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 안식처의 육아 선배와 새로운 인연

by 제제

​인사팀에 이의를 제기했지만, 회사의 결정은 바뀌지 않았다. 나는 결국 다음 주 월요일, 지원부서로 발령받았다. 낯선 부서, 낯선 업무 환경. 내가 쌓아 올린 커리어가 송두리째 무너진 기분에 나는 의기소침해 있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지원부서는 차가운 전쟁터가 아니었다. 나를 가장 먼저 반겨준 건 박 책임님과 명 주임님이었다.
​"한여름 씨, 잘 왔어요. 무리하지 말고, 여기서는 몸 편히 쉬어요." 박 책임님은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알고 보니 두 분 모두 베테랑 육아 선배들이었다. 그들은 내가 겪고 있는 임신 초기 증상부터 입덧에 좋은 음식까지 하나하나 '전수'해 주었다. 명 주임님은 간식을 챙겨주고, 박 책임님은 "임산부니까 앉아서 쉬라"며 잡다한 업무까지 먼저 챙겨주었다. 회사에서 '임산부'라는 꼬리표가 차별의 근거였지만, 이곳에서는 따뜻한 배려의 이유가 되었다. 나는 비로소 숨을 쉬는 기분이었다.

​집에서의 나정식도 완전히 달라졌다. 나의 대성통곡과 KTX에서의 선전포고, 그리고 임신 소식까지 겪은 후, 그는 극도로 불안해하며 나에게 헌신했다. 내가 먹고 싶다는 것은 지방의 맛집까지 찾아가서라도 사다 주었고, 과일도 손수 깎아주겠다며 부엌으로 달려갔다.
​하루는 사과를 깎다가 칼에 손가락을 베이는 해프닝이 있었다.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그는 "괜찮아, 여보. 내가 실수한 거지. 놀랬지?"라며 나를 먼저 걱정했다. 그의 어설프고 다급한 사랑 속에서, 나는 비로소 평온함을 느꼈다. 시월드의 긴장과 회사의 냉정한 차별 속에서, 정식의 헌신적인 태도는 나에게 잠시나마 안전지대를 만들어 주었다.

​평화로운 일상 속에서, 나는 잊고 있던 회사의 냉정한 현실을 다시 마주했다.
​어느 날 오후, 화장실에 들렀다가 칸막이 안에서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흑... 내가 이걸 어떻게 쌓아 올렸는데..."
​나는 도저히 지나칠 수가 없었다. 조심스럽게 노크를 하고 말을 건넸다.
​"저... 괜찮으세요? 누구세요?"
​흐느낌 속에서 나온 사람은 다름 아닌, 우리 회사에서 가장 잘 나가던 여성 선배, 김 책임님이었다. 능력이면 능력, 카리스마면 카리스마로 모두의 부러움을 샀던 그녀가 왜 울고 있을까.
​김 책임님은 퉁퉁 부은 눈으로 칸막이 밖으로 나왔다. 숨을 고르던 그녀는 결국 나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한여름 씨, 미안해요. 내가 너무 억울해서..."
​김 책임님은 이번 진급 시즌에 맞춰 성과를 몰아주기로 했던 팀장이, 막판에 태도를 바꿔 다른 남자 직원에게 성과를 몰아주고 자신의 진급 기회를 날려버렸다고 했다.
​"여자라서, 결혼도 했으니 곧 애 낳고 쉴 거 아니냐고. 애 둘 있는 외벌이 유부남 직원이 꼭 해야한다고... 진급 티오를 빼앗겼어요. 내가 밤낮으로 일해서 만든 성과를! 팀장한테 한바탕 하고 왔어요, 너무 억울해서."
​나는 충격을 받았다. 나는 '임산부'라는 명확한 이유 때문에 한직으로 밀려났지만, 김 책임님은 '언젠가 엄마가 될지도 모르는 여자'라는 잠재적인 이유 때문에 배신당한 것이다. 그녀의 눈물은, 내가 뚫지 못했던 유리 천장의 또 다른 희생양임을 증명했다.
​그녀의 울음 속에서 나는 깨달았다. 임신 여부와 상관없이, 여성에게 회사의 커리어는 끊임없는 시험대였다는 것을. 지원부서에서의 안식과 나정식의 헌신이 잠시 잊게 했던 현실이, 차가운 화장실 바닥에서 다시 날카롭게 나를 찔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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