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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재미 Jan 05. 2022

주식의 가격은 가치를 반영한다?

나의 애틋했던 첫 주식, 이항(EH)

기업에서 강의를 하다 보면, 교육생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있다.


‘성공 사례를 알려주세요.’


사람들은 누구나 성공사례를 듣고 싶어 한다.'성공 사례'는 마치 타인의 성공 방정식을 똑같이 모방하면 나도 같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심어준다.

그래서 유튜브나 강연, 방송도 주로 타인의 ‘성공담’에 초점을 두고 콘텐츠를 생산한다.


하지만 성공 사례에는 한 가지 맹점이 있는데,

타인의 성공 사례는 이미 과거의 데이터라는 점이다.

나와 다른 사람이 과거 시점에 어떠한 시도를 통해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한들, 그 결과가 만들어지기까지의 이면에는 ‘운’과 ‘타이밍’,  ‘상황’과 ‘맥락’이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래서 현재 시점에서 타인의 성공 사례만 보고 모방을 시도할수록, 나의 기대와는 다른 결과가 야기되는 것이다.


타산지석[他山之石] 다른 산에 있는 돌이라 해도 나의 옥을 가는 데 큰 도움이 됨.
즉 다른 사람의 사소한 언행이나 실수라도 나에게는 커다란 교훈이나 도움이 될 수 있음.


나는 타산지석의 관점에서 나의 ‘실패 사례’가 ' 성공사례'보다 유용한 교훈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새롭게 주식시장에 입성하는 주린이 동지들이 나와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가장 대표적인 실패 사례 4건을 글로 정리했다.

이 모든 실패담은 나의 과거이자 누군가의 현재이며 머지않아 펼쳐질 미래의 이야기가 될지도 모른다.

그 미래에 다시는 내가 있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담아 첫번째 실패 에피소드를 작성해본다.




누구에게나 첫 주식이 있다.

마치 첫사랑처럼 애틋하고 소중한 첫 주식, 나의 첫 주식은 ‘삼성전자’와 중국의 드론 회사 ‘이항(EH)’이었다.

국내 주식 시총 1위 '삼성전자'에 비해, '이항(EH)'은 너무 듣도 보도 못한 회사처럼 들릴 것이다.

두 종목 사이에 너무 이질감이 크다 보니, ‘어떠한 근거로 매수를 결정했는가?’ 질문을 받기도 했는데, 그 당시에 이유는 하나였다.

‘가장 핫해서’



2020년 12월 당시 유투버들은 하나같이 삼성전자를 ‘10만전자’라고 찬양했고, 미국 주식 카페에서도 ‘이항’을 추천하는 글들이 하루에도 몇 개씩 올라왔다.

나는 그렇게 남들의 말을 믿고, 미국 증시에 많고 많은 선택지 중에서 굳이 중국기업 ‘이항(EH)’을 첫 주식으로 매수했다. (이항은 중국에 있는 '드론' 회사)


그런데 정말 신기했다.

이런 걸 초심자의 행운이라고 하는 것인가?

이항은 내가 처음 주식을 매수하자 마자 연일 상한가를 쳤고, 이틀에 한번 꼴로 +20~30%씩 상승하며 불기둥처럼 솟아났다.

어느 날에는 이유도 모른 채 50%씩 오르기도 했다.

1월~2월 12일까지의 이항(EH) 주가 그래프/각도가 거의 수직에 가깝다


나는 12월 마지막 주에 이항을 매수하고, 매일  기쁨의 나날을 보냈다.

주식이 처음이라 ‘미국 주식은 원래 이런가 보다. 이렇게 잘 고르면 몇 백 프로씩 순식간에 오르나 보다. 사람 보는 눈은 없지만 주식 보는 눈은 있나 보다’ 혼잣말을 되네이며 승리에 취해있었다.


첫 주식이 이렇게 잘 올라주니,  '주식에 소질이 있는 것인가' 자만에 취해있었고,

여기저기 유튜브에서 들은 정보를 조합하여 절친에게 이항(EH)을 강력 추천했다.

그 후로도 잘 올라준 이항 덕분에 친구에게 감사인사를 받으며 어깨가 우쭐해지기도 했다. 

사실 나를 포함한 개미투자자들은 이항이 왜 하루 만에 20%, 30%씩 오르는지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이항을 추천했던 유투버도 ‘어떤 호재가 있어서 오른다기보다는, 좋은 기업을 반보 앞서 알아본 덕분에 그 혜택을 보는 것이다(?)’라는 모호한 코멘트만 남겼을 뿐이다.


산지 2주 만에 수익률이 100%를 넘어갔을 땐, 살짝 불안하기도 했다.

‘팔아야 하나?’ 주말 내내 고민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쉴 새 없이 오르는 급등주 앞에서 이러한 정상적인 사고는 순간의 찰나에 불과했다.


이항이 너무 잘 올라주니 미국 주식 카페와 이항을 추천한 유투버의 댓글창은 점점 이항 팬클럽 회원들로 가득 다.

네이버 카페에서는 ‘너무 비싼 가격은 없다. 계속 오를 것이다. 3년 장투다’와 같은 여론이 집단적으로 형성되었고, 그 후로도 주가가 매일 10%~20%씩 연이어 상승하는 현상이 계속되자 상승 초입에서 느꼈던 불안감은 금세 자취를 감추었다.


종교 수준의 찬양과 합장은 한 달 이상 계속되었다.

연일 이항 덕분에 차를 뽑았다는 둥 집을 샀다는 둥 수익 실현 인증 글이 올라왔다.

그렇게 네이버 카페의 서학 개미들은 모두가 한마음 한 뜻으로 ‘백항’(백 달러 이항)을 꿈꾸며 ‘영차 영차’를 외치고 있었다.그리고 그 거대한 무리 속에 '영차'를 외치던 한명이 바로 ‘나’였다.

 

내 첫 주식 이항은 매수한 지 한 달 반 만에 수익 300%를 달성했다.

나는 워렌버핏의 장기투자(가치투자) 이론을 갖다 붙이며 수익률이 300%를 넘을 때까지 매도하않았다.

내 첫 주식과의 이별이 아쉬웠던 것인지, 다시는 보지 못할 세 자릿수 수익률이 포트폴리오 전체를 지탱해주는 것처럼 든든했던 것인지,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인 이유로 차마 ‘매도’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2021년 2월 16일, 설 연휴가 끝난 후 전업주식러(?)로서 어김없이 월요일 미국 주식 시장의 동향을 살폈다. 왠지 그날은 이항(EH) 주식을 전액 매도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날도 이항을 팔지 못했다.

마침 그날 미국 10년물 채권 금리가 반나절만에 7% 오르며 이항을 포함해 기대감만으로 오른 중소형 성장주들이 빌빌대고 있었고, 전날보다 10% 하락한 가격으로 이항(EH)을 파는 게 왠지 손해 보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장 마감 1시간 전, 새벽 4시쯤에 잠자리에 들었다.

그 순간이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찬스였는지 모른 채, 한 시간 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쿨쿨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아침 9시쯤 눈을 떴는데, 이상하게 싸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휴대폰을 확인했다. 새벽 6시경, 함께 백항을 외치던 친구의 부재중 전화가 찍혀있었다.


‘우리가 아무리 친하다지만, 새벽 6시에 통화하는 사이는 아닌데 무슨 일이지?’


나는 다급하게 친구의 카톡을 확인했다.


‘언니, 이항은 완전 사기였어ㅠㅠ’  


응???????무슨 말이야???? 사기라니???????


나는 그제서야 증권사 어플을 켜서 이항의 차트를 확인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대학생 시절 두 번의 상장폐지를 경험했지만, 살다 살다 저렇게 시퍼런 음봉을 본 적은 없었다.

그것도 내가 산 종목이 이런 이상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니, 나는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확인해보니 내가 잠들어있던 사이, ‘울프팩 리서치’라는 기관에서 중국기업 이항의 공매도 리포트를 공개했고, 이항의 공장 생산이나 매출이 허위라는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리포트의 내용인 진실인지 거짓인지에 대해서는 중요하지 않았다.

급등주에 올라타서 대박 행진을 기대했던 비이성적인 개미 투자자들은 공매도 리포트가 나왔다는 사실 만으로도 물량을 마구잡이로 내던질 이유가 충분했다.


그렇게 2/16일 한국시간 새벽 5시. 한국인들이 깊은 잠에 빠져 있어 손쓸 수 없었던 이른 새벽, 이항의 주가는 -63% 하락했다. 장 마감 직전, 불과 한 시간 사이 일어난 일이었다.


그날 ‘미국 주식에 미치다’ 카페는 흡사 ‘이항 비상 대책 위원회’의 모습을 띄고 있었다.

함께 백항을 외치던 동지들은 각자의 손실을 공유하며 서로를 위로했고, 눈치없이 ‘이항, 내가 그럴 줄 알았다’며 뒤늦게 떠드는 껄무새들에게 대적하며 힘겨운 하루를 함께 견뎌냈다.  


나는 하루 밤 사이에 수익률 300%를 고스란히 반납했다.

지난 차트를 곱씹으며 ‘이때 팔걸’ 하고 미련을 떠는 짓은 아무 소용없는 일이었다.

일단 내가 가진 물량을 다 털어내는 것이 현재 나에게 주어진 시급한 과제였다.

결국 프리장이 열리자마자, 아무도 사지 않으려는 이항 주식 20주를 한 주 한주 정성스럽게 분할하여 전량 매도하였다. 100만원 남짓의 주식을 파는데 꼬박 2시간이 걸렸다.


냄비처럼 뜨겁게 타올랐던 나의 첫사랑, 아니 첫 주식 이항(EH)은 2/17일 밤 저녁 11시 30분경 완전히 내 손을 떠나갔다.

3개월 남짓의 기간동안 매일 나를 웃게 했던 너, 한때는 너를 보는 게 달달해 미칠 것만 같았는데 하루아침에 내 마음은 맵고 짜게 식어버렸다.

 

그리고 급하게 오를 때는 보이지 않았던 진실이 급하게 떨어진 후에야 비로소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다음은 내가 첫 주식 ‘이항’의 실패 이후, 트레이딩 일지에 적었던 내용이다.


‘이항(EH)’이라는 기업의 펀더멘탈(매출, 순익 등)을 고려했을 때, 애초부터 125달러라는 주가는 말도 안 되는 가격이었다. 이항이라는 기업이 '사기'이든 아니든간에 주가의 하락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야후 파이낸스로 이항의 매출, 매출 대비 시총, 순이익률, 유통 주식수, 기관 보유율 등 기본적인 숫자만 쓱 훑어봤더라면 이항의 급등(3개월간 1300%)이 매우 비이성적인 과열이라는 것을 누구라도 감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따금씩 그 숫자를 확인했음에도 그 숫자의 의미를 읽어내지 못했다.

이미 급등 열차에 올라탄 후였기에 기업의 적정 주가나 기업 가치에 대한 개념을 완전히 상실했던 것이다.


비합리적인 판단에 자기 확신까지 더해진 개인들이 주식시장의 다수를 차지하기 시작하면 심각한 경우 집단적 광기로 이어지기도 하고, 이로 인해 특정 주식 가격이 터무니없이 상승하기도 한다.

집단적 과열은 생각보다 쉽고 빠르게 형성된다. 시장 가격이 자산가치와 분리되어 버블 구간에 진입하는 순간 모두들 약속이라도 한 듯 그 열기에 합승하며 돌연 자유시장주의자가 되기 시작한다.
남들이 버블에 올라타 있을 때 나만 빠져 있으면 마치 나날이 부자가 되는 주변 사람들을 지켜봐야만 하는 패배자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버블에 동승하면 더이상 '가치'나 '투자'와 같은 개념은 의미를 상실한다. 이 버블은 절대 깨져서는 안 된다고 믿고, 그 방향으로 매매를 계속한다.

상황이 좋을 때 사람들은 현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는 근거 없는 긍정론에 사로잡혀 상승하는 자산 가격에 가속도를 붙인다.
‘너무 높은 가격은 없다’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하면 버블이 확실하다는 증거다.

- 출처 :  디앤서, 뉴욕 주민 저 -


나는 그날의 이항(EH) 사태로 한 가지 중요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가격은 가치를 반영한다.


[교훈]가격이 가치에 반영되는 시점이 언제일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결국 ‘가격’ '가치’를 반영한다.

기업의 펀더멘털(가치)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 급하게 오른 종목은 급하게 하락하며 적정 가격을 찾아간다.

가격이 가치를 추월하는 순간, ‘버블’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 버블은 언젠가는 꺼지게 되어있다. 이성적인 투자자라면 버블의 끝이 오기 전에 버블임을 인지하고 ‘매도’ 버튼을 누를 수 있어야 한다.

주식의 가격은 매수 판단의 근거가 되지 않는다. 과거에 잘 올랐던 주식이 앞으로도 잘 오를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오르는 가격을 보지 말고 기업의 가치(펀더멘털)를 보고 투자하자.


[나의 원칙] 그리고 이러한 배움을 토대로 나만의 주식투자 원칙을 하나씩 구축해갈 수 있었다.  

 중국 주식은 사지 않는다. 가타부타 설명할 필요도 없다. 그냥 중국 주식은 절대로 매수하지 않는다.

급등하는 종목/지나치게 과열된 종목에는 올라타지 않는다. 만일 운 좋게 미리 올라타 있었다면 반드시 내려올 적기를 고민하고 빠르게 실행에 옮긴다. 매수는 기술이고 매도는 예술이다.

 장기투자가 반드시 답은 아니다. 아직 현금을 창출하지 못하고 펀더멘털이 갖춰지지 못한 소형주에 장기투자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주식 유통물량이 적고, 기관 투자자 보유율이 낮은 주식은 사지 않는다. (주식 유통물량이 적다는 것은 변동성이 크고, 이로인해  작전주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기관들이 보기에는 찜찜한 점이 많았던 것인지 이항의 미국 기관투자자 비율은 0%였다. 잘 오르는 주식임에도 기관들은 이항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그렇게 나의 첫 주식 ‘이항’은 평생 잊지 못할 강렬한 추억(?)을 남기며 내 기억 속에서, 시장의 관심 속에서 사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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