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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재미 Feb 10. 2022

나는 내가 올해 주식농사를 망칠 줄 알고 있었다

레셉스의 함정과 초심자의 행운

1. 레셉스의 함정

나는 오랫동안 기업의 리더십 교육 콘텐츠를 개발하고, 임직원들을 육성하는 일을 해왔다.


보통 실무자에서 팀장으로, 대리에서 과장으로(승진자), 학생에서 회사원으로

직급이나 직책, 신분의 변화를 맞이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할 때 강의안

맨 첫 장에 등장하는 이론이 있다.


'레셉스의 함정'

이는 프랑스의 외교관이자 건축가였던 '페르디망 마리 레셉스'의 이름에서 따온 이론이다.


레셉스는 중동에서 수에즈 운하 건설로 큰 부를 쌓은 사람이다.

그는 10년만에 수에즈 운하를 성공시키고  파나마 운하 회사의 사장으취임한다. 

레셉스는 과거의 성공 방식을 그대로 적용하면 파나마 운하도 성공할 것이라 믿고,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파나마 운하 건설에 막대한 자본을 투입한다.


하지만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레셉스는 아메리카의 파나마 운하와 중동의 수에즈 지협의 지리적 요건이나 주변 환경이 매우 상이하다 점을 인지하지 못했고, 수에즈 운하에서의 성공 방식대로 파나마 운하를 건설하다 번번이 실패했던 것이다.

[실제로 태평양과 대서양은 수온차가 꽤 커서 수에즈 운하를 짓는 것보다 훨씬 더 높은 기술력이 요구되었고, 설상가상으로 그 지역에 전염병이 돌면서 일꾼을 구하는 것도 어려웠다]


리더십에서는 이러한  레셉스의 함정을 다른 말로 '성공의 함정(Success Trap)'이라고 부르며, 이러한 실패를 우연이 아닌 필연이라고 규정한다.


우리 주변에도 '성공의 함정'에 취해 실패를 맞이하게 되는 조직과 개인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는 비단 기업과 직장인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주식시장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한 때 시장을 초과하는 막대한 수익률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던 액티브 펀드나 트레이더,

초심자의 행운을 누리던 1년 차 주린이들도 결국은 '레셉스의 함정'을 피해 가지 못하고 큰 실패를 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주식 시장에서 자신이 세운 가설이 맞아떨어지고, 동일한 방식으로 성과를 내기 시작하면 내가 세운 가설이 '진실'이라는 오만에 빠지기 쉽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의 상황적 변수들이 시시각각 변화되고,

매크로적인 흐름이 달라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성공에 취한 사람들은

그 변화를 객관적으로 감지하지 못한다.

 

시장은 모든 이들에게 동일한 시그널을 주고 있지만,

과거의 성공에 취한 사람들은 시장에 충격을 주는 변수의 크기를 과소평가하거나,

시장이 자신의 예측대로 움직일 것이라는 확신을 강화한다.

그렇게 서서히, 스스로를 몰락의 길로 몰아넣는다.


그나마 빠르게 자신의 실패를 인정한 사람들은 손실폭을 최소화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이 쌓아온 성공 공식들이 현재 상황에서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끝까지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잘못된 방법을 여러 번 재차 시도하며 손실폭을 키운다.


2. 응, 레셉스?... 그거 나야...

고백하자면, '레셉스의 함정'에 빠져 필연적 실패를 고 있는 사람이 바로 '나'다.


내가 주식을 시작했던 첫 해(21년)에 48%라는 기이한 수익률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주로 나스닥 3배 레버리지 ETF(티커명:TQQQ)와 반도체 필라델피아 지수 3배 레버리지 ETF(티커명 :SOXL)

상품의 스윙 투자를 반복하며 수익을 실현했기 때문이다.


3배 레버리지 ETF란 ETF에 편입된 종목들의 평균값이 1% 상승하면 3% 상승하고,

1% 하락하면 3% 하락하는 상품이다.

3배의 폭으로 움직이니,

오를 땐 화끈하게 오르고, 떨어질 땐 어디가 바닥인 줄 모르고 지하실 뚫고 하락하는 고위험 상품이다.


이렇게 무시무시한 종목인대도 불구하고,

그릇이 간장 종지만 한 내가 3배 레버리지 ETF 스윙투자를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1. 미국 주식(나스닥 지수, 반도체 산업)은 우상향 한다
2. Greed And Fear 인덱스가 Extreme Fear(극도의 공포) 상태일 때 3배 레버리지 ETF를 매수하면, 환희에 팔 수 있다
3. 3배 레버리지 ETF의 바닥을 잘 짚으면 변동성이 큰 주식 시장에서 단기간에 큰 수익을 실현할 수 있다.

세 가지 가설에 대한 믿음이 매우 강력했기 때문이다.

이는 몇번의 성공 경험으로 고착화된 믿음이었다.


나는 '감'으로 3배 레버리지 ETF를 매수하고 돈을 버는 횟수가 많아지니,

3배 레버리지 ETF의 과거 차트를 보며, 패턴이나 규칙을 찾으려는 시도를 했다.

20-21년 2년간 시장이 조정을 받을 때 3배 레버리지 ETF의 하락률을 계산했고, 이를 기준으로 하락장에서 매수 원칙을 세웠다. 뻘짓을 참 열심히도 했다...

공들여서 20-21년 2년간의 3배 레버리지 ETF의 차트 움직임을 계산하고 엑셀에 정리하고보니 뭔가 더 자신감이 생겼다.

그렇게 과거의 성공 방정식(매수/매도 원칙)에 입각하여, 12월에도 어김없이 Fear And Greed Index가 Extreme Fear(극도의 공포) 상태에 가까워졌을 때,

나스닥이 60일선을 터치했을때,

TQQQ(나스닥 3배 레버리지 ETF)를 매수했다.


금리인상은 빨라야 3월부터니,

21년 연말 산타랠리와 22년 연초까지는 상승 파티가 계속될 것이라고 가정했던 것이다.


3. 결과는?... 대실패

어랏? 근데 시장 분위기가 영 이상하다.

시장이 내가 생각하고 예측했던 그림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오르려고 하면 다시 떨어지고, 오르려고 하면 다시 떨어지고,

내 계획은 공포에 사서 10일 정도만 보유하고 수익을 실현하는 것이었는데,

주가는 횡보-하락-횡보-하락을 반복하며 손실폭을 키워갔다.

계획은 이미 한참 어긋나버렸다.


나는 그제서야 여러 가지 시그널들을 조합하여, 상황이 금리인상 직격탄을 맞았던 2018년의 주식시장과 유사한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다.

그리고 2022년은 16년,18년(금리인상기)처럼 장기 하락장(Bear Market)의 모습이 재현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아차렸을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1월이 되자마자 주식시장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깊고 거대한 하락이 찾아왔다.

코로나 이후 주식시장에 입성했던 사람들은 최초로 경험하는 찐찐찐 하락장이었다.


언론에서는 연일 계속되는 시장의 하락을 지켜보며,

1월 하락율만 놓고보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초라는 기사를 쏟아냈다.


게다가 내가 보유한 종목들은 3배 레버리지 ETF가 아닌가?

나는 하루 만에 TQQQ와 SOXL이 20%씩 빠지며 동시에 낙동강과 두만강을 건너는 모습을 목격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내 돈은 반토막났다.

개미들은 어디가 바닥인지 모르고 빠지는 시장의 모습을 지켜보며, 너도나도 손절을 감수하고 주식을 팔아재꼈다.


그렇게 나는 지옥같았던 1월을 손절없이 버텨냈다.

-40%까지 떨어졌던 내 주식계좌는 어제부로 -20%까지 회복했다.


손실금액이 큰 데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이 생각보다 차분한 이유는,

3배 레버리지 ETF 투자를 시작할때,

투자 방식이 갖고있는 리스크(하락장에서의 최대 하락률)요인을 어느정도 인지하고 선택했던 덕분(?)이 아닐까 싶다.


4. 실패 경험, 제대로 성찰했니? 반성했어?

애초에 주식시장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레셉스의 함정'이나, '초심자의 행운'이

나를 피해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주린이 1년차인 2021년에 실력에 비해 과분한 수익률을 얻었으니 초심자의 운빨은 몽땅 다 끌어다 써버렸고,

22년은 필히 실패할 것이라는 사실을 어느정도 예견하고 있었.

그 실패가 너무 빨리, 조금 이르다 생각하는 연초찾아와서 살짜쿵 당황했을 뿐이다.


레셉스가 그랬던것처럼,  역시 주식시장의 상황적 변화를 민감하게 감지하지 못했다.

20-21년 제로금리 시대에 먹혔던 성공 방식으로 투자를 지속했고,

거품장 끝물에 호되게 물리며

강제적 장투에 돌입하게 되었다.


나는 이 실패를 통해,

내가 세웠던 과거의 성공 방정식 중 두가지는 변화된 시장에서는 제대로 작동되지않는,

잘못된 가설음을 깨닫게 된다.


1. 미국 주식(나스닥 지수, 반도체 산업)은 우상향 한다

2. 3배 레버리지 ETF를 Greed And Fear 인덱스가 Extreme Fear(극도의 공포) 상태일 때 매수하면 환희에 팔 수 있다

3.3배 레버리지 ETF의 바닥을 잘 짚으면 변동성이 큰 주식 시장에서 오래 머무르지 않고, 1-2주 만에 20%의 수익을 실현할 수 있다


두번째와 세번째 가설 애초에 나 따위가 시장의 단기적 미래를 예측할수 있을 것이라는 오만에서 비롯된 가설었으니, 가차없이 폐기하는것이 마땅하다.


물려있는 3배 레버리지 ETF(나스닥 TQQQ,반도체 SOXL) 아직 팔지 않았다.

'미국주식은 우상향한다'는 첫번째 가설에 대한 믿음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에,

손절하지않고 장기적으로 보유하며 미국의 지속적인 번영과 성장을 기원하려고 한다.


5. 그럼 이제 주식 안할래?

2022년에 들어서 여러가지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주식이 얼마나 위험한지 몸소 체감할 수 있었다.

(시장 지수 하락, 극심한 변동성, 대형주 넷플릭스/페이스북의 -25% 폭락 등)


작년 재작년 처럼 시장이 좋아서, 운이 좋아서, 주식으로 돈을 버는 좋은 시절은 다 갔다.

금리인상이며 테이퍼링이며 악재들만이 남이있는데...


누군가 나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식을 계속할래?'라고

묻는다면 당연히 YES다.


나는 지금도, 앞으로도 미국 주식 시장을 떠나지 않을 계획이다.


인생은 길고, 앞으로 최소 수십년은 더 투자를 계속 해야 하는데,

이 정도로 시장을 떠나면 쓰나!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실수하고 실패하고,  경험을 성찰하고 재실행하는 지금의 시간이

훗날 내가 축척할 '부'의 자양분이 되어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어김없이 11시 30분이 되면 영웅문 어플을 킨다.


부디 연말에는 올라있길 바라며...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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