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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라 Nov 04. 2023

손톱 밑 검은 때

  나는 도시에서 나고 자랐다. 나의 엄마, 아빠도 도시에서 나고 자랐다. 나의 할머니, 할아버지도 도시에서 정착을 오래전에 하셨다. 그래서 나는 농사짓는 풍경이나 시골 노인들의 검게 그을린 얼굴을 보고 자란 적이 별로 없다.


  결혼을 하고 농촌에 있는 시가에 가면 시어머니는 항상 바쁘셨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해가 뜨거워지기 전에 밭에 물도 주고 잡초도 뽑으신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밤이 되면 집 안에도 콩을 까야하는 것들이나 무언가를 다듬어야 하는 것들이 가득했다. 삼시 세끼 밥을 차리는 것만 해도 바쁜데 작물을 키우고 따고 요리하기 좋게 다듬고 자식들 나눠주기 좋게 봉지에 소분하는 일은 끊임이 없었다. 그나마 작물을 다듬는 일은 앉아서 할 수 있는 일이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하거나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할 수 있어서 쉬는 시간으로 착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것 또한 노동 시간이다. 방바닥에서 작물들을 다듬다 보니 집 안에도 흙이나 개미들이 기어 다니기도 했다. 하루 안에 다 다듬지 못하면 한쪽으로 치워두고 잠을 청했다. 방바닥에서 흙이 밟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것저것을 다듬는 어머니의 손은 거칠고 갈라져 있다. 손톱 밑에는 검은 때들이 많이 보였다. 낯선 손이다. 내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손이었다. 

  

  오늘은 가을을 맞이하여 가족끼리 산에 올랐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유명한 산 말고 집 옆의 사람 없는 산이다. 유명한 산이 아니라 산길도 낙엽도 단풍도 화려하지 않고 허름한 것만 같다. 길을 따라가다 보면 아이가 허름한 낙엽들 속에 곤충들의 알집을 발견하여 보여준다. 사마귀 알집, 이름 모를 거품 속의 알들. 


  산 중턱에 올라 점심 도시락을 먹었다. 산에 오르니 더워져서 잠바를 나뭇가지에 걸어 두었다. 나뭇가지가 튀어나온 부분은 훌륭한 걸이대가 된다. 나무에게 고마워하며 잘 써먹고 있는 방법이다. 도시락을 다 먹고 다시 잠바를 입으려고 하니 잠바에 뭔가 찐득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냄새를 맡으니 나무에서 나온 수액 같았다. 뾰족하게 튀어나온 나뭇가지 부분이 어쩐지 부러져 보였었는데 거기서 나온 수액이 잠바에 묻은 것이다. 냄새는 고로쇠 수액처럼 청량했다. 깨끗하고 귀한 수액일 테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잠바에 묻은 찐득거리는 부분은 검은색으로 바뀌겠지. 


  예전의 나라면 더럽거나 징그럽다고 느꼈을 것들이다. 손톱 밑의 검은 때도, 거품으로 감싸놓은 알들도, 밟으면 바삭거리며 부서질 것 같은 알 껍데기들도, 찐득거리는 것들도. 낙엽이나 흙도 몸에 묻으면 더럽다고 열심히 옷을 털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다. 부모 곤충의 마음이 느껴진다. 적들로부터 공격받지 말고 무사히 겨울을 지나 봄까지 버텨서 아기 곤충이 태어나기를 부모 곤충들은 얼마나 바라고 있을까. 내가 임신하고 있을 때에도 무엇 하나 아이에게 악영향이 가지 않게 좋은 것만 듣고 보기 위해 노력했던 간절한 마음이 있었으니까. 아빠 사마귀, 엄마 사마귀, 그리고 이름 모를 곤충들도 그렇게 아기들을 기다리고 있겠지.

 

  그렇다면 더 이상 그 거품과 알 집들은 더러운 것이 아니다. 신성하고 고귀하고 따뜻한 알집들이 된다. 어머니의 손톱 밑 검은 때도 마찬가지다. 색깔은 검은색이지만 자식들을 사랑하며 작물을 수확하는 멋있고 부지런한 농부의 손이다. 그리고 어머니가 만지셨던 작물들은 오히려 도시의 손소독제와 물티슈보다 더욱 깨끗하다. 자연으로부터 온 것이고 자연은 정화 능력이 있으니까. 더러워 보여도 분명 깨끗할 것이다. 깨끗해 보여서 산 다이소의 물건들에서 발암물질이 나온다는 뉴스들을 보다 보면 진짜로 깨끗했던 것이 아니었던 거니까. 그것에 비하면 자연은 훨씬 착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검게 그을린 농촌 노인들의 얼굴들은 어떠한가. 텔레비전 속 도자기 피부들과는 정반대지만 햇빛을 머금은 위대한 얼굴들이다. 못생겼다고 감히 말할 수 없는 부지런함의 증거들이다. 사실은 그것이 보톡스와 백옥주사보다 아름다운 것이겠지.


  이래서 나이가 들면 자연을 사랑하게 되는 것일까. 지나가는 곤충들, 떨어지는 나뭇잎, 꼿꼿하게 겨울을 준비하는 나무들을 보면 귀엽기도 하고 경외심이 든다. 이들을 생각하면 나는 한없이 작은 티끌 같은 자연의 일부다. 언제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그저 받아들이면 된다. 겨울을 버티고 봄을 잘 맞이하게 준비하고 살면 된다. 작물을 다듬고 가족들에게 나누어주며 사랑하며 살면 된다. 나만 깨끗하다고 오만을 떨지 않으며 겸손하게 늙으면 된다. 슬프고 화나는 일이 있어도 산속의 생명들을 생각하고 받아들이면 된다. 누군가는 나를 겉모습만 보고 손톱 밑 검은 때처럼 볼 지라도 내가 더 큰 그릇으로 당당하게 살면 된다. 숨을 쉬고 냄새를 맡으며 자연과 가까이 살면 된다. 그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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