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재미 Jan 12. 2022

주식 유투버를 믿으시나요?

주식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남의 말'만 듣고 투자하는 것이다

여러분은 지금 주린이들이 처음 주식에 입성하여, 주식에 푹 빠져들고, 패기롭게 주식에 투자했다가, 시간과 돈, 감정을 낭비하는 대표적인 실패의 패턴을 보고 계십니다.

오늘은 주린이들이 처음 주식 공부를 할 때 자주하는 실수와 경계해야 할 '남의 말'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주식 투자를 하고 싶은데, 당장 무슨 공부부터 시작해야 할까?’


8년 동안 직장인들을 위한 교육 커리큘럼을 설계하고 가르치는 일을 해왔는데, 막상 회사 밖으로 나와서 주식 공부를 하려고 보니 뭘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나는 우선 내 인생의 첫 번째 주식 책을 사기 위해 서울에서 가장 큰 서점으로 갔다. 교보문고 광화문점 매대 위에는 ‘주식’ 단어가 적힌 수십 권의 책들이 펼쳐져 있었고, 하나 같이 ‘이 책을 읽으면 주식투자로 누구나 돈을 벌 수 있습니다’라며 주린이인 나를 향해 손을 뻗고 있는 것 같았다. 온통 거기서 거기 같은 수십수백 권의 주식 책 더미에서 한 권의 책을 고르는 데에만 꼬박 한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2021년 1월, 내 첫 주식책을 펼쳐서 대학생 시절 재무관리 시험공부할 때보다 더 열심히 재무제표 읽는 법을 공부했다. 학교 다닐 때는 ‘남의 회사 재무제표가 앞으로 내가 먹고사는데 왜 필요한가?’ 필요성에 공감하지 못했던 탓에 흰색은 종이고 검은색은 글씨겠거니라는 마음으로 대애충 공부했다.

그런데 이제는 투자에 대한 절실함 덕분인지, 그 어느 때보다도 열심히 형광펜으로 밑줄을 긋고, 중요한 내용을 필사하며 주식 투자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다.


그런 나를 지켜보며 옆에 있는 친구가 한마디 툭 건넨다.

“요즘 누가 책으로 공부해. 주식은 유투브로 공부하는 게 훨씬 쉬어.유투버가 추천해주는 종목을 사면, 며칠 안에 올라.”


어? 유투버? 나는 책을 덮고 친구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그래 맞아,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주식인데, 이 속도로 공부해서 언제 투자하고 언제 돈 벌어서 경제적 자유를 이루겠어…’

나는 이미 퇴사를 했고, 현금 흐름이 말라버린 상황에서 당장 빠르게 돈을 벌기 위한 지름길이 필요했다.

그때부터 책을 덮고, 국내/해외를 막론하고 유명하다는 주식 유투버들을 모조리 구독했다.

그리고 하루에 적게는 2시간, 많게는 4-5시간씩 한 달 내내 주식 유투버를 시청했다.

주식 알못인 그 당시에는 주식 시장이 어떤 원리로 돌아가는지 아무런 지식도 경험도 없었기에, ‘주식으로 유투버 해서 몇십만 명 팔로워를 모을 정도면, 이 분야의 최고 전문가겠지’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나는 그렇게 매일 주식 전문가들의 유투버 영상을 보는 것으로 주식 공부(?)를 시작했다.

유투버는 주린이인 나를 위해 친절하게 ‘10년 후 10배 오를 종목’, ‘이번 주에 오를 종목’를 소개해주었고,

나는 연일 ‘좋아요’,'구독' 버튼을 눌러대며 그들의 충성고객, 아니 팬을 자처했다.

영상의 패턴은 대부분 특정 종목들을 소개하고 ‘유망하다’, ‘지금이 바닥이다’, '오를 것이다'와 같은 희망적인 말들로 개미들의 주식 소비욕구를 뿜뿜 자극했다.

한 달 사이 30명이 넘는 주식 유투버들을 구독했고, 몇몇개는 월 정액제의 유료 멤버십까지 가입했다. 맨날 주식 영상만 보니, 내 유튜브 알고리즘의 99%는 온통 주식 관련 영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그렇게 매일 최소 4-5개가 넘는 주식 유투브 영상을 보며, 주식 유투버들의 말을 듣는데 시간을 쏟았다. 나는 이게 주식 공부라고, 지금 나는 열심히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주식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라고 믿었다.


프로테라(전기버스), SOFI(핀테크), 스킬즈(게임 플랫폼), 드래프트킹스(온라인도박), C3AI(빅데이터), 팔란티어(빅데이터), 오픈도어(부동산 거래 플랫폼), 핀터레스트(SNS), 이항(드론), 도큐사인(전자서명), 레몬에이드(AI 보험사), 씨그룹(동남아의 아마존), 나노디멘션(3D프린팅), 벨로다인(자율주행 라이다)


아마 미국 주식을 하지 않는 한국인들이라면 생전 처음 들어보는 기업일 것이다.

나도 그랬다. 유투버가 말하기 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경험조차 할 수 없는 기업들이다.

주식 유투버들은 꼭 한국인들이 잘 아는, 이를테면 마이크로소프트/애플 같은 종목의 추천 영상은 올리지 않았다. 한국인들이 잘 알지 못하는, 한국에서 사용할 수 없는 숨은 기업을 발굴하여 종목 추천 영상을 찍어냈다.

그리고 유투버의 종목추천 영상만 보면, 그 기업들은 모두 미래가 유망하고 창창해 보였다. 주식을 당장 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고, 사두면 무조건 다 오를 것 처럼 보였던 것이다.

알면서도 안 사는 것은 왠지 기회를 날리는 것 같아서, 나는 뭐에 홀린 듯 한 달 만에 14개 산업/14개 종목을 매수했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주린이의 실수, ‘백화점식 포트폴리오’를 구성한 것이다.

그렇게 주식을 시작한 지 고작 며칠 만에 나는 내 퇴직금 전액을 주식에 올인했다.




한 달이 흘렀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유투버의 추천 영상만 보고 매수했던 주식의 수익률은 0%로 수렴했다. (정확히는 0.5% 정도..?)

오르거나 떨어지는 것이 보통인데, 어떻게 평균 0%대의 수익률을 기록할 수 있었는가?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1. 유투버 추천 영상 보고 매수했던 종목은 내가 공부한 산업/기업이 아니다. 내가 잘 아는 산업/기업이 아니다 보니, 주가에 영향을 주는 새로운 정보(변수)들이 발생했을 때 제대로 팔로업을 할 수 없다.
그 새로운 정보가 기업의 주가에 어떠한 영향을 줄지, 정보가 해당 종목 주가에 미치는 파급력은 어느 정도일지, 일시적일시 지속적일지 스스로 판단할 수 없었다.
2. 다른 사람(유투버)의 추천만 믿고 샀던 종목이니, 기업에 대한 얄팍한 믿음만 갖고 해당 종목을 계속 보유하기에는 불안감이 너무 컸다.
3. 밤마다 주식창을 쳐다보고 있다가 해당 종목의 주가가 떨어질 것 같은 상황이 연출되면, 무서워서 홀라당 ‘매도’ 버튼을 눌렀다.  
4. 가끔 물려 있어서 팔지 못하는 종목들도 있었지만, 목이 빠져라 탈출 기회만 노렸다. 뚫어져라 쳐다보니 운 좋게 한두 번의 탈출 기회가 주어졌고, 내 매수 평단가에 가까워지면 바로 팔아버렸다.


이렇게 약 한 달 동안 거의 미친 사람처럼 유투브를 보고 샀다 팔았다를 반복했고, 0%대의 수익률을 기록할 수 있었다.

똔똔처럼 보이지만, 내가 주식에 투자한 시간과 증권사 수수료 수십만 원을 생각하면, 낭비도 이런 낭비가 없었다. 시간 낭비, 감정 낭비, 돈 낭비. 3박자가 완벽하게 어우러진 삽질이었다.


나는 매일매일 내 삽질의 향연을 꾸준히 일기로 기록했고, 일기장이 한 장 한 장 쌓일때마다 내 주식 투자 방식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을 자각할 수 있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비교적 빠르게 파악한 덕분에, 유투버의 추천을 듣고 매수했던 14개 종목 중 12개 종목을 모두 팔고 포트폴리오를 재정비할 수 있었다. (2개 종목은 손실률이 너무 커서, 아직 탈출구를 찾지 못했다...)



불행 중 다행이었을까?

위에 나열된 유투버의 추천 종목들은 연초 추천했던 시점으로부터 지금까지 평균 -50~70% 하락했다.

2020년에는 코로나 거품장으로 유투버의 추천 종목이 오르거나 떨어질 확률이 반반에 가까웠다면, 불과 1년 사이 주식시장의 난이도가 높아지면서 유투버의 예측이 거의 다 틀려버린 것이다.


만일 내가 내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유투버는 전문가고, 전문가의 추천 종목이니 오를 거야’라는 잘못된 가설의 믿음을 강화하고 빠르게 매도하지 않았다면, 해당 종목의 평단가를 낮추겠다고 무분별하게 추가 매수를 했다면, 지금쯤 내 소중한 퇴직금은 완전히 증발했을 것이 분명하다.


나는 이번 실수로 중요한 깨달음을 얻고, 새로운 원칙을 세울 수 있었다.  

1. 내 돈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나’뿐이다. 다른 사람(유투버, 주변 지인, 불법 리딩방, 카페/종목토론방 등)의 말에 의존해서 내 돈을 배팅하지 않는다.
2. 내가 잘 아는 산업/기업/종목에만 투자한다. 잘 알지 못한다면, 투자하지 않는다.   
3.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남의 말을 듣는데 시간을 쏟기보다는, 나에게 잘 맞는 투자 스타일과 방향성/원칙을 찾는데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다.


나는 개별 종목을 추천하거나 시장의 미래를 섣불리 예측하려 드는 유투버들의 구독은 전부 해지했다. 고급 정보를 공유한다며 주린이들을 현혹하는 리딩방의 스팸문자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삭제/차단’ 버튼을 누른다.

정보 해석 능력과 사리분별력이 없는 나와 같은 주린이에게 타인의 종목 추천은 득이 아니라 독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허구한 날 좋은 종목이라고 추천하며 사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주식으로 얼마나 수익을 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내 알바 아니고.

현재에는 남들의 말을 듣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하기보단, 주식시장을 꾸준히 관찰하고 내가 세운 가설들을 실험하며 나에게 잘 맞는 투자 방향성과 스타일/원칙을 발견하는데 에너지를 쏟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주식의 가격은 가치를 반영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