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조회가 끝났다. 운동장을 떠나 층계를 올라 복도를 지나 1학년 9반 교실 내 자리에 앉았다. 심장이 여전히 투닥거렸다. 5월 둘째 주였다. 중학생이 되고 두어 달이 지났다. 한 반에 70번까지 있었다. 1학년이 10반까지 있었다. 담임 외의 교사가 반장도 아닌 나를 알 리 없었다. 1년이 지난들 달라지지 않을 터였다. 그런데 그 날, 그 사실이 뒤집혔다. 1교시부터 6교시까지 교실에 들어서는 교사마다 말했다. “니가 날 울린 정윤미니?” 나는 일약 유명해져 있었다.
애국조회가 있기 며칠 전 나는 교무실로 내려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나를 부른 선생님은 우리 교실에 들어오는 분이 아니었다. 임신으로 배가 부른 그 선생님은 원고지를 들고 있었다. 내가 어버이날 글짓기 숙제로 낸 원고지였다. 선생님은 며칠 뒤 있을 애국조회 시간에 내가 그것을 전교생 앞에서 읽어야 하니 집에서 연습을 많이 해오라고 했다. 어리둥절했다. 내가 운동장 구령대에 오르다니. 나한테 구령대는 올려다보는 구조물이지 두 다리를 딛고 서는 곳이 아니었다. 구령대 계단을 오르는 애는 나랑 태생이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거기에 서게 되다니.
5월 8일이 들어 있는 주의 월요일 아침이다. 여중생 이천 백여 명이 운동장에 서 있다. 교복은 동복에서 춘추복으로 넘어가 있었다. “턱 땡겨!” 구령대에 선 체육 선생님이 호통을 친다. 다른 체육 선생님들은 반과 반 사이를 지나다니며 자세를 바로하라며 막대기로 학생들 등짝을 친다. 1학년 9반 줄에 서 있는 나는 입이 마른다. 조금 있으면 내가 저 위에 올라간다.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가 쓴 글을 읽을 거다. 원고지 모서리가 말리게 읽고 또 읽었지만 걱정이 태산이다. 너무 떨려서 글씨가 안 보이면 어떡하나. 읽다가 목소리가 안 나오면 어떡하나. “다음은 어버이날 글짓기 최우수상 수상식이 있겠습니다. 1학년 9반 정윤미는 앞으로 나오기 바랍니다.” 걸어나가고 구령대에 오르고 상을 받았다. “다음에는 최우수상 작품 낭독이 있겠습니다. ” 천천히. 또박또박. 그러나 두근두근. 한 장 두 장 석 장. 원고지를 얼마쯤 넘겼을까. 적요 속에 5월 햇살도 간데없고 흰색 블라우스들도 없어지고 여기저기 흩어져 서 있는 선생님들도 안 보이고 글 속 나와 글 읽는 나만 남았다. 그러자 떨리는 게 덜해졌고, 그러자 참기름병을 깨고 하루종일 속상해하던 엄마를 부르고 이가 아파 잠을 못 자는 엄마한테 이제 그만 병원을 가면 좋겠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흡!’ 하고 울음이 터지기 시작했다.
그 글의 산실은 다락방이었다. 다섯 식구의 단칸방 한 귀퉁이에 계단 서너 개쯤을 만들어 얹은 공간. 오를 때부터 등을 구부려야 하고 다 올라가서는 앉거나 엎드리는 것만 가능했던 천장 낮은 공간. 엄마가 시집 올 때 가져왔다는 은빛깔 철제 장롱 옆에 엎드려서 그 날 나는 글짓기 숙제를 했다. 숙제니까 썼다. 시작은 도덕 시간에 선생님한테 들은 얘기로 해야지 생각했다. 그 얘기는 고려장 얘기였다. 노모를 버리려고 아들은 노모를 지게에 앉히고 집을 떠나 산 쪽으로 걸어간다. 지게에 실린 노모가 웬일인지 꽃잎을 떨어트린다. 깊디깊은 산 속 동굴 앞에 노모를 내려놓자 노모가 말한다. “얘야, 꽃잎을 따라가면 길을 잃지 않을 게다.” 들은 얘기를 글로 옮긴 다음 나한테 엄마는 어떤 사람인가를 썼다. 금방 썼다. 홀가분했다. 등을 구부리고 이마를 앞세우고 다락방에서 내려왔다.
16년 전에 중학교 동창 한 명을 만났다. 중학교를 졸업한 지 20년 만이었다. 그녀가 나를 기억해 내려고 애쓴 끝에 말했다. “맞다! 참기름. 너가 엄마가 참기름병 깬 거 읽었을 때 내가 울었어.” 내가 그녀를 울렸던 중1 때 나랑 그녀는 모르는 사이였다. 3학년 때 한반이긴 했어도 서로 데면데면했다. 그런 그녀가 소환해 준 순간. 다락방 그 밀실에서 태어난 글을 운동장 그 광장으로 가지고 나가 볕 아래 드러낸 순간. 내가 그 날 그 순간에 엄마랑 만나고, 엄마랑 만나는 나를 쳐다보며 그들이 자신들 엄마랑 만났다면야. 내 인생에 그마만한 순간이 둘은 없으니 그 때가 귀하다. 하여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라는 울타리에 그 때 그 순간을 넣어 본다. 곧 오월이다. 그 때 열넷 단발머리 정수리에 부어졌던 햇볕도 오월의 햇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