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길 잃은 한국인의 셧다운 체험기

소셜국 생존 매뉴얼: 뉴욕에서 배운 인내학

by 슈퍼T
자유의여신상 정부 셧다운 그림 (1).png

내가 미국에 이민을 목적으로 발을 들인 것이 2013년 10월이었다.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뉴욕 JFK 공항에 도착해 입국 심사를 기다리는 동안, 공항 로비의 텔레비전 화면에는 당시 오바마 대통령이 연설하고 있었다. 화면 하단에는 Breaking News라는 말과 또 굵은 글씨로 Shut Down이라는 단어가 크게 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그 단어가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화면 소리는 꺼져 있었고, 대통령의 표정은 심각하고 어두웠다. 내 머릿속에서는 자연스럽게 최악의 상황을 떠올렸다.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이런 상황이라니. 낯선 땅에서, 아직 문화와 제도를 제대로 이해하기도 전에 나는 당황과 불안을 동시에 느꼈다.

입국심사를 무사히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마중 나온 선배가 현재 미국의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연방정부가 셧다운 상태라서, 많은 행정 절차와 공무원의 업무가 사실상 올스탑 상태라는 것이었다. 처음 듣는 말이었다. 한국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주민등록번호처럼 일상생활과 직결된 소셜시큐리티넘버조차 발급받지 못하고, 월급 지급이나 운전면허 신청, 은행 계좌 개설까지 영향을 받는다니, 나는 순간 깊은 당혹감을 느꼈다. 선배는 덧붙였다. “소셜국도 문을 닫았어. 언제 열릴지 모른다.” 그 말에 나는 한참 벙찔 수밖에 없었다.

미국에서의 첫 달은 셧다운 때문에 나의 경제적 활동마저 멈춰버린 상태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주급을 한 달 넘게 받지 못했고, 미국은 보통 2주 단위로 주급을 지급하는데, 그 체계가 셧다운으로 인해 완전히 꼬였다. 이 단순한 숫자의 문제는 단순히 금전적 불편을 넘어, 정체성과 독립적 생활에 대한 초보적 실험의 일부가 되었다. 이제 막 낯선 땅에서의 삶을 시작했는데, 기본적인 사회적 기능마저 정치적 결정에 종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했다.

2주 정도가 흐른 뒤 드디어 셧다운이 해제되고, 나는 직장에 상황을 설명한 후 잠시 시간을 내어 근처 소셜국(SSA) 사무소로 향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나는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 소셜국 안은 이미 사람들로 북적였다. 나는 신청서를 작성하고 이름이 불릴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대기 시간은 약 한 시간. 그 긴 시간 동안 내 이름이 호명될 때 놓치지 않으려고 신경을 곤두세우며 주변 사람들의 이름 하나하나에 집중했다. 그 순간, 나는 ‘기다림’이라는 행위 자체가 미국 행정문화의 일부라는 것을 체감했다.

소셜국.png

드디어 내 이름이 불리고 담당 창구로 안내되었다. 그러나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담당 직원은 건성으로 내 서류를 받아 들었고, 처리 과정 내내 옆 직원과 잡담을 이어갔다. 나나 내 서류에는 전혀 집중하지 않은 채였다. 1~2분이면 끝날 일을, 직원은 옆의 직원과 5분 이상 잡담과 함께 처리했다. 한국에서 행정 경험을 통해 체득한 효율성과 친절이라는 기준으로 상황을 평가했기에, 처음 겪는 이 현실은 어이없고 답답함 그 자체였다. 직원에게 항의할 수도 없었다. 영어 실력과 문화적 경험 부족 때문에 정중히 항의하거나 논리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다른 방문객들도 무표정하게 기다리는 모습을 보고, 나는 이 상황이 나만 이상하게 느끼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이 경험은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문화 충돌의 생생한 사례였다. 처음에는 미국 직원이 불친절하고 느리다는 불만으로만 생각했지만, 조금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니 상황이 완전히 뒤바뀐 구조가 보였다.

한국에서 관공서를 방문해본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민원인은 서류가 부족하거나 처리 속도가 느리다고 하면 화를 내고, 때로는 막무가내로 공무원을 압박한다. 그럴 때 공무원들은 민원인을 진정시키고, 분노를 완화하며, 불만을 처리하려고 엄청난 에너지를 쏟는다. 결국 민원인을 만족시키는 것이 공무원의 업무와 스트레스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반대로 미국에서는 직원이 갑이고, 민원인은 을인 구조가 명확하다. 소셜국에서 직원들이 잡담을 하거나 짜증 섞인 태도로 응대하는 것을 나는 직접 경험했다. 민원인은 기다리고, 질문하고, 서류를 제출하지만, 직원은 자기 기준대로 절차를 진행할 뿐이었다. 직원이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은 거의 없고, 민원인이 불편을 겪는 구조였다. 말하자면 직원 입장에서는 일하기 너무 수월해 보이고, 손님 입장에서는 최악의 경험일 수 있다.

이 차이를 바라보는 내 마음은 묘했다. 우리는 어떤 순간에는 직원이자 권력자이고, 다른 순간에는 손님이자 약자가 된다. 한국에서는 민원인이 ‘힘’을 가진 순간이 많고, 미국에서는 직원이 권한을 가진 순간이 많다. 나는 그 경험 속에서 권력과 역할, 스트레스의 배분이 문화마다 어떻게 다르게 설계되는지를 실감하게 되었다. 기다림과 불편 속에서 느낀 어이없음이 단순한 불만이 아니라, 제도와 문화가 인간의 감정을 어떻게 구조화하는지를 보여주는 한 사례였던 것이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행정 시스템이 단순히 서비스의 문제만이 아니라, 정치, 예산, 조직 문화, 인간 심리의 총체적 산물임을 깨달았다. 기다림, 무력감, 답답함 속에서 나는 행정과 인간, 문화와 제도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체험했다. 미국 사회의 관료주의는 단순히 불친절하거나 느린 것이 아니라, 사회적 신뢰, 규정 준수, 권한과 책임, 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동시에 담보하려는 구조적 선택이었다.

결국 나는 그날 소셜시큐리티번호를 신청하고, 담당 직원이 말한 대로 1~2주 내 우편으로 카드를 받았다. 기다림과 답답함 속에서도 나는 미국이라는 사회의 시간과 속도, 인간과 제도의 관계를 배워가는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한 셈이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단순히 행정 업무를 마쳤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뉴욕에서의 그 경험은 나에게 인내와 관찰, 그리고 문화적 상대성을 배우는 수업이 되었다. 나는 더 이상 ‘불친절하다’ 혹은 ‘느리다’라는 단편적 판단으로 상황을 재단하지 않았다. 대신, 이 경험을 통해 나는 사람과 제도, 권력과 약자의 관계가 얼마나 다층적이고 복잡한지, 그리고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불편함 속에도 삶을 이해하는 열쇠가 숨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국에서는 내가 손님이 되면 직원이 을이고, 미국에서는 내가 손님일 때 직원이 갑이다. 우리는 삶에서 어딘가에서는 권한을 가진 주체이고, 또 어딘가에서는 기다려야 하는 존재이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나는 처음 느꼈던 당혹과 답답함이 조금씩 녹아내리며, 대신 삶을 바라보는 조금 더 넓은 시선과 인내심이 자리 잡았다.

그날 JFK 공항에서부터 소셜국에서의 한 시간까지, 나는 단순히 행정 절차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문화 속에서 인간과 제도, 권력과 기다림의 관계를 온몸으로 체험하고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 경험은 내가 미국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기술을 배우는 시간이었지만, 동시에 삶의 속도와 인간적 긴장을 이해하는 인문학적 체험이기도 했다.

나는 여전히 가끔 그 순간을 떠올린다. 긴 줄 속에서 이름을 기다리던 나의 긴장, 직원의 잡담 속에서 느낀 답답함, 그리고 그 모든 경험이 나에게 남긴 묘한 여운. 그것은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삶과 제도, 그리고 인간을 이해하는 창이었음을 알게 한다. 셧다운과 소셜국의 한 시간이 나에게 가르쳐준 가장 큰 교훈은 이것이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시간과 사람 사이에서, 어떻게 중심을 잡고 관찰하며 살아갈 것인가는 결국 스스로에게 달려 있다는 것.

그리고 그날 이후, 나는 기다림 속에서도 마음의 속도를 조절하며, 세상의 구조와 인간의 심리를 조금 더 예리하게 관찰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셧다운이 가져온 혼란과 답답함은 이제 나에게 단순한 불편이 아닌, 미래를 살아가는 지혜의 한 조각으로 남아 있다.



keyword
이전 01화한국에서 레벨업했더니 미국에서 튜토리얼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