각으로 이어졌다. 미국의 젊은 층, 특히 중산층과 싱글 세대는 일상 속에서 ‘세금은 내지만 내 삶에 돌아오는 혜택은 거의 없다’는 경험을 반복하며 잠재적 불만을 쌓아갔다.
이 잠재적 불만이 정치적 행동으로 가시화된 대표적 사례가 바로 버니 샌더스였다. 2015년과 2019년, 그는 “Medicare for All”, “Tuition-free College”, “Green New Deal”과 같은 정책을 내세우며 젊은 층과 중산층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의료보험, 대학 등록금, 기후 정책까지 젊은 세대와 중산층이 실제로 체감할 수 있는 현실적인 문제를 건드린 것이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내 주변 동료와 친구들이 단순히 불평을 넘어서서 정치적 열망과 참여로 자신의 삶을 바꾸려는 움직임을 보며 흥미로웠다. 세금을 내는 것 자체가 사회적 계약이라면, 이 불만은 “계약이 불공정하다”는 젊은 층의 신호였던 셈이다.
그 신호는 최근 뉴욕시장 선거에서도 현실로 드러났다. 샌더스 성향의 민주적 사회주의자 맘다니가 당선된 것은 단순히 개인 정치인의 승리가 아니라, 젊은 층의 잠재적 불만과 정치 참여가 현실화된 사건이었다. 세금을 내지만 체감 혜택이 거의 없는 삶에 대한 불만, 불평등한 기회 구조, 미래에 대한 불안—이 모든 요소가 정치적 요구로 승화된 결과였다.
나는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미국 사회가 가진 특이한 구조적 모순을 체감했다. 개인주의와 자유 시장을 중시하는 사회 속에서, 정부의 직접적 지원과 안전망이 제한적인 상황은 젊은 층에게 큰 심리적 공백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 공백은 단순한 무력감이 아니라 정치적 에너지와 집단적 요구로 전환될 수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결국, 세금과 복지의 격차는 단순히 재정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신뢰와 시민 참여, 그리고 정치적 상상력과 직결되어 있었다. 내가 30대 초반 싱글로서 느낀 작은 불만은, 미국 젊은 세대 전체가 공유하는 체감 격차와 맞닿아 있었고, 이는 정치적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나는 지금도 가끔, 미국에서 세금을 내면서도 정작 혜택을 거의 누리지 못했던 시절을 떠올린다. 2주마다 내 주급 명세서에서 빠져나가는 돈을 보며, “이만큼 내는데 돌아오는 것은 거의 없구나” 하고 속으로 중얼거렸던 순간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돌이켜보면, 그 경험은 단순한 불편함이나 금전적 손실을 넘어서, 한국과 미국의 사회 구조, 복지 설계, 시민의 권리와 책임을 동시에 이해하게 만드는 작은 인문학적 실험이었다.
세금, 복지, 정책, 개인의 선택이 얽힌 일상의 긴장감을 몸으로 체험하며, 나는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배웠다. 첫째, 세금은 단순한 금전적 부담이 아니라, 사회적 계약의 구체적 표현이라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세금을 통해 눈에 보이는 안전망과 복지를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었고, 이는 개인의 삶과 사회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신뢰감을 만들어주었다. 반면 미국에서는 같은 금액을 내도, 혜택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 경험은 반대로, 개인이 자신의 권리와 선택을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사회 구조를 이해하도록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둘째, 삶과 제도가 얽히는 복잡한 구조 속에서, 체감의 차이는 곧 사회적 인식과 행동의 차이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미국 젊은 층이 버니 샌더스를 지지하고 민주적 사회주의적 정책을 요구한 것은, 바로 세금을 내면서도 체감되는 혜택이 거의 없다는 불만이 정치적 요구로 변형된 사례였다. 일상의 작은 체험이 집단적 정치 참여로 연결되는 모습을 보며, 나는 개인의 일상과 사회 구조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방식을 이해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이 경험은 삶을 사유하게 하는 일상적 실험이기도 했다. 의료보험 없이 살아야 했던 긴장감, 세금과 수입이 서로 얽히며 만들어낸 재정적 압박, 공공서비스의 부재와 그로 인한 불편함 모두가, 단순히 불평할 대상이 아니라 사회적 구조와 개인 선택의 상호작용을 탐구할 수 있는 생활 속 실험실이었다.
결국, 미국에서의 세금 체험은 나에게 단순한 경제적 경험을 넘어, 인문학적 사유와 사회학적 통찰을 동시에 가능하게 하는 삶의 교훈이 되었다. 매달 통장에서 빠져나가던 돈은 결국 내게 돌아오는 금전적 혜택보다, 세금과 복지, 개인과 사회의 연결 고리를 생각하게 만든 소중한 ‘교육료’였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