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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재미 Dec 27. 2021

프롤로그 : 주린이에서 수린이로 거듭나기

'수익 내는 주린이'가 되고 싶어요

2020년은 바야흐로 부린이, 코린이, 주린이 온갖 종류의 X린이가 넘쳐나는 시대였다. 

특히 진입장벽이 상대적으로 낮은 주식시장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 역대급 호황기를 맞았고, 유행처럼 너도 나도 주식 투자를 시작했다. 그렇게 팬데믹 이후 불어 닥친 주식 열풍은 우리의 일상에 빠른 속도로 스며들었다. 20-30대 직장인들은 동학 개미 서학 개미 할 것 없이 눈만 마주치면 ‘이번에는 얼마를 벌었다, 이 정도면 회사 관두고 전업 주식해야겠다’는 둥 각자의 주식 영웅담(?)들을 풀어나갔다. 

나는 대화에서 주식 이야기들이 오고 갈 때마다 3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몰라도 알아듣는 척) 고개를 끄덕이고 물개 박수로 호응했다. 이쯤 되면 아무리 돈에 관심 없는 사람이래도 주식이라는 ‘대세’에 편승하기 마련인데, 나는 좀처럼 주식에 관심이 가지 않았고, 끝까지 주식을 하지 않았다. 


나는 찐 ‘주식 비관론자’다. 아니 ‘비관론자’였다.(과거형) 바야흐로 10년 전, ‘경영학 전공자라면 주식을 해봐야 하지 않겠어?’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전 재산 60만 원을 주식에 몰빵 했다. 나름 인터넷 커뮤니티와 뉴스 기사를 검색해서 유망하다는 기술주 2개를 찾았고, 30만 원씩 ‘분산투자’를 했다. 

시작은 좋았다. 내가 사자마자 2개 중 한 개의 종목이 하루 30%씩 연일 상을 치더니 수익률이 순식간에 100%까지 치솟았다. 나는 한 달 치 주말 알바비를 고작 일주일 만에 벌 수 있었다. 

아, 물론 이 모든 것은 수익률이 100%를 찍었을 때 전량 매도를 했다는 가정으로 하는 말이다. 


2개월 뒤, 내 주식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두 종목 모두 ‘상장폐지’ 되었다. 

이건 정말 실화다. 

‘수백수천 가지가 넘는 종목 중 작전주 2개를 고른 것도 신기한데, 상장폐지라니…’ 

매주 주말마다 시급 4천 원을 받으며 하루 12시간씩 서빙을 했는데…. 그렇게 어렵고 힘들게 번 내 돈 60만 원이 순식간에 0원으로 증발하는 것을 보며, 종목 토론 방에 ‘한강 간다’는 개미 동지들의 슬픈 외침을 보며, 이런 생각을 갖게 되었다.


 ‘주식투자란? 매우 위험한 것, ‘똥손’인 나는 더더욱 하지 말아야 할 것(2010년 8월)’ 


지금 생각해보면, 다분히 왜곡된 신념에 가깝다. 

주식 투자가 위험한 것도 있지만, 10년 전의 내가 위험한 종목(동전주)을 매수했던 것이고, ‘똥손이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보면 마치 주식 투자를 가위바위보나 제비뽑기처럼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내 인지적 오류를 인지할 능력이 없었고, 팬데믹 이후 일생일대의 기회의 장에서도 10년 전에 형성된 신념을 고수하며 주식투자를 하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이 얼마를 벌었다고 자랑할 때에도, ‘잃지 않는 (저축)투자’ 중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고, 그렇게 나의 오래된 신념을 강화해갔다. 



#주식(宙食)이라 쓰고 ‘주식’이라고 읽는다.


그랬던 내가, 누구보다 확고하게 ‘주식 비관론자’였던 내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을 보면, 현재에는 주식에 꽤나 진심인 사람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평생 주식시장에는 발도 들이지 않을 것 같았던 ‘찐 주식 비관론자’가 오랫동안 고수하던 신념을 수정하면서까지 ‘주식’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자발적 의지로 개미투자자의 길을 선택한 이유는… ‘가난’ 때문이었다. 


나는 2020년 12월 31일에 8년간 근무했던 회사에서 갑작스럽게 퇴사했다. 

퇴사를 하고 첫 번째로 했던 일은, 퇴직금을 포함하여 내가 가진 총자산이 정확히 얼마인지 계산하는 것이었다. 계산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총합계’ 칸에 적힌 숫자, 그 ‘결과값’이 너무 초라해서 오랫동안 지켜봤을 뿐이다. 

분명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남들보다 몇 배 많은 시간을 ‘노동’에 투자했고, 그 흔한 명품가방 하나 사본 적이 없는데, 서울에서 먹고 자며 생활한 것 외에는 딱히 과소비라고 할 만한 것들이 없었는데, 내가 가진 돈은 정말 보잘것이 없었다. 물론 돈이 많고 적음은 상대적인 것이지만, 이 돈으로는 당장 내가 사는 동네에 몸뚱이 하나 뉘일 전세방조차 구하지 못하는 게 작금의 현실이었다. 열심히 회사생활을 했지만, 투자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순식간에 투자를 했던 사람들보다 가난해져 버린 것이다.  


20대와 30대 초반에 성실히 일했던 대가가 매우 처참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니, 돈에 대한 생각과 태도, 신념도 완전히 달라졌다. 조금 과장된 표현이지만, 이렇게 살다 가는 집이 없어서 얼어 죽거나, 먹을 게 없어서 굶어 죽을 것 같다는 생존의 위협까지 느꼈다. 

이러한 위기감은 나를 자연스럽게 주식의 세계로 인도했다. 

나는 그렇게 ‘주(宙)’와 ‘식(食)’이라는 서울살이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식’을 시작했다. 



#. “마지막 비관주의자가 낙관으로 돌아설 때 주식시장은…”


2021년 1월 4일, 나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 ‘퇴직금’을 들고, 주식의 세계에 입문했다. 

처음 시장에 진입했던 1월 초에는 한국 시장과 미국 시장 모두 분위기가 좋았다. 

일단 뭐든 사놓고 기다리기만 하면, 마치 번호표를 뽑고 순번을 기다리듯 순서가 돌아왔고, 삼성전자나 현대차 같은 클래식 우량주부터 이름 모를 중소형주들도 연일 상한가를 찍었다. 

코로나 이후 처음 주식 투자를 시작한 개미들은 어느새 20-30%씩 오르는 비현실적인 그래프에 익숙해졌고, 모두가 한마음 한 뜻으로 ‘한방’을 기대하며 투자금액을 늘렸다. 이 모든 게 처음이었던 나는, 그저 주식 세계의 용자(용감한 사람)들을 관전하는 것만으로도 새롭고 흥미진진하게 다가왔다. 


나는 남들보다 뒤처진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하루 5시간의 최소 수면시간을 제외하고 매일 주식 투자에 매진했다. 처음에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무엇을 공부해야 할지 몰라서, 가장 접근이 쉬운 ‘유튜브’ 영상이나 주식 카페를 참고했다. 그렇게 남들이 추천한 종목들을 하나 둘 사 모았고, 내 순서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2월 중순쯤 되자, 시장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이제 내가 샀던 종목들이 오를 순서라고 생각했는데, 차트의 방향이 기대와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라? 좀 이상하다? 분명 사람들이 유망한 성장주라 몇 배 더 오른다고 했는데… 얘 왜 이러지?’ 


이름하여 ‘하. 락. 장.’

REAL 매운맛, 제대로 된 하락장이 찾아온 것이다.  

그렇게 주린이 인생 1개월 차에 날카로운 조정의 칼날이 주식 시장을 덮쳤다. 

조정의 칼날은 마치 지옥의 사자들처럼 거품이 잔뜩 끼어있던 중소형주/성장주들을 순식간에 마구 찍어 누르며 후드려 팼다. 빨간 그래프가 불기둥처럼 치솟는 동화 같은 결말을 기대하고 매수 버튼을 눌렀건만, 현실은 바닥이 어딘 줄 모르고 곤두박질치는 시퍼런 막대기(장대 음봉)만 가득했다. 


2월 16일에 시작된 하락장은 3월 8일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거래일 15일 만에 나스닥100 지수는 약 11% 하락했고, 120일 이평선을 2번 터치한 후 상승국면으로 전환했다. 그 당시 -30,40%씩 두드려 맞은 대다수의 중소형 성장주들은 과거의 영광(전고점)을 회복하지 못하고 여전히 바닥에서 횡보하고 있다. 


마지막 비관주의자가 낙관으로 돌아설 때가 비이성적인 시장이 제자리를 찾아오게 되는 변곡점이다. 그 시그널을 포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변곡점에 다다르는 타이밍을 분별할 수만 있다면, 버블의 올라타서 마음껏 수익 실현을 해도 좋다. 그것을 판단하는 능력이 냉정한 소수에게만 있다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     도서 '디앤서' 中, 저자 뉴욕주민 -  


2월의 하락장은 주식 광풍 속에서 일단 사기만 하면 무조건 벌 것이라는 개미 투자자들의 집단 최면 상태를 한순간에 붕괴시킨 사건이었다. 

어쩌면 정말 주식에 비관적이었던 내가 ‘낙관주의자’로 돌아섰던 그때가 비이성적인 시장이 제자리를 찾아오는 변곡점이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시각으로 1월의 주식 시장을 다시 떠올려보면, 이상해도 너무 이상했다. 실체가 없는 스팩주와 듣보잡 페니주식(동전주)이 이유 없이 하루 +30~100%씩 급등했고, 아직 현금을 창출해내지 못하는 중소형주들도 기대감만으로 PER 100,200의 프리미엄을 받으며 비싼 가격에 거래되었다. 

일단 뭐든 사놓기만 하면 올라도 너무 잘 오르고, 오르는 것의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거품 끝판왕 장이었다. 


이러한 시그널은 모두 버블의 ‘끝’을 알리는 변곡점이었다. 

시장은 몇 차례 시그널을 보냈지만 나는 주린이 1개월 차라 의미 있는 신호들을 알아차리지 못했고, 하락장의 몽둥이를 온몸으로 두드려 맞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주식 입문기에 큰 하락장을 경험했던 것은 인생을 길게 봤을 때 엄청난 행운이었다. 

만약 나도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직후에 주식 시장에 입문하였다면, 거품장의 ‘운빨’을 내 실력이라고 착각하는 우를 범했을 것이고, 그때의 투자 습관을 버리지 못해서 21년에 큰 손실을 입었을 것이다. 

주식 투자 1개월 차에 시장의 거품이 꺼지고 돈이 삭제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주식 투자의 위험성을 인지하게 되었고, (다른 사람의 추천이 아닌) 나만의 투자 원칙과 투자 스타일, 투자 종목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 왜 이 글을 쓰고 있는가? 

나는 올해 주식투자를 시작하며 세웠던 목표를 달성했다. 

‘수익 내는 주린이(수린이)로 거듭나기’ 


11월까지의 실현손익을 정산해보니, 투자금 약 1750만 원을 792% 회전하여 48.32%의 수익을 실현했다.

장기투자 종목은 매도하지 않았으므로, 스윙투자로만 벌었던 수익이다. 

결과만 놓고 보면 내가 가진 실력에 비해 월등히 뛰어난 수확이다. 


이러한 성과를 낼 수 있었던 원동력의 9할은 주식 시장이 (변동성은 컸지만) 여전히 역대급 호황이었던 덕분이고(운), 단지 1할만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술에 취한날에도, 여행을 가서도, 하락장에서도 매일 시장의 동향을 살피고, 지난날의 실수와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트레이딩을 일지를 작성했던 ‘꾸준함’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수익률만 보면 아름다워 보이지만, 주린이의 주식 투자 여정을 자세히 뜯어보면 온갖 실패와 삽질, 시행착오가 난무하는 시간이었다. 과거에 내가 저지른 실수/실패를 다시 복기하면, 너무 미숙하고 멍청해서 얼굴이 뜨거워질 지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부끄러운 경험을 글로 남기기로 결심했다. 


부디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주린이 동지들이, 내 실패 경험을 타산지석 삼아 주식 투자의 금전적/정신적 손실을 최소화하고, 자신에게 잘 맞는 투자 스타일과 원칙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이 책에는 ‘종목추천’? 그런 것은 없다. 나는 주린이라 추천할 만한 능력도 안되고 감히 종목의 주가를 예측하고 추천하는 것이야 말로 주식투자에서 가장 위험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특정 종목에 대한 견해를 피력하는 것은 개인의 독립적인 판단을 방해하는 소음이라고 생각하기에 ‘개별 종목’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을 것이다.  


밸류에이션? 재무제표? 차트 보는 법? 이런 내용도 거의 없다. 기업의 펀더멘털 분석(재무제표 등), 모멘텀 투자(차트 등)와 관련된 도서는 이미 시중에 많이 있고, 주린 이인 내가 잘 쓸 수 있는 주제도 아니다. 


그럼 어떤 내용이 들어가 있는가? 

주린이로서 지난 1년간 직접 구르며 경험한 다채로운 실패와 성장의 이야기들을 담았다. 같은 주린이의 시선에서 주린이의 언어로, 주린이가 알아야 할 기본 용어, 자주 하는 실수와 인지적 오류, 주식 투자를 대하는 태도, 나에게 잘 맞는 포트폴리오 구성, 리스크 관리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부디 ‘주식’ 이 어렵고 재미없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주식의 매력을 느끼고, 수린이(수익 내는 주린이)로 거듭나실 수 있기를 응원한다. 


그리고 나 역시도 이 글을 쓰는 과정에서 내가 세운 투자 철학과 원칙을 다시 한번 새기고, 내년에도 앞으로도 계속 수린이(수익내는 주린이)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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