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월세는 전쟁, 뉴욕 월세는 생존 게임
뉴욕에 도착한 순간, 나는 그 유명한 도시의 야경이나 브루클린 브릿지, 소호의 예쁜 카페보다 훨씬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문제와 마주했다. 그것은 바로 집,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 공간이었다. 뉴욕에서 집을 구한다는 것은 단순히 거주할 곳을 결정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곧 삶을 조직하고, 생존 전략을 짜고, 나의 존재 방식을 정하는 문제였다.
내게 주어진 선택지는 단순했다. 가장 저렴하고, 가장 접근이 쉬운 옵션. 룸메이트 하우스였다. 미국에서 룸메이트 하우스는 한 집에 여러 사람이 살며, 나는 그중 하나의 방을 사용하는 방식이다. 화장실과 부엌은 공유하고, 사생활은 절반 이상 운에 맡겨야 하는 시스템이었다. 한국에서 셰어하우스가 트렌디한 ‘공유 문화’라면, 뉴욕에서 룸메는 도시가 허락한 마지막 생존권에 가까웠다.
인터넷으로 수십 건의 매물을 뒤지며, 나는 전화를 걸고 직접 집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직장은 맨해튼과 퀸즈를 번갈아 다녀야 했기에 어느 한쪽만 선택할 수 없었다. 출퇴근 거리, 가격, 치안, 교통, 주변 상권까지 모든 것을 계산해야 했다.
2013년 당시 플러싱의 룸메 가격은 700달러에서 900달러. 맨해튼은 1500달러에서 2000달러였다. 언뜻 보면 수백 달러 차이쯤이 대수롭지 않아 보이지만, 뉴욕에서 월세가 소득의 절반을 차지하는 도시에서 수백 달러는 생존의 차이를 의미했다.
플러싱은 한인 커뮤니티가 잘 형성되어 있었다. 마트, 식당, 한인 상점이 도보 거리에 있었고, 치안도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무엇보다 가격 대비 효율이 뛰어났다. 그래서 나는 고민할 여지 없이 플러싱을 선택했다.
하지만 룸메이트 생활은 철저히 운의 게임이었다. 어떤 룸메를 만나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졌다. 다행히 나는 운이 좋았다. 룸메 때문에 이사를 가야 했던 적은 없었다. 그러나 직장 위치가 바뀔 때마다 어쩔 수 없이 이사해야 했고, 3년 동안 4번이나 이사를 경험했다. 내 친구 중에는 룸메와 말싸움을 하다가 그 자리에서 바로 이사를 나간 경우도 있었다. 자정이 넘어가는 시간에 전화가 와서 "짐 좀 옮겨야 돼, 도와줄래?"라는 장면은 내게 뉴욕의 잔혹함과 동시에, 도시의 인간관계라는 예측 불가성을 실감하게 했다.
뉴욕에서 룸메이트라는 것은 단순히 누군가와 공간을 공유하는 일이 아니었다. 타인의 운, 성격, 생활 습관, 심지어 냄새까지도 내 일상에 직결되는 경험이었다. 어떤 날은 소소한 갈등 때문에 잠을 설치기도 했고, 때로는 공동체적인 따뜻함을 느끼며 삶의 연대감을 체감하기도 했다. 룸메라는 존재는 도시라는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인간관계를 체험하는 최소 단위였다.
나는 그 방에서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집은 단순히 거주하는 공간이 아니라, 삶을 조직하고, 선택을 결정하고, 인간관계를 시험하는 현대인의 실험실이라는 사실이었다. 방 하나를 선택하는 일은 단순히 월세를 내고 잠자는 문제가 아니라, 삶의 일부를 설계하는 행위였다. 좁은 방, 낡은 벽지, 공용 부엌, 예측 불가한 룸메이트의 하루. 이 모든 것이 뉴욕이라는 도시의 에너지를 나에게 직접 체험하게 하는 장치였다.
그렇게 나는 도시와 나, 그리고 내 방 사이의 미묘한 긴장을 처음 경험했다. 뉴욕에서 집을 구한다는 것은 단순한 주거 문제가 아니라, 선택과 운, 자유와 제약, 인간관계와 생존의 교차점에서 스스로를 시험하는 과정이었다. 그 방은 작았지만, 그 안에서 나는 처음으로 뉴욕이라는 거대한 도시와 나 사이의 관계를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내 이야기는 집을 중심으로 한 도시 생존기가 되었다.
룸메로 2년을 넘게 지내면서 돈도 조금 모였겠다, 나는 이제 조금 더 독립적인 공간을 원하게 되었다. 내 공간을 조금이라도 내 것으로 느낄 수 있다면, 타인의 일상과 습관에 묶여 있던 불편함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내 눈에 들어온 것이 스튜디오, 즉 원룸 형태의 집이었다. 스튜디오는 방과 거실과 부엌이 하나로 이어진 형태로, 룸메이트 다음으로 저렴하면서도 최소한의 사생활을 보장하는 옵션이었다. 혼자 살아보는 경험은, 비록 작은 공간이라도 내 삶을 재구성할 수 있는 첫 단계이자 자유의 시험대였다.
당시 플러싱의 스튜디오 월세는 약 1300달러, 맨해튼은 무려 2500달러 수준이었다. 맨해튼 월세를 보고 나는 현실을 똑바로 직시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사실, 즉 내가 원하는 삶과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현실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다는 사실을. 한국에서는 월세, 전세, 수도권 외곽 선택지까지 폭이 넓었다. 전세라는 독특한 제도를 활용하면, 돈을 모으면서도 주거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뉴욕에서는 그런 장치가 없다. 선택지는 제한적이고, 저렴한 지역으로 눈을 돌리면 치안과 환경 문제를 감수해야 한다.
나는 잠시 눈을 감고 한국에서의 시절을 떠올렸다. 처음 경기도 안산에서 보증금 500만 원, 월세 30만 원짜리 원룸에서 출퇴근하며 살아갔던 시간. 안산에서 서울 직장까지는 왕복 3시간. 그때의 나는 피곤하고 힘들었지만, 매달 일정 금액을 저축하며 미래를 계획할 수 있었다. 2년 후, 안산에서 전세 4000만 원짜리 작은 스튜디오 원룸으로 옮기며 조금씩 경제적 안정을 확보했다. 한국에서 전세는 단순한 주거 계약이 아니었다. 돈을 모으면서도 안정적인 공간을 확보할 수 있게 해주는, 한국만의 기묘한 장치였다. 당시 내게 전세는, 미래를 준비하며 동시에 현재를 버틸 수 있게 해주는 든든한 방패였다.
그러나 뉴욕에서는 그런 장치를 기대할 수 없었다. 한 친구는 직장과 가격 때문에 위험을 감수하고 조금 낡고, 안전하지 않은 지역에서 스튜디오를 얻었다. 그의 경험은 내게 경고였다. 한밤중에 주차해 놓았던 차의 사이드미러가 도난당하고, 침대에서 베드버그에 물려 수주일을 고생하며 바로 이사를 가야 했고, 어느 날은 멀리서 총소리가 들리기도 했다고 했다. 선택권이 제한된 도시에서는, 안전과 편안함, 사생활과 가격 중 하나를 포기하지 않고는 살아남기 어려운 현실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뉴욕에서 집을 구한다는 것은 단순히 공간을 정하는 일이 아니라, 삶의 일부를 포기하고, 무엇을 감수할지 선택하는 행위라는 것을. 안전을 위해 높은 월세를 감당할 것인지, 편안함을 위해 더 비싼 집을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비용을 줄이되 위험을 감수할 것인지. 그 모든 선택은 단순히 월세 계약서에 서명하는 것 이상의 의미였다. 그것은 나의 삶을, 나의 자유를, 나의 일상을 설계하는 결정이었다.
스튜디오로의 진화는 나에게 단순한 공간 이동 이상의 경험이었다. 그것은 자율성과 책임의 시작이었다. 나만의 공간, 나만의 선택권, 그리고 내가 책임져야 하는 내 생활. 룸메이트 시절에는 타인의 삶과 운에 내 일상이 흔들렸다면, 이제는 작은 원룸에서 나의 삶을 온전히 통제하고 조정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자유에는 비용이 따랐고, 그 공간의 한계는 언제나 나를 경계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나는 스튜디오를 얻으며, 뉴욕이라는 도시에서 내 삶을 설계하는 연습을 시작했다. 좁고 낡았지만 내 손으로 선택한 공간에서, 나는 자유와 제약 사이의 균형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집은 단순히 잠을 자는 공간이 아니라, 삶을 설계하고 선택을 시험하는 무대라는 사실을.
나는 종종 생각했다. 한국에서 살던 시절과 뉴욕에서의 주거 생활, 과연 어느 쪽이 더 힘든가. 단순히 월세 숫자를 비교하는 것으로는 답을 찾기 어려웠다. 문제는 금액 그 자체가 아니라, 내 소득 대비 부담, 생활의 선택권, 그리고 그 안에서 내가 누릴 수 있는 자유였다.
맨해튼과 강남을 비교하면 그 차이는 여전히 극명하다. 2025년 현재, 맨해튼의 원베드룸 중간 월세는 약 4,495달러로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반면, 서울 강남구의 스튜디오나 원룸 월세는 약 85만 원에서 110만 원대가 일반적이다. 이 금액을 1인 중위소득 대비 부담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맨해튼에서는 월세가 소득의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혼자 살면서 저축을 한다는 것은 여전히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반면 강남에서는 월세 부담이 크긴 하지만, 생활비를 조절하거나 어느 정도 저축 여유를 가질 여지가 조금 더 있다.
퀸즈 플러싱과 서울 강북을 비교하면 또 다른 그림이 그려진다. 플러싱의 평균 원베드룸 월세는 약 2,000달러 정도로, 맨해튼보다는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그러나 2025년 기준 플러싱의 원룸이나 원베드룸 임대 수요는 여전히 높고, 월세 수준도 적지 않게 부담스러운 편이다.
한편, 서울 강북 지역의 원룸 월세는 대체로 50만 원대에서 80만 원대까지 다양한 매물이 있으며, 일부 통계에서는 강북 원룸 월세가 중간 가격대에서 비교적 낮은 편이라는 평가도 있다.
이를 종합하면, 중위소득 대비 부담 측면에서 플러싱은 맨해튼보다는 나은 선택지지만, 여전히 생활비 압박이 상당하다고 볼 수 있다. 서울과 뉴욕, 강남과 맨해튼, 강북과 플러싱. 단순한 숫자 차이 너머, 주거는 곧 삶의 여유와 선택권, 그리고 자유를 시험하는 척도임을 확인하게 된다.
서울에서의 경험을 떠올리면, 선택권의 폭이 컸다는 사실이 중요하게 다가왔다. 전세냐 월세냐, 서울 중심부냐 수도권 외곽이냐, 빌라냐 아파트냐, 단순히 집을 구하는 것 이상의 전략적 선택이 가능했다. 출퇴근 거리, 생활비, 저축 계획까지 계산하며 생활을 설계할 수 있었다. 반면 뉴욕에서는 선택권이 극도로 제한적이었다. 공간은 부족하고 월세는 높으며, 치안과 환경은 균형 잡기가 어렵다. 선택의 폭이 좁아지면, 모든 결정이 곧 생존 전략이 된다.
뉴욕에서는 작은 공간을 선택하고, 높은 월세를 감당하며, 불안한 치안을 견디는 것이 곧 일상 속 생존 기술이었다. 여기서 깨달은 점은 명확했다. 공간이라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방이 아니라, 자유와 안전, 경제적 여유, 그리고 삶의 선택권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라는 사실이다. 한 평 남짓한 스튜디오 안에서도, 나는 내 삶을 얼마나 통제할 수 있는지,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를 시험받았다.
서울에서는 방이 작아도 마음이 넓을 수 있었다. 주변에 가족, 친구, 치안, 사회적 안전망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뉴욕에서는 반대로, 방 하나가 좁으면 마음도 좁아진다. 치안과 월세, 생활비 부담이 한꺼번에 몰려오기 때문이다. 이 비교는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었다. 도시와 사회, 제도와 문화가 개인의 삶을 어떻게 압박하고 보호하는지를 체감하게 하는 경험이었다.
결국 이 글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분명하다. 주거 문제는 단순한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질과 자유, 안전과 경제적 선택을 동시에 시험하는 도구라는 점이다. 서울과 뉴욕, 강남과 맨해튼, 강북과 플러싱. 단순한 숫자의 차이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삶의 압박과 선택의 무게가 존재한다. 그리고 나는 그 무게를 몸으로 배우며, 한 평 남짓한 방 안에서 살아남는 법을 익혀야 했다.
뉴욕에서의 집 구하기는 단순한 생활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삶을 보는 시선을 강제로 배우게 하는 과정이었다. 어떤 집을 선택하느냐, 어떤 룸메이트를 만나는가, 어느 지역의 위험을 감수할 것인가. 작은 방 하나, 좁은 복도, 낡은 엘리베이터 하나까지 모든 선택이 나의 일상과 직결되었다. 뉴욕이라는 도시는 매 순간 나에게 자유와 제약, 안전과 모험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법을 요구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잠만 잘 공간’을 찾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곧 깨달았다. 집을 고른다는 것은 단순한 거주 선택이 아니라, 나 자신과 도시,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를 동시에 설계하는 일이라는 것을. 룸메이트의 습관 하나, 출퇴근 거리 하나, 주변 치안 상태 하나가 내 삶의 질을 결정했다. 도시라는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한 평 남짓한 내 방은 나의 작은 실험실이자, 선택과 책임을 시험하는 장치였다.
뉴욕은 공간과 돈, 사회적 관계, 안전이라는 네 가지 축을 끊임없이 시험하는 도시였다. 좁은 스튜디오 안에서 나는 매일 선택의 연속을 경험했다. 전기 요금이 어느 정도 나올지, 이웃은 어떤 사람일지, 지하철로 출퇴근할 때 위험한 순간은 없는지. 모든 선택은 나의 삶을 곧바로 바꿨다. 반면 서울에서는 전세라는 장치가 있었고, 선택지도 훨씬 풍부했다. 비용, 거리, 생활 환경을 전략적으로 조합하면, 비교적 안전하게 삶을 설계할 수 있었다. 뉴욕에서는 운과 정보, 순간의 판단이 곧 삶의 질을 결정짓는 요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조금씩 이 도시와 나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고, 나 자신을 뉴욕 시민으로서 자리매김해 나갔다. 좁은 방, 낡은 벽지, 새어 들어오는 바람, 함께 살아가는 룸메이트의 존재까지. 그 모든 요소가 나에게 도시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뉴욕의 작은 방은 단순한 생활 공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선택과 운, 자유와 제약, 안전과 모험, 그리고 도시와 나의 관계를 보여주는 거울이었다.
나는 그 방 안에서 깨달았다. 집은 단순히 잠을 자는 공간이 아니다. 집은 나의 삶을 설계하고, 선택을 시험하며, 때로는 나를 경계하게 만들고, 때로는 위로해주는 작은 우주였다. 뉴욕에서의 첫 집, 작고 낡았지만, 그곳에서 나는 도시의 잔혹함과 동시에 생존의 법칙을 배우며, 삶의 무게와 자유의 의미를 동시에 깨달았다.
좁은 스튜디오에서 하루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 때, 나는 비로소 알았다. 도시와 나, 그리고 나와 공간 사이의 관계가 내 삶을 구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작은 공간에서 나는, 마침내 내 인생의 무대 위에 첫 발을 내딛었다. 자유와 책임, 불안과 희망이 뒤섞인 이 도시에서, 나는 내 삶을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2025년 기준, 1인 중위소득을 기준으로 뉴욕과 서울의 주거 현실을 비교하면, 단순한 숫자를 넘어 삶의 압박과 선택의 폭이 훨씬 뚜렷하게 드러난다.
먼저 소득을 살펴보면, 뉴욕시티의 1인 중위소득은 세전 기준 약 57,000달러로, 월로 환산하면 약 4,750달러에 해당한다. 서울의 1인 중위연봉은 세전 기준 약 3,900만 원, 월로 나누면 약 325만 원 정도다. 세후 실수령액을 단순 계산하면, 뉴욕은 약 70% 수준인 3,325달러(약 465만 원)가 통장에 입금되며, 서울은 세금 부담이 상대적으로 낮아 약 88% 수준인 286만 원 정도가 실제 수령액이다. 단순 계산만으로도 두 도시의 경제적 환경과 가용 자금의 차이가 드러난다.
월세만 보더라도 두 도시는 삶의 무게를 강하게 느끼게 한다. 맨해튼의 원베드룸 저렴한 월세 기준으로 약 4,000달러, 플러싱은 1,700~1,800달러 정도다. 서울에서는 강남이 약 90만 원, 강북은 50만 원 수준으로, 단순 금액 차이만 보더라도 뉴욕에서의 주거 부담이 훨씬 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중위소득 대비 월세 부담이라는 관점에서 비교하면, 차이는 더욱 극명하다.
먼저 뉴욕의 1인 생활비(주거비 제외)는 여러 자료를 종합하면 월 약 2,200달러 전후가 일반적이다. 이는 평균적인 식비 900~1,000달러, 교통비(메트로카드 기준) 130달러, 통신·인터넷 120~150달러, 전기·가스·수도 등 공과금 150~250달러, 외식·생활용품·의료·기타 소비 등이 600달러 내외로 합산된 금액이다. 즉, 뉴욕에서 평균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비(非)주거비 지출은 대략 이 수준으로 형성된다.
반면 서울의 1인 생활비(주거비 제외)는 통상 월 약 150만 원 전후로 집계된다. 구성을 보면 식비 40만~60만 원, 교통비 7만 원, 통신·인터넷 7만~9만 원, 전기·가스·수도 등 공과금 15만~25만 원, 생활용품·카페·의료·기타 소비 등의 지출이 50만 원 내외 수준이다. 결국 주거비를 제외한 기본 생활비만 비교하더라도, 뉴욕은 월 약 2,200달러(한화 약 310만 원), 서울은 약 150만 원 내외로 형성되어 있다. 생활비만 놓고 보더라도 서울에서의 생활은 뉴욕에 비해 여유롭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종합적으로 월별 재정을 실제로 계산해보면 두 도시의 현실이 한눈에 드러난다.
먼저 뉴욕을 살펴보자. 맨해튼에서 1인 기준 원베드룸을 선택한다고 가정하면, 세후 소득은 약 3,325달러에 불과하다. 그러나 매우 저렴한 원룸을 기준으로 월세만 4,000달러에 달하고, 주거비를 제외한 평균 생활비가 2,200달러 정도 소요되므로, 매달 약 2,875달러, 한화로 약 400만 원의 적자가 발생한다. 단순히 생활 유지가 어렵다는 수준을 넘어, 혼자 거주하는 중위소득자가 저축은커녕 적자 생활에 빠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결국 룸메이트가 없이는 생활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 맨해튼은 뉴욕 내에서도 주거비와 생활비 부담이 가장 큰 지역으로, 소득 대비 비용 압박이 극심하다.
플러싱에서는 상황이 조금 나아진다. 동일한 세후 소득에서 마찬가지로 매우 저렴한 원룸 월세가 1,700달러로, 생활비 2,200달러를 포함하면 매달 약 575달러, 한화로 80만 원 정도의 적자가 발생한다. 여전히 저축은 거의 불가능하지만, 룸메이트나 서브렛을 활용하면 간신히 재정 균형을 맞출 수 있다. 뉴욕 기준으로 볼 때 ‘살 만한 편’이지만, 생활 여유는 거의 없는 수준이다.
반면 서울을 보면, 강남에서는 세후 월 소득 약 286만 원에서 원룸 월세 90만 원과 평균 생활비 150만 원을 제외하면 매달 46만 원가량을 저축할 수 있다. 갑작스러운 지출이 발생해도 생활과 저축을 동시에 유지할 수 있는 수준으로, 뉴욕과 비교하면 훨씬 안정적이다.
서울 강북은 더 여유롭다. 월세 50만 원과 생활비 150만 원을 제외하면 매달 약 86만 원을 저축할 수 있다. 중위소득 기준에서 재정적 안정도가 가장 높으며, 주거비와 생활비 부담이 낮아 직장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상대적으로 덜하다. 비용 대비 만족도 또한 가장 높은 편이다.
결국 뉴욕에서는 1인 거주 중위소득자가 맨해튼 원베드룸에서 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며, 플러싱과 같은 외곽 지역에서도 최소한의 여유만 확보할 수 있는 수준이다. 반면 서울은 강남과 강북 모두 생활과 저축이 가능하며, 특히 강북은 재정적 안정성이 가장 높아 중위소득자가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구조임을 확인할 수 있다.
정리하면, 1인 중위소득자가 원베드룸을 기준으로 월 생활을 계산할 때, 도시와 지역에 따른 부담은 극명하게 드러난다.
맨해튼 – 사실상 원베드룸 불가, 생존 모드 필수
플러싱 – 간신히 유지 가능하지만 저축 불가, 여전히 빡셈
강남 – 부담 적당, 충분히 저축 가능
강북 – 가장 여유롭고 안정적, 생활 모드 가능
결국, 1인 중위소득자로 살면서 원베드룸을 기준으로 비교하면, 뉴욕에서는 ‘생존 모드’, 서울에서는 ‘생활 모드’라는 차이가 명확히 드러난다. 맨해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 플러싱은 가능하지만 저축은 전혀 불가, 강남은 적당히 버티며 저축 가능, 강북은 충분히 여유가 있어 삶의 질과 경제적 안정을 동시에 누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