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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바다 Sep 29. 2023

와이퍼

잊지 못할 물건



  집을 나설 시간에 비디오를 꽂는 폼이 수상쩍더니 여섯 살 큰 아들, 끝내는 내 속을 뒤집는다.

 "나 오늘 학교ㅡ어린이집을 학교라고 한다ㅡ안 가."  

 "안 가면? 집에 혼자 있겠다구? 너 정말 왜 이러니! 얼른 안 일어나? 엄마 학교 늦는단 말야."

  두 애를 차에 태워 35분여 가다가 어린이집에 두 애를 내려 들인 뒤 학교까지 5분쯤 더 가야 하는 출근길에

 ....알았어, 혼자 집 지켜."

 지레 겁에 질려 따라나설 게 뻔하다. '저 혼자 집에 있을 나이나 되면 좋게. 그러면 아침마다 이 난리 없지.'생각하며 신발을 신는데 과연 몸을 일으킨다.

 

  그런데 여느 날과는 다른 선포를 한다.

   "그래도 학교는 안 가. 엄마 따라 엄마 학교 갈 거야." 그러거나 말거나 당장은 두 놈을 차에 실어야 한다. 그게 내 발등의 불을 끄는 일이다.


 여섯 살, 세 살 두 사내 놈을 내 학교 근처 복지관에 맡긴 지 9개월, 여태도 아침마다 끌탕이다.  엄마와 교사라는 두 역할 어느 하나 번듯이 해내지 못한다는 자괴감으로 하루를 연다. 매일같이.

 

 두 아이가 시원스럽게 떠난 아침은 드물다.

그래도 큰애는 작은애보다 덜 애먹였는데  이 아침 왜 이러나, 차에 몸을 싣고서야 이상하다.  비로소 묻는다.

   "왜? 왜 학교 안 가고 싶은 거니?"

   "정문성이 괴롭혀."

 누가 자신을 괴롭힌다는 말이 처음 듣는 말은 아니다.

  "상대를 하지 마."

  "어떻게 안 해? 날 괴롭히는데?"


   그래 맞다. 상대 말라니, 이게 교사인 내가 내릴 처방인가?

 "알았어, 선생님께 말씀 드려줄게."

  "그래도 소용없어."

   쯧쯧 벌써 좌절을 배웠구나.

  "다른 이유는 없지?"

  "밥 천천히 먹는다고 선생님한테 혼나."

  이건 시간이 필요하다. 여길 다니면서 시작된, 저나 나나 선생님 모두의 고민이다,

  시간, 아, 그놈의 시간, 난 어느 새 버럭 소리를 지르고 있다.

 "넌 그게 문제야, 도무지 밥을 씹질 않잖아?"

   복지관에 닿았다. 작은 애는 오늘 따라 고분하다. 제 형이 안 내리려는 데에 아랑곳없이, 절 종일 봐줄 건물에 몸을 들인다.

   '출근부, 자율학습 감독, 교장 교감 선생님에 대한 면목없음.....' 난 초조가 극에 달한다. "빨리 안 내리니? 정말 안 내릴 거야?" 아예 몸을 가로 누이는 녀석을 보면서 더는 안 되겠다 싶어 작은 녀석을 엘리베이터에 태운다. 보육 교사에게 인계한다. 몸을 재게 놀리고 돌아온 차, 여전히 요지부동인 애.

  내 학교로 가는 8분여 간 난 녀석에게 말을 아낀다. 내 직장까지 들러붙는 저 조그마한 애가 아무래도 밉다.

  이윽고 학교에 도착, 난 저절로 냉혹해진다. "원대로 여기 있어. 이 차 안에서 하루종일 있겠다 이거지?"

   그러나 교실에 있는 동안, 직원 회의하는 동안, 나, 영락없이 자석에 빨려가는 쇠막대기 꼴이다. 추울 텐데, 심심할 텐데, 갇힌 데 따른 공포를 제가 어떻게 견뎌 내려나, 나 이렇게 독해서 뭘 얻겠다고.....

  애국조회를 위해 흩어지는 몇몇 교사에게 급기야는 차 안의 내 아이를 들킨다. 난 변명하기조차 힘이 든다. 비참한 기분에 와락 눈물이 구른다. "엄마가 왜 우시는지 아니? 너 복지관에 가야 엄마가 일 하시지." 날 돕느라 차에서 풀려나온 애를 설득하는 동료 교사에게 못내 부끄럽다.눈물 안 보이려 돌린 몸을 바로해 애를 나꿔채듯하여 일단은 학교 밖으로 몸을 빼낸다.

  운동장에는 벌써 학생들이 까맣다.학교 담을 돌려니 애국가 소리가 들린다. 지갑 챙길 정신이 없었던 내 심사를 알 리 없는 애가 풀죽은 소리로 만들어 내는 첫마디. "엄마 돈가스 먹고 싶어." "지금 그거 찾을 때니? 돈도 없고 문도 안 열었잖아. 너를 어째야......" 말끝을 못 맺는다. 자식 아침도 못 먹이는 주제에 무슨....의 자조가 한숨으로 뭉친다. "푸....." 고맙게도 바지 주머니에 동전이 듬뿍 들어 있었다.

  분식집 자판기 앞에 가 선다. 율무를 뽑아주고 난 커피. 공원 의자에 가 앉는다.

  얼마나 기막히게 좋은 아침인가. 이 11월, 그것도 이 초순만이 줄 수 있는 청량감이라니. 조금의 냉랭함이 '쓸쓸'을 주지 않고 '아! 살아봐야지'의 의욕을 주는 이 복된 계절 ㅡ 잎은 잎대로 적당히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고 대지는 대지대로 무르지도 지나치게 견고하지도 않은, 순리를 품으려는 자의 비장미를 떨쳐내고 있는 ㅡ의 복판에 내가, 그리고 나의 분신이 있었다.

  우린 말없이 차를 마셨다. 뜨겁네 맛없네 코코아는 왜 없네의 군소리 없이 녀석도 제 차를 후룩대고 있었다. 그런 녀석이 한순간 가엾다 싶으면서 내 마음은 사정없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좋지? 공기도 좋고 커피 맛도 좋고....."

  그런 걸 너 때문에 다 망친다.'의 심보가 더는 아니었다. 가기 싫은 곳 가지 않을 자유 없는 저 연약한 것이 내 자식이구나의 연민이 커피가 빈속을 훑듯 내 전존재를 관통했다. 그러나 그런들 어쩌랴. 이제 애국가 소리도 멈추고 조회는 중반을 넘어섰는지 사람 말소리가 웅웅 들려왔다. 저 의식이 끝나기 전에 난 돌아가야 하리. 이 아이를 제자리에 돌려 놓고.

  "다 마셨지? 일어나자."

  그새 녀석은 온순해져 있었다. 불과 몇 분 전의 완강함과 오기는 거세되어 있었다.

  그때였다. 마악 몸을 일으켜 몇 발짝 뗀 우리 앞을 한 아이가 가로막고 있었다. 그가 누구인지 알아채는 데는 별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는 여러 차례 학생부를 드나들어 낯이 익은, 소위 학교의 문제아였다. 그는 무료했던가 발 앞꿈치로 흙을 파내고 있었다. 그러다 날 보곤 황급히  동작을 거두고 내게 인사를 해왔다. 두려워하는 듯도 야단을 기다리는 듯도 한 그 눈빛이라니. 아니 아니 그럴 거 없어. 날 봐, 난 지금 선생보다는 너처럼 학교 가기 싫어 버티는 이 애, 이 애의 엄마야. 지금 그래서 이 앨 제 학교에 보내는 길 위에 있는 게 지금의 나인걸.

  "공부 시작 시간 맞춰 들어가려고? 언제가 될지 알 수 있겠니? 시계 있어?"

  뜻밖이었는지 잠깐 놀라는 듯. 그가 히죽 웃으며 하는 말. "교가 들릴 때 들어가면 돼요."

  그를 지나쳐 공원을 벗어나자마자 나, 아들에게 업히라고 했다. 녀석, 무슨 뜻인지 모르는 듯, 그럴 리 없다는 듯, 선뜻 기어오르지 않는다.

 "업혀. 업어줄게."

  몇 년 만인가. 동생 본 뒤론 없었던 일이니. 등이 따뜻해져온다. 화해해야 한다, 아들아. 너와 내가 화해하는 것처럼, 나와 아까 그 형이 서로의 마음을 읽은 것처럼, 너도 지금 네가 선 현실과 손잡아야 한다. 안다. 눈 뜨면서 바로 집을 나서야 하는, 그도 모자라 집밖의 그곳이 규율과 원칙의 그물망인 바, 네가 적응하는 데 이토록이나 힘이 든다는 것. 직장인 엄마 둔 대가를 이렇게 남다르게 치르고 있다는 것, 왜 모르겠니. 하지만 아까의 형이 네 몇 년 뒤의 모습이길 나 바라지 않는다. 그 형을 이해한다만 그런들 별수없는 게 우리 현실이니까. 부대끼고 깎이면서 세상과 악수하는 거야. 쉽게 맞잡을 수만은 없는 게 내가 살고 네가 사는 여기 이 세상인 거야.

  20여 분 업는다 걸린다 해서 되돌아온 복지관.

  "어떻게 해요? 어머님 속상하시겠어요...현민아, 어서 어머님께 인사 드려야지."


  녀석을 떨구어내고 혼자 걷는 길. 자꾸 서럽다. 이게 뭐냐고, 이게 뭘 위한 갈라섬이냐고......이렇게 돌아가 내가 마주할 이들은 또 누군가? 황야에서 서성대는 외로운 짐승의 형상으로 다가왔던, 공원에서 교가를 기다리던 아까의 그가 아니겠는가. 여럿의 그들을 나, 무슨 힘 있어 위무하고 정착시킬 텐가 말이다.


  조회는 끝나 있었고, 난 천연덕스러워지고  있었다. 수업에 열중하지 않는 학생들을 질책했고, 학교라는 괴물에 길들여지지 않는 이들을 한심해했다. 제거되지 않는 자유분방함으로 주변을 성가시게 하는 인물을 마음으로 포기하는 일에 지쳐하지도 않았다.

일과가 끝났다. 아이들을 데리러 갈 시간이다. 차에 올랐다. 시동을 걸자 느닷없이 와이퍼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순간 몸에서 힘이 주욱 빠졌다.

녀석이 이 아침, 제 학교 대신 선택한 이 공간에서 얼마나 외로웠으면 이걸 다 건드렸을까....   


  얼마를 그러고 있었다. 차창 밖의 하늘은 맑기만 했다. 해거름을 앞둔 얼굴일 뿐 비 기운은 없었다.


                                            <1995년도 11월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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