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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 살로메 Jun 25. 2024

프랑스 열차 안에서

장소에 대한 생각


장소가 사람은 아니지만 하나의 생명처럼 느껴지는 경험을 하곤 한다. 어떤 기대나 보상 없이 찾았던 장소에서의 생활, 그리고 그 순간의 삶을 끝내고 다시 돌아갈 때 눈물을 흘린 경험들. 그럴 때면 어떤 무형의 것들에게서 생명을 느낀다.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것들도 생명을 지닐 수 있음을. 이번에도 나는 니스와 파리 사이를 열차로 지나며 그런 생각을 계속하였다. 넓은 들판과 드문 드문 지어진 소박한 집들. 그곳에서 자라는 나뭇잎과 샛노란 꽃, 염소와 흰 소들. 그리고 갑자기 선물처럼 펼쳐지는 지중해의 색감과 빛의 기울기. 이것이야말로 어쩌면 정말 프랑스의 모습일지 모른다고 생각하였다.



로메르가 왜 그토록 자신의 영화 속에서 프랑스의 자연을 담으려고 했는지 아니 그 풍경이 담기게 되었는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한 인간의 삶이 있듯이 그 장소들이 있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이유를 모른 채 서로 마주하고 또 이별을 하겠지. 내게 깊은 깨달음을 주는 것들은 언제나 이런 것임을. 인간이 만든 규율이나 가치 너머의 것들.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오직 장소만이 일러주는 비밀. 나는 이 세상을 사는 찰나 얼마나 더 그것들을 발견할 수 있을까. 나무를 스치는 위로의 손길들. 이름 모를 나무가 바람에 흔들린다.


Orff: Carmina Burana: In trutina (youtu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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