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블 위에 놓인 이혼 서류는 폭탄과 같았다. 나정식은 그 서류를 보자마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의 눈빛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불안하게 떨렸다.
"고민해 봐. 양육은 내가 할 거니까."
나는 그 말만 던지고 방문을 닫았다. 회사에서의 냉철함과 달리, 집 안은 싸늘하고 먹먹한 공기로 가득 찼다. 그 밤, 나정식은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다음 날, 그리고 그다음 날, 나정식은 나에게 대화를 청했다. 거실 소파의 양 끝에 세상 가장 멀리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펑펑 울음을 터뜨렸다.
"여보, 나는 정말 내가 잘못한 건 아닌데...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모르겠어... 나 정말 너무 힘들어."
나는 그의 눈물을 외면했다. 그의 눈물은 자기 연민일 뿐, 나의 상처와 분노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아니었다.
"똑같은 소리 할 거면 말 섞지 마."
나정식은 아니라며 다급하게 나를 말렸다.
"아니야, 아니야... 당신이 서운한 거, 나도 다 이해해. 정말 미안해. 이번에만... 이번에만 내가 어른들 설득할 시간을 좀 갖게 참아주면 안 될까?"
나는 냉정하게 못 들은 척, 시선을 돌렸다.
"내가 잘할게. 더 잘할게. 우리 가족 셋만 보고 살자. 앞으로 시댁 일은 내가 다 책임지고 막을게. 당신 힘들게 안 할게."
나는 그의 간절한 하소연을 듣고서야 비로소 입을 열었다.
"우리가 각자 셀프로 살자. 각자 부모님 일은 각자 책임지자는 말이야. 그런데 그게 안되면, 이혼해야 할 것 같아. 이재도 이런 조부모에게 차별당하는 엄마 모습 보고 자라서, 이런 삶을 그대로 살게 해주고 싶지 않아."
나는 내 감정을 단단한 논리로 포장했다.
"나는 귀여움 받으면서 자랐어. 공부 열심히 해서 명문대 나오고, 대기업에 다니고 있어. 이런 당신 집 차별받고 살려고 그 모든 노력 끝에 당신 만나 결혼한 거 아니라고."
나정식은 그제야 나의 본질적인 상실감을 깨달은 듯했다. 그는 "알아, 내가 다 알아."라며 눈물로 하소연했지만, 나는 그 사과를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었다. 순순히 사과를 받아들이는 순간, 나를 제외하고 또다시 아무런 변화 없이 지나갈 세상과 미래가 훤히 보였기 때문이다. 그게 더 속상하고 무서웠다.
그렇게 밤새도록 나정식은 사과와 약속을 늘어놓았지만, 나는 끝내 순응하지 않았다. 팽팽한 긴장 속에 정적이 흐르던 순간, 나정식은 떨리는 손으로 테이블 위의 이혼 서류를 집어 들었다.
그는 서류를 천천히 들어 올리더니,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찢기 시작했다.
스으윽, 스으윽!
서류가 종잇조각이 되어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 나는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온몸의 감각이 멈춘 듯했다.
나의 귀에서는 "삐이이이—" 하는 날카로운 이명이 울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