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화 : 이혼서류를 쥔 남자

by 제제

​테이블 위에 놓인 이혼 서류는 폭탄과 같았다. 나정식은 그 서류를 보자마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의 눈빛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불안하게 떨렸다.
​"고민해 봐. 양육은 내가 할 거니까."
​나는 그 말만 던지고 방문을 닫았다. 회사에서의 냉철함과 달리, 집 안은 싸늘하고 먹먹한 공기로 가득 찼다. 그 밤, 나정식은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다음 날, 그리고 그다음 날, 나정식은 나에게 대화를 청했다. 거실 소파의 양 끝에 세상 가장 멀리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펑펑 울음을 터뜨렸다.
​"여보, 나는 정말 내가 잘못한 건 아닌데...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모르겠어... 나 정말 너무 힘들어."
​나는 그의 눈물을 외면했다. 그의 눈물은 자기 연민일 뿐, 나의 상처와 분노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아니었다.
​"똑같은 소리 할 거면 말 섞지 마."
​나정식은 아니라며 다급하게 나를 말렸다.
​"아니야, 아니야... 당신이 서운한 거, 나도 다 이해해. 정말 미안해. 이번에만... 이번에만 내가 어른들 설득할 시간을 좀 갖게 참아주면 안 될까?"
​나는 냉정하게 못 들은 척, 시선을 돌렸다.
​"내가 잘할게. 더 잘할게. 우리 가족 셋만 보고 살자. 앞으로 시댁 일은 내가 다 책임지고 막을게. 당신 힘들게 안 할게."
​나는 그의 간절한 하소연을 듣고서야 비로소 입을 열었다.
​"우리가 각자 셀프로 살자. 각자 부모님 일은 각자 책임지자는 말이야. 그런데 그게 안되면, 이혼해야 할 것 같아. 이재도 이런 조부모에게 차별당하는 엄마 모습 보고 자라서, 이런 삶을 그대로 살게 해주고 싶지 않아."
​나는 내 감정을 단단한 논리로 포장했다.
​"나는 귀여움 받으면서 자랐어. 공부 열심히 해서 명문대 나오고, 대기업에 다니고 있어. 이런 당신 집 차별받고 살려고 그 모든 노력 끝에 당신 만나 결혼한 거 아니라고."
​나정식은 그제야 나의 본질적인 상실감을 깨달은 듯했다. 그는 "알아, 내가 다 알아."라며 눈물로 하소연했지만, 나는 그 사과를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었다. 순순히 사과를 받아들이는 순간, 나를 제외하고 또다시 아무런 변화 없이 지나갈 세상과 미래가 훤히 보였기 때문이다. 그게 더 속상하고 무서웠다.

​그렇게 밤새도록 나정식은 사과와 약속을 늘어놓았지만, 나는 끝내 순응하지 않았다. 팽팽한 긴장 속에 정적이 흐르던 순간, 나정식은 떨리는 손으로 테이블 위의 이혼 서류를 집어 들었다.
​그는 서류를 천천히 들어 올리더니,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찢기 시작했다.
​스으윽, 스으윽!
​서류가 종잇조각이 되어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 나는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온몸의 감각이 멈춘 듯했다.
​나의 귀에서는 "삐이이이—" 하는 날카로운 이명이 울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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